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하고 싶은 거 많은 현재 진행형, 박인규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한 해씩 나이를 더해갈수록 좋은 점이 있다면 전에는 미처 몰랐던 오래된 노래의 진솔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는 노래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라는 곡이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제목과 후렴구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친구와 소주 한 잔 하며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토론이라고 하기도 우스운 얘기를 주고받다가 대폿집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들었고, 들으면 들을수록 울림은 더해져만 갔다. 울림이 깊어질수록 내겐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쌓여만 간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어색해지고,

시도조차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다.

 

내 직업의 특성상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관련된 기관에 제안을 하거나,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업무의 특징은 대개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획과 회의, 미팅을 대비해서 온갖 경우의 수를 준비하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고 간극을 좁히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숱한 미팅과 식사, 혹은 술자리는 나로 하여금 사회생활의 달인, 언변의 달인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업무가 끝나고 본연의 나로 돌아올 즈음엔 업무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의 나로 돌아온다. 조용함과 평화로움, 혼자의 여유로움, 적막함을 찾아 깊숙이 들어간다. 한때는 이런 내 모습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느낄 정도로 일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지독하리만큼 적막함을 찾아가곤 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서 영화관을 찾는 일들과 같이

내 생활의 폭을 좁혀가며

그렇게 나에게 휴식을 주고 있었다.

 

본질의 차이와 경계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갔다. 사적인 나의 모습과 지극히 상반된 공적인 나의 모습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잘하게 될수록, 정작 나에게 혹은 나의 사람들에게 말을 아끼게 되었던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고 내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을 하기 보다는 내 목소리를 감추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 체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있으면서도 더 혼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적인 나의 모습이 내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었다. 분석하고 설득하며 공격적인 나의 모습에 내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했고, 나 또한 스스로 내 본래 모습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나의 모습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 방식과 속도가 다른, 혹은 여유로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들에게 나 혼자 답답함을 느끼며 조급해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와 그들이 걷는 속도를 무시한 채, 그저 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 그들을, 내 사람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빨리 걷고 더 명확하게 분석하고 판단하라고.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자문을 한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 부끄러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떤 행동을 해온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난 그저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하고 이해해달라고 칭얼거린 어린애였던 것이다. 머릿속에 블랙홀이 생긴 것처럼 나의 기준과 방식들이 빨려 들어가 소멸되는 느낌과 나름의 방식으로 정립해왔던 나의 기준들이 무너져버린 기분이었다. 사과의 말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비겁하게도 몇 달의 시간이 지나서야 술자리의 기운을 빌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내 생각을 강요하고 내 방식만을 원했었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 사과에 대한 대답을 들을 용기도 없었다.

 

그런 생각 하지마라. 저마다 방식이 다를 뿐이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얼마나 빨리 거기에 다다를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는 것뿐이다. 그건 곁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단다. 나의 방식과 옆에 있는 사람의 방식이 다르다고 하고 그게 틀린 건 아니란다.”

 

마흔을 앞둔 아들에게,

칠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께서,

 

몇 십 년을 아끼고 아껴두신 듯한 깊은 한마디 한마디로 조언을 해주시던 날 처음으로 아버지와의 술자리가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해 두해 경력을 더해가고, 통장의 잔고가 조금씩 늘어갈 때쯤 생기는 것이 인생의 자신감이 아닐까. 이러한 자신감의 본질은 나다움의 확고함이 자리 잡고 있음이 아닐까.

 

나답다라는 것은 어찌 보면 나는 이렇다는 고집이 아닐까. 이런 고집이 내 사람들에 대한 잔소리와 간섭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나의 방식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맞고 그들이 틀린 걸까, 혹은 그들이 맞고 내가 어리석은 걸까.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위험을 무릎 쓰고 지구를 구하지만 건물을 파괴했다는 등의 피해를 끼쳤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사람들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노력까지 더해 결과물을 냈음에도 정작 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했느냐혹은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입장의 차이 혹은 관점의 차이, 마음의 차이, 상황을 대하는 입장의 차이가 아닐까. 서운하기도 속상하기도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람의 범주에 있는 나와 그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좋아하는 책,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행동, 추구하는 사상, 경계하는 관습, 습관 혹은 버릇. 저마다의 기준 혹은 가치관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정의를 확고히 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기준에 내 사람들의 관점과 타인들의 사고의 차이를 배척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풍족한 마음이 아닐까.

 

소중한 사람

소중한 마음

소중한 가치관

옆에 있는 모든 것들

다르지만 소중한 기준들과 그 사람들

 

우린 어쩌면 소중한 걸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익숙함에 무뎌진 감정들을 들춰내고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나와 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8.27 10:49 수정 2018.08.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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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