[전승선의 시를 걷다] 지리산

깊고 간절한 마음이 가 닿을 그 곳 ‘지리산’

구름은 산을 머금는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세상의 흔적들을 지우느라

저 도도한 봉우리만을 세워 둔 채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린다.

재미없는 농담 같은 세상을 버리고

찾아온 지리산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아침산책을 나선 마을길에는

어린 개가 컹컹 반기고

홀딱 젖은 비를 즐기면서 천천히 걷는 내게

종종 걷던 할머니는 메기 잡았는 갑소하며

산머루 같은 웃음을 던져준다


시골 마을은 소소한 풍경으로

사람들을 안도시킨다.

구례군 산동면 당동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일 없는 노인들이 정자에 앉거나 기대

먼 산마루 끝으로 시선을 두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며

추억과 기억 사이를 서성인다.

나는 정자에 걸터앉아

노인들의 이야기 속을 배회하면서

가없는 시대의 순명이 안타까웠고

그 순명에 가 닿을 노인들의 세월이 안타까워

새어 나오는 한 숨을 꾹꾹 눌렀다.

그러나 여기 지리산엔 풍경이 피안이고 사람이 피안인데

나만 풍경과 사람 사이를 건너느라 허겁지겁했다.



지리산에 가면 도인인척 함부로 말하지 마라.

산의 깊숙한 내륙까지 발길을 찍으며 깊은

골짝마다 손금으로 읽어 내는 할머니가 사신다.

할머니는 가문비나무처럼 산맥을 머리에 이고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마음의 축지로 달려 산야초를 캔다.

그 산야초로 자식을 키워내고 평생을 산에 기대 살아 오셨다.

그 강인한 생명의 힘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할머니를 품어 안고 스스로 사위어 간다.

사위어 가는 것이야말로 강인한 아름다움이다.

산수유 꽃처럼 피고 지며 살아가는

원좌리 마을의 할머니는 그래서 지리산 산신령이다.

 

 

목이 마른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건네주시고 

주섬주섬 밥상까지 내어 주셨다.  

식은 밥 두어 덩이와 김치 조각  

그리고 고추장과 풋고추가 전부지만  

이 얼마나 소박하고 기쁜 밥상이던가.  

저 지리멸렬한 절해고도 지리산에서  

할머니는 저 편 부처처럼 있는데  

나는 이편에서 내 남루한 마음을  

차가운 물에 말아 먹으며

하잘 나위 없는 욕망을 반성했다.  




노고단을 눈앞에 둔 성삼재에서 노을을 만났다.

마음속 심연을 기어 올라온 촛불 같은 관능이

명료하게 빛나다가 성삼재를 향해

가물가물 붉은 눈물로 뿌려준다.

저 끓어오르는 하늘과 붉은 노을과

고독한 나는 지리산 성삼재에서 한 몸으로 날고 있었다.

꿈꾸듯 몽상으로 치달아 오르며

인생의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젊어서 온 천지를 싸돌아다니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주홍으로 빛나는 단호박이여

네 순결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

조롱하는 인간들의 푸념을 맨몸으로 견뎌내며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개별적 존재로 빛나고 있구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너희들 것이므로

튼실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만들어 내는구나.

지리산 자락 산동면 테마파크에 가면

저처럼 당당한 단호박이 주홍빛으로 지리산을 떠받치며

열렬하게 열리고 있을 것이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지리산 물줄기는 길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어느 지류에서 마음씨 좋은 농부의 밭에 물을 대주고

다시 지리산을 품어 내리다가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가장 선한 것은 흐르는 물이라 했던가.

생명을 길러내고 생명을 소멸 시키는 계곡의 물은

푸른 정맥과 붉은 동맥이 흐르는 생명의 힘이다.

 

 

화엄사 지붕위에  

파랗게 걸려 있는 하늘이 

금방이라도 지붕을 타고 

땅위로 내려올 것 같았다

내가 부처와 마주 앉아  

부처의 이름을 부를 때 

부처의 시선은 나를 뚫고  

저 푸른 하늘로 스며들었다

하늘과 나 사이 그 사이로 화엄이 다녀가고  

나는 시간 밖에서 그리운 이름을 호명했다

가 닿을 수 없는 저 편의 문을 열면

저 화엄사의 푸른 하늘처럼 그리움이 내린다.  


 

구례오일장엔

사람이 산다.

자연이 산다.

지리산 골짝 마다 마을마다

자연처럼 사는

촌로들을 불러 모으는 구례장엔

우리네 정이 산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살아서 꿈틀대고

만남과 이별이 서고

고단과 즐거움이 교차한다.

그래서 구례장터로 가면

맛있는 사람의 맛이 난다.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자식처럼 키운 야채를 들고 나온

할머니들은 바로 지리산이다.  

사가는 사람은 보약이요  

파는 할머니는 인정이다.  

조금주면 정이 없다고  

덤을 듬뿍 주는 인정…….  

인기척 떠난 산골의 야채들은  

구례장에서 세상을 만나고 

할머니들의 노고는 정당한 삶이 된다.

   


 

돌아오는 길

구례터미널에서 생경한 풍경을 만났다.

아니다. 여기가 구례이므로 생경한 풍경이 아니다.

저 허허한, 그러나 대쪽 같은 삶으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길을 걸어간 구례 지리산의 선비들이 아름답다.

기품을 기품으로 가장하지 않은 저 순수는

지리산이 아니면 감히 아무도 말을 건네지 못할 것이다.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우리들 삶보다

지리산 같은 초로한 아름다움은 얼마나 지극하던가.

지리산에 와서 지리산이 되어 보았지만

나는 아직도 길 위를 방황하는 여행자 일뿐이었다.

그랬을 뿐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8.08 11:39 수정 2020.07.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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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