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4화 숙빈 최씨
영조(연잉군)를 낳은 숙빈 최씨는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였습니다. 인현왕후하고는 비교가 안 되고 역관의 딸인 장희빈보다도 낮은 천한 무수리 신분에서 일약 임금의 첩이 되었고 아들마저 임금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오기까지 피비린내 나는 궁중 암투를 겪어야 했습니다. 숙빈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습니다. 구파발에 살던 평민의 딸이라기도 하고 전북 김제 관아 최사령의 딸, 인현왕후의 몸종이라기도 했지만, 영조는 자기 어머니가 지금의 서울 시청 근처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열등감에 나온 뻥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영조가 팔십 가까이 되어 몸이 쇠약했을 때 신하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앞에서 신하가 사기(史記)를 읽는데 내용 중에 네 에미는 종년이야(爾母婢也)라는 말을 했다가 이것을 듣고 임금이 격노하자 같이 있던 세손(훗날 정조)이 그 대목을 읽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백 오십 년 뒤 고종이 측근 궁녀들에게 할아버지 영조의 생모가 무수리였다고 말했다 하니 숙빈 최씨의 신분이 천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무수리라 신체가 건강했기에 임신을 두 번 할 수 있었으며 큰아들은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죽었으나 둘째 아들 연잉군은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까지 숱한 시련이 있었습니다. 무수리가 임금을 만나 왕자를 임신하는 것부터가 극적이었습니다. 말대꾸하는 장희빈에게 싫증이 난 숙종이 밤늦게 인현왕후의 처소를 찾았습니다. 조용히 순응하는 본처가 그리웠던 것이지요. 거기서 촛불이 비치는 방에서 그림자 한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가가서 방문을 열어젖히니 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던 최나인은 깜짝 놀랍니다. 그 사람이 임금임을 알고는 아예 뒤로 넘어갑니다.
“이것이 무슨 상이냐? 야참을 먹는 게냐?”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최나인이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아니옵니다. 전하, 사가로 간 왕비 마마의 생일이 오늘이라 상을 차렸나이다.”
임금이 내친 옛 주인을 그리워한다는 말 자체가 위험한 말입니다. 그럼에도 당당히 말하는 것에 임금은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리고 최나인은 잠자리를 같이 승은(承恩)을 입게 됩니다. 승은을 입게 된다는 것은 수백 명의 궁중 여인의 최대의 바람이지만 극히 어려운 일로 최나인은 아침에 되자 치마를 뒤집어씁니다. 임금과 잠자리를 했다는 표시이지요.
임금과 잠자리를 하면 그날로 벼락출세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궁녀는 임금의 여인이니 최고위직인 상궁(尙宮)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임신을 했을 때 특히 아들을 낳으면 신데렐라가 됩니다. 당당히 임금의 첩인 후궁이 되는 것이지요. 첫 번 동침에 최나인은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희빈, 그때는 인현왕후를 내쫓고 왕비가 되었을 때이지요. 당장 최나인을 끌고 와 문초를 합니다.
“네 이년, 대체 어떤 놈과 잠자리를 같이 해서 애를 밴 것이냐?”
장씨 왕비는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임신한 것으로 몰아갑니다. 미모 절정인 자기를 놔두고 무수리와 동침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각에 임금은 잠시 낮잠이 들었습니다. 독 속에 새끼용이 갇혀있으면서 살려달라! 고 외치는 소리에 꿈에서 깬 임금은 장씨 왕비의 처소로 갔습니다. 혹시 장희빈이 임신했는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임금이 온다는 소리에 장희빈은 최나인을 독 속에 감추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숙종의 눈에 커다란 독이 들어왔습니다. 꿈을 상기하며 열어볼 것을 명하자 그 안에서 피투성이의 최나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 장희빈은 왕비에서 쫓겨나 후궁이 되었고 인현왕후가 궁으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