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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의 인문기행] 어느 봄날, 청솔 숲길 따라 지리산문 절집에 들다

제2부 구례 오산의 백척간두에는 사성암이 있다

여계봉



능엄경(楞嚴經)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글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함에도 지리산 자락 절집을 떠돌다보니 적당한 핑계 거리가 필요해서 떠올린 글이다. 허나 어쩌리. 진정한 휴식도 깨달음이다. 어떠한 상념이나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생각들을 마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듯 지켜볼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상태가 아닐까.

 

구례하면 화엄사가 떠오른다. 그러나 화엄사에서 멀지 않은 오산에 구례와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의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암자 사성암이 있다. 오산(鼇山)자라뫼. 백운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이곳 구례 땅에 닿아서는 지리산 풍광에 놀란 듯 멈췄다. 그리고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면서 강물 들이키는 자라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오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처음 여기에 앉았던 암자 이름도 원래는 오산암이었다.

 

절벽에 걸터앉은 오산 사성암의 유리광전. 마치 금강산 보덕암을 보는 듯하다.



오산 아래 죽연 마을에는 사성암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 주차장이 있다. 사성암까지는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지만 주차 공간이 협소해 주말을 포함한 휴가철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야 한다. 자동차는 저 아래 섬진강을 두고 구불구불 굽이진 길을 따라 오른다. 가파른 비탈을 넘어가는 자동차는 엔진소리마저 숨이 차고, 고도가 제법 되는지 귀가 먹먹하다가 일순간 뻥 뚫린다. 주차장에 내리자 섬진강 강바람 담은 봄 햇살이 볼을 간 지른다.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몇 발짝 떼었을 뿐인데 보폭이 작아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뒤돌아보니 남원을 지나 구례 들녘을 적시는 섬진강의 모습이 뚜렷하다. 산자락 아래에 펼쳐진 구례읍 마을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극락정토는 오산과 사성암이 아니라 저 강에 기댄 채 살아가는 마을인 듯싶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처럼 살아가는 섬진강 사람들. 자연에서 체득한 지혜로 생을 이어가는 저 곳이 바로 정토가 아니던가.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구례마을. 풍경 따라 그리움은 깊어만 간다.

 


사성암에 들어서면 길은 양쪽으로 갈린다. 바로가면 유리광전, 왼쪽은 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그 옛날 연기조사가 창건한 이곳에서 원효, 의상에 이어 도선과 진각이 정진하여 성인이 되자 암자 이름은 오산암에서 사성암(四聖庵)’으로 바뀌게 된다. 사성암은 한 발 앞은 낭떠러지고 한 발 뒤는 절벽이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허공에 매달린 암자는 절벽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오르려는 절집의 모습은 백척간두 진일보 시방세계 현전신(百尺竿頭 進一步 十方世界 現全身)’, 즉 절대적 위기에서도 두려움에 떨며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하게 진일보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지혜를 갈구하는 구도자의 당찬 기상을 느끼게 한다.

 

절벽에 붙은 제비집 같은 사성암 유리광전. 사성암의 랜드마크다.

 

절벽에 붙은 제비집 유리광전 불당 안에는 유리벽 너머로 황금색 선으로 음각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약사여래불이 거쳐하는 곳을 유리세계라고 하는데, 높이 약 4m의 약사여래는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잡고 왼손은 손가락을 벌려 가슴 앞에 대고 있다. 삼배를 끝내고 섬진강을 향해 고개 돌리니 땀에 젖은 이마를 한줄기 강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약사여래마애불의 섬세한 선각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어서 조성했다고도 전해진다.



유리광전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요, 서정시다. 봄빛 머금은 강이 저토록 아름다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길가에 늘어선 벚꽃이 바람결에 날려 보낸 하얀 꽃잎은 저 강에 눈송이처럼 내려앉아 물길 따라 흐른다. 섬진강이 피워낸 새 생명 움트는 소리에 구례의 봄은 깨어나고, 남도의 산하는 흥에 겨워 춤춘다.


오산 절벽에 기대고 선 유리광전 속의 마애여래불은 이토록 멋진 풍경을 무심하게 내려 보고 있다.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이라고 섬진강을 노래한 김용택 시인도 이곳에 올랐을까.

 


유리광전 옆으로 난 또 다른 돌길을 오른다. 800년 된 귀목나무는 고색창연한 속살을 드러낸 채 그윽한 빛을 뿜어내고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 곁을 지나면 경외심에 저절로 발이 멈추어진다. 나한전, 산왕전, 지장전 등을 차례로 지나고 바위벽에 에둘러 덧대진 돌계단을 꺾어서 오르자 바위 벽면에는 황금빛 종이들과 동전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개인의 간절한 소망과 기원을 적은 황금빛 하트 소원지가 잔뜩 달려있는 소원바위는 중생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저마다의 희망을 품고 그 마음으로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가 찾고자하는 부처님의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귀목나무 그늘에 서면 작아지고 작아져 끝내 허물도 벗지 못하는 애벌레가 된다.

 

 

소원바위에는 목숨 다하는 날까지 뗏목 팔러 간 남편 돌아오기를 기도했다는 한 여인의 애절함이 깃들어 있다.

 


 

사성암은 비록 자그마한 암자이지만 경내의 암벽 사잇길을 오르내리며 널찍한 구례평야와 발아래에 휘돌아가는 섬진강, 그리고 마루금을 이룬 지리산 조망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배례석은 절을 찾는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다. 그 언제부터인가 사성암 스님들은 이 자리에서 화엄사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렸다고 한다.

 

배례석을 지나면 도선국사가 정진했다는 도선굴이 나온다. 한 사람 겨우 들어설 수 있는 자연 굴 안에는 딱 한 사람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자신이 이룬 불력의 가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도선은 이곳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 쳤을까. 깊은 바위 속 좁은 공간에 서 있으니 도선국사의 일갈(一喝)하는 소리가 굴 안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정진 또 정진하라!’


몸 움츠리고 고개 숙여 좁고 낮은 굴속으로 들어가 돌덩이 앞에서 무릎 꿇고 예를 올린다. 이것이 바로 하심(下心) 아니던가.

 


도선굴에서 나와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에 널찍하면서도 평평한 바위가 보인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한 눈에 보이는 좌선대다. 원효와 의상, 도선과 진각은 이 자리에서 선정에 들었을 게 분명하다. 정상을 향해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곧 오산 정상의 표지석과 전망대가 나온다.


오산 정상(531m). 산세가 뛰어나고 자연이 보여주는 풍광이 절경이니 오산 자체가 법당이고 법문이다.
정상 이정표에서 정자로 올라서야만 오늘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정자 위로 올라서면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한 반달 모양의 섬진강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구례마을이 분명하게 보이고, 저 멀리 성삼재도 어렴풋이 보인다. 저기가 화엄사이니 그 위 암자는 연기암일 터. 그 산길 끝이 어제 오른 노고단이다. 이어서 반야봉, 왕시루봉이 우뚝하다. 왕시루봉 오른쪽 너머로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아득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사위가 탁 튄 정자에 서서 폐부 깊숙이 오산의 초록색 숨결을 들이킨다. 바람에는 지리산에서부터 날아온 산 냄새와 발아래 섬진강의 물 냄새가 골고루 섞여있다. 오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면 솔잎 무성한 걷기 좋은 산길이 이어진다. 매봉, 자례봉, 선바위 갈림길, 솔봉을 거쳐 동해마을로 하산하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구례를 양쪽으로 가른 시원한 강줄기와 지리산의 만복대, 종석대,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이 펼쳐진다.


 

정자 아래로 매봉, 둥주리봉으로 가는 지능선이 아련하게 보인다.



오산을 내려오면서 사성암 유리광전을 한 번 더 들린다. 유리광전 속의 마애불은 골목서 마주치는 이웃 같은 얼굴이다.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온기 머금은 미소 짓고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얼마나 이타적이고 겸손한 자세인가.

 

천 년 이상 산정의 바위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품고 있는 이야기는 많겠지만 섬진강 시인의 시구처럼 버릴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절집 떠나는 중생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준다.

 

오늘은 오산 사성암에서 천년 세월의 마애불을 만나 찰나(刹那)의 감정으로 억겁(億劫)의 인연을 맺은 날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15 12:32 수정 2020.04.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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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