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와해와 반복되는 수난
재러 한인 사회는 명예회복에 관한 소비에트 결정을 환영하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강제이주의 수난이 개혁 개방의 물결 속에 또 다른 형태로 내재되어 나타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페레스트로이까(개혁) 이후 소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요직에 있던 한인들 대신 자민족을 새롭게 임명하고, 자국 민족의 언어를 국어로 채용함로써 러시아어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한인 사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민족분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구소련 전역에 경제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특히 농업중심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경제가 어려워졌다. 이런 와중에
한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이룬 많은 기반을 포기하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다시 한국과 유라시아 곳곳으로 유랑의 삶을 떠나게 된다.
고려인들은 “내 아버지는 연해주에서 태어나 중앙아시아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어디가서 죽을지 모르겠다. 내 자식들이라도
안정된 곳에서 새 삶을 살 수 있으면...”하며 말끝을 자주 흐린다.
새로운 삶의 시작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사는 많은 한인들은 이산가족이다. 아버지가, 오빠가, 혹은 어머니 등 가족 중 일부가 먼저 떠나와 새로운 정착지를 찾고 상황을 보아 하나둘 형편이 닿는 대로 가족을 불러들인다. 그래서 이들의 꿈은 돈 많이 벌어서 두고 온 가족을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정착지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재산을 헐값에 정리하고 경제 상황이 조금 더 좋은 러시아에 돌아오면 다시 빈손만 남는다. 이들이 그래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눈앞의 허허 벌판 그 속에 들어가 희망을 캐는 일이다. 러시아의 변덕스런 기후는 쉽게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벌써 몇 년째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중앙아시아와는 전혀 다른 기후조건. 그래도 이들 곁에 늘 있었던 것은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빈들뿐이었기에, 그 빈 들이 이들을 키웠고 이들을 불러 들였으므로 이들은 오늘도 빈들에 나간다.
일부는 역사적 모국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곳곳에 벌써 8만여 고려인들이 돌아와 외국인 신분으로 대부분 3D업종에 종사하며 일용직 이주 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은 바람을 닮았다. 먼 옛날 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들이 부활을 꿈꾸던 발해의 땅이었을 때에도, 기근에 굶주린 조선의 유민들이 땅을 찾아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던 생존의 땅이었을 때에도, 나라 잃은 울분을 토해내며 독립운동을 위해 모여 들어 한인촌을 건설할 때에도, 고려인들은 바람처럼 모여들었다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다보니 타인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말을 잃어 버려, 문화를 잃어 버려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새 삶을 일굴 희망만 있으면 된다. 바람처럼 떠돌아야 했던 유랑의 역사에 매듭만 끊으면 된다. 바람처럼 떠돌다 이제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이들은 말한다.
“한국이 잘 살아 자랑스럽습니다. 러시아에 돌아가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되지도 않는 한국말을 하곤 합니다.
다 조국이 잘살게 된 덕입니다.”
* 고려인센터 미르 / 대표 김승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