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향수

정지용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1902~1950. 월북시인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자연을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널폈다.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4.25 11:11 수정 2020.04.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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