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심각하나 예술은 유쾌하다(Life is serious, art is joyful)고 스페인 작가 엔리케 빌라-마타스 (Enrique Vila-Matas, 1948 - )는 말한다.
2015년 영문판으로 처음 출간된 그의 반(半) 소설(semi-fictional) ‘카셀시(市)의 비논리적인 불합리성(The Illogic of Kassell by Enrique Vila-Matas, translated by Anne McLean)’에서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엔리케는 독일어도 중국어도 모르는데 “주위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 자신이 문득 모든 것을 판독(判讀)하고 해독(解讀)할 수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When you expose yourself to languages you don’t understand, you suddenly imagine you can decipher everything)”며 그가 보는 것,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개방하고 개통함으로써 창의적인 연상작용(聯想作用)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철학적인 사유(思惟)와 경쾌한 오락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또 1985년에 나온 이후 이미 고전이 된 엔리케 빌라-마티스의 ‘휴대용 문학 약사(Historia abreviada de la literature porta’til/A Brief History of Portable Literature)’도 2015년 처음으로 영문판이 출간되었는데 84페이지밖에 안 되는 이 책에서도 인생과 예술은 모험성을 공유하고 있다. ‘휴대용 문학’의 중량은 여행용 백에 담을 만큼 가볍지만 “예술이 생존감을 격화시킨다. (Art intensifies the feeling of being alive.) 공간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시간 속에서는 저 자신일 수밖에 없다. (in time you could only be yourself, while in space you could become someone else.)”고 한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상태 (I’d already given up for lost)’ 라는 저자는 ‘인생은 우리가 사는 삶이 아니고 우리 머릿속에서 지어내는 것 (Life is not what we lead, but what we invent in our heads)’ 이라고 적고 있다.
2015년 8월 12일자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잠망경’ 칼럼 ‘잊혀진 남자’란 글에서 서량 (시인, 정신과 의사) 씨는 이렇게 말한다.
“망상은 꿈과 비슷하다. 간절한 소망이 망상으로 전개되는 수가 있고 절실한 기원이 꿈속에서 성취되는 수도 많다. 헛된 꿈에서 깨어나라는 충고도 맞는 말이지만 꿈을 간직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꿈이 현실화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은 꿈이 이루어지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의 여성화가 마리 로랑셍 (Marie Laurencin, 1883-1956)의 시 ‘잊혀진 여인’을 생각한다.
잊혀진 여인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비참)한 것은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한 것은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한 것은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한 것은
외톨이가 된 여자
외톨이가 된 여자보다 더한 것은
떠돌이가 된 여자
떠돌이가 된 여자보다 더한 것은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한 것은
잊혀진 여자
여기서 우리 최금녀 시인의 ‘물드무’를 같이 읊어 보리라.
물드무엔 늘 물이 가득했다.
자식들이 오면 물이 모자라지 않게
옹배기로 길어다 부으시던
어머니,
한 생애, 가없는 수평선만 넘실거렸을
수심 깊은 물살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볼 겨를이 없었다.
몇십 년 만에 무위도를 찾아간다.
수평선 가득 물을 품어 안고
한평생 외로이 떠 있는
물항아리 같은 섬,
물길을 열어놓고 기다리며
내가 놓친 수평선까지 물을 채우고 있는
섬, 어머니를 향해 떠난다.
이 시를 장석주 시인은 이렇게 의역해 패러프레이즈 (paraphrase) 한다.
“’드무’는 ‘드므’의 사투리다. 신기철, 신용철이 편저한 새우리말 국어사전은 ‘드므’가 넓적하게 생긴 물독이라고 일러준다. 물드므가 어머니의 바다라면, 저 가없는 한 줄 수평선까지 차오른 바다는 신(神)의 드므다. 뭇 생명이 물에서 나오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둘 다 생명의 원천이다. 어머니를 잃는 것은 영혼의 피난처를 잃는 것! 오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리라. 어머니를 잃은 자들은 세상을 유랑한다. 어머니를 잃은 나는 그를 부러워하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쓴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생인 다정한 친구 권영일 씨로부터 받은 이메일 내용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여기 이렇게 옮겨 보리라.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숫집이 있습니다. 달랑 탁자 4개뿐인…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냅니다. 10년이 넘게 국수값을 2천 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무한 리필해 줍니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사연을 말했습니다.
“15년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아내까지 저를 떠나 버렸습니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저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죠. 그러나 가는 음식점마다 저를 쫓아냈고, 저는 잔뜩 독이 올라 식당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국숫집에까지 가게 된 저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다 먹어갈 무렵 할머니는 국수 그릇을 낚아채더니 국물과 국수를 다시 듬뿍 넣어 주었습니다. 그걸 다 먹고 난 냅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연이어 뒤따라 나온 할머니는 소리쳤습니다.”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도망가던 그 남자는 그 배려 깊은 말이 맘에 걸려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 파라과이에서 성공한 그는 한 방송사에 전화를 하면서 이 할머니의 얘기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부유한 집에서 곱게 자랐지만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이름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분에 넘치는 대학을 졸업한 남자로부터 끈질긴 중매 요구로 결혼을 했습니다. 너무도 아내를 사랑했던 건축일 하던 남편은 마흔한 살이 되던 때 4남매를 남기고 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도 고생이 심해 어느 날 연탄불을 피워 놓고 4남매랑 같이 죽을까 결심도 했습니다.
그러던 차 옆집 아줌마의 권유로 죽으려고 했던 그 연탄불에 다시마물을 우려낸 국물로 용산에서 국수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첨엔 설익고 불고하던 국수를 노력 끝에 은근히 밤새 끓인 할머니 특유의 다싯물로 국수 맛을 내서 새벽부터 국수를 팔았습니다. 컴컴한 새벽에 막노동자, 학생, 군인들이 주된 단골이었습니다.
‘하느님이 국수가 중생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건강하게 하소서’라고 아침 눈을 뜨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테이블 고작 네 개로 시작한 국숫집이 지금은 조금 넓어져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테이블은 밤이면 이 할머니의 침대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일하던 아줌마를 데려다주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던 것입니다. 가게 문을 잠그고 한 달, 두 달, 무려 넉 달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대문에 쪽지가 붙었습니다.
‘박 중령입니다. 어제 가게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댁에도 안 계셔서 쪽지 남기고 갑니다. 제발 가게 문 여십시오. 어머니 국수 맛있게 먹고 군대 생활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준 국수 전 계속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 힘내세요. 옛날처럼 웃고 살아요. 가게문 제발 여세요!’
어떤 날은 석 장, 어떤 날은 넉 장,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계속 붙었습니다. 힘을 얻은 할머니는 그제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가게는 이제 국민의 국숫집으로 불립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배려와 사랑의 다싯물을 밤새 우려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그 파라과이 사장 덕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 난리냐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비결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배려와 연민입니다. 향기 나는 나무는 찍는 도끼에 향을 묻힙니다.
다른 이야기 하나 영화 같은 실화를 더 첨부합니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서영 씨 이야기입니다.
1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객실 승무원들이 한 차례의 서비스를 마친 후, 일부가 벙커(여객기 안에 있는 승무원들의 휴식처)로 휴식을 취하러 간 시간이었습니다. 서 씨가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객실을 한 바퀴 도는데 할머니 한 분이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서 씨가 다가가 여쭸습니다.
“도와드릴까요?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데 있어요?”
할머니는 잠시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서 씨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씨 내가 틀니를 잃어버렸는데, 어느 화장실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떡하지?”
서 씨는 자신이 찾아보겠다며 일단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좌석에 모셨습니다. 그리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객실 안에 있는 화장실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없고, 두 번째도 없고, 마침내 세 번째 쓰레기통에서 서 씨는 휴지에 곱게 싸인 틀니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가 양치질하느라 잠시 빼놓고 잊어버리고 간 것을 누군가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린 것이었습니다. 서 씨는 틀니를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에 소독까지 해서 할머니께 갖다 드렸고, 할머니는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까지 서 씨에게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날 일이, 서 씨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질 즈음 서 씨의 남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 지방에 있는 예비 시댁에 인사드리기로 한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남자 친구는 서 씨에게, 미국에서 외할머니가 오셨는데, 지금 서울에 계시니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습니다.
예비 시댁 어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라 서 씨는 잔뜩 긴장한 채 남자 친구를 따라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본 순간 어디서 뵌 듯 낯이 익어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할머니, 처음 뵙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자주 뵙던 분 같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서 씨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아가! 나 모르겠니 틀니, 틀니 하더랍니다. 그러곤 그 옛날 탑승권을 여권 사이에서 꺼내 보이는데, 거기에는 서 씨 이름이 적혀 있더랍니다. 할머니는 언젠가 비행기를 타면, 그때 그 친절했던 승무원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름을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외손자와 결혼할 처자가 비행기를 타는 아가씨라 해서 혹시나 했는데, 이런 인연이 어디 있느냐며 좋아했고, 서 씨는 예비 시댁 어른들을 만나기도 전에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사랑받으며 잘살고 있고요.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이 생각나는 계절, 문득 이런 글귀가 떠오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모두들 아름다운 인연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친구가 보내준 이메일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자면 이것이 되리라.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고, 그 일에 네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문제로다. (It’s not what happens to you, but how you react to it that matters.)”
노예로 태어난 고대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에픽테토스 (Epictetus 50 AD-185 AD)의 말마따나 세상에 당연시할 건 아무것도 없다. (There’s nothing to take for granted in the world.)는 얘기가 되리라.
화사첨족(畵蛇添足)이 아닌 화사첨우(畵蛇添羽)하고 화룡점정(畵龍點睛)하자는 말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