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며칠 동안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봉숭아물이 손톱에 베듯 마음도 물들어 간다. 마음 한 구석에 허기를 느끼는 이여. 일상을 접어두고 여행을 떠나시라.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고 시간조차 걸음을 멈추는 평화가 흐르는 북유럽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를 떠나 스웨덴의 국경 검문소에서 도로 요금을 지불하고 10분 정도 달리자 스웨덴의 작은 국경 마을 사를로텐베르그에 도착한다. 넓은 광장에 길다랗게 컨테이너 박스를 이어 붙인 듯한 독특한 모습의 2층짜리 건물 한 동이 눈길을 끈다. 오늘 밤에 묵을 사를로텐베르그 호텔이다. 밖에서는 작아 보이지만 호텔 내부로 들어가면 객실로 연결되는 직선 통로가 100m를 훨씬 넘을 정도로 엄청 길다. 한번 객실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저나 호텔 옆 대형 쇼핑몰과 슈퍼마켓이 저녁 7시와 8시 사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저녁에 마실 맥주와 안주를 사러 달려간다. 밤 10시인데도 해가 아주 초롱초롱 밝아서 야외 휴게실 나무데크에 앉아 스톡홀름 맥주를 마시면서 스웨덴 국경 마을의 백야를 즐긴다.
스웨덴은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가 이루는 하모니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나라는 중세 초기 스베아족이 중부지방에 촌락을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바이킹시대를 거쳐 13세기 초에 신왕조를 창시하여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았으나, 1523년 구스타브 에릭슨의 지휘 아래 독립할 때까지 사실상 덴마크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17세기 후반에는 한때 유럽의 강대국으로 국세를 떨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덴마크로부터 양도받은 영토인 노르웨이가 독립하면서 오늘날의 스웨덴을 이루게 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표되는 복지정책 아래 경제적 부흥과 함께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스톡홀름을 향해 출발한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그룹 아바의 노래로 아침을 시작한다. ‘맘마니아’, ‘댄싱퀸’, ‘노잉미 노잉유’... 귀에 익은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면서 자연 속에서 탄생한 아바의 음악을 한참 즐긴다. 도로 주위 풍경이 노르웨이와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울창한 숲과 초원은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우리나라 광릉수목원 길을 연상시키는데 아침 드라이브 코스로는 최고다.
이윽고 1시간 쯤 지나자 호수를 낀 도시 칼스타드가 나온다. 베네른호 북쪽 클라르강 하구에 위치한 이곳은 1905년 “칼스타드 협정”이 체결된 곳으로, 이 협정에 의해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분리 독립하게 된다. 칼스타드는 스웨덴 서부의 유서 깊은 호수변 도시로 스웨덴에서 오슬로로 가는 중간에 위치하다 보니,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사람들이 중간에 머무는 경유지 역할을 하고 있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은 통나무를 뜻하는 Stockar와 섬을 뜻하는 Holmar의 합성어로, 통나무섬이라는 뜻이다. 섬과 섬을 잇는 수로가 아름다워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는 14개의 섬이 57개 다리로 엮어져 있다. 시내로 들어서자 붉은 벽돌 건물의 웅장한 시청사와 화사하고 우아한 왕궁이 자태를 뽐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와 페리도 운치를 더한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다리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호수가 있는 시내를 지나서 약간 변두리에 위치한 카크네스토르넷 전망대로 향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 호숫가에 사람들이 많다. 전망대 가는 길 가 주위 야외무대는 락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어 젊은 청춘 남녀들로 법석인다.
이 멋진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바로 스톡홀름 전망대라 할 수 있는 카크네스토르넷이다. 우리나라 남산타워처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쿵스홀멘섬 남쭉에 위치해 있는 스톡홀름의 상징적 건물 시청사는 스웨덴 낭만주의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덴마크를 물리친 구스타브 바사왕이 스톡홀름 입성 400년 기념하기 위해 1923년 라그나르 오스트베리의 설계로 만들어 진 붉은색의 수제 벽돌 건물이다. 두 개의 안뜰은 사무실과 공공 공간을 연결해주며, 그 위로는 우아하고, 위로 갈수록 완만하게 좁아지는 106m 높이의 탑이 고고하게 서 있다. 꽃 모양 창문과 양파 모양 지붕 등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도 선정된 건축물이다.
스톡홀름 시청사의 첫인상은 고딕풍의 유리창과 조화를 이루어 궁전과 같이 웅장하다는 느낌이다. 시청사 내부는 1층은 지붕이 있는 안뜰 구조의 ‘블루홀’이다. 해마다 12월 10일에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끝난 뒤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10,270개의 파이프로 구성되어 스칸디나비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오르간은 블루홀 2층 계단 위에 있다. 2층은 1,900만장의 금 모자이크로 이뤄져 있다는 비잔틴 스타일의 '황금의 방'이다. 노벨상 시상식 후 축하 무도회가 열리는 44m의 연회장으로,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스웨덴 화가 아이나르 포르세트가 디자인하고, 200여명이 2년 동안 작업하여 완성했는데, 고대 비잔틴 스타일로 꾸몄다. 정면은 멜라렌 호수의 여신과 여왕의 모자이크, 좌우 벽에는 스웨덴의 역사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청은 이미 이 건물이 완공된 그 날부터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공무원들의 사무실과 시의회 등 극히 일부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다. 시청사 앞 광장은 멜라렌 호수를 바라보며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톡홀름에 사는 것을 그토록 행복해 하는 걸까?
쿵스홀멘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왕궁과 구시가가 있는 감라스탄이다. 감라스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면 미술관 섬 솁스홀멘, 솁스홀멘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면 박물관 섬 유르고르덴이 차례로 연결된다. 심지어는 버스처럼 5개 정거장 아무 곳에서나 타고 내리며 멜라렌 호수 위 섬들을 이어주는 운하를 따라 천천히 유람하는 ‘타고내리는 보트 투어(Hop-on, Hop-off Boat Tour)’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스톡홀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두 다리에 의지하고 눈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감라스탄(Gamla stan)은 오래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스톡홀름 정중앙에 있는 섬이다. 13세기 여기서부터 도시가 발달해 지금도 바로크부터 로코코, 고딕 등 다양한 시대에 세운 고풍스러운 건물이 섬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옛 건물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울긋불긋 오래된 건물들이 얽히고 설켜있어 미로를 방불케 한다.
스토르로트예트 광장은 노벨박물관, 증권거래소 등 고아한 건물과 노천카페, 레스토랑이 빙 두르고 있어 도심은 활기가 넘친다. 1520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이 광장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스웨덴 귀족 80명을 처형한다. 노르웨이, 덴마크와 맺은 칼마르 동맹에 반기를 든 스웨덴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다. 이에 구스타프 바사는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수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1523년 6월6일 스웨덴 국왕 자리에 오른다. 그날부터 6월6일은 스웨덴의 국경일로 지정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스토르로트예트 광장 옆으로는 길을 헤매도 좋을 만큼 예쁜 골목이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안 들어가곤 못 배길 만큼 예쁜 잡화점, 옷가게, 그릇가게가 골목 안에서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골목을 누비다 섬 가장자리로 나오면 다시 항구와 바다가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감라스탄의 골목은 좁다. 하늘을 다 가릴 만큼 높은 중세의 건물들 때문에 골목은 더 좁고 어둡다. 골목들은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 이곳을 지났던 사람들의 제각각 다른 500년 시간 동안의 이야기들을 여행자들에게 들려준다. 거친 돌바닥 때문에 발에 통증이 오지만, 그런데도 그 좁아터진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골목 안은 행복한 시간이 널려 있다.
스웨덴 왕궁은 구시가의 북쪽에 13세기 초 요새로 지어진 성이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왕궁으로 증축되어 현재 모습을 가지게 된다. 지금은 외국의 귀빈을 위한 만찬회장 등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궁전의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데, 왕가의 보물과 가구, 다양한 미술품, 그리고 화폐를 전시하는 박물관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바사호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당시 최강의 해양대국이던 바사 왕가의 구스타브 2세가 30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건조하여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 때 스톡홀름 항에서 침몰한 전함이다.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화 전함이 침몰한 이유는 애초에 계획한 것보다 많은 수의 포를 싣는 바람에 상부 하중이 너무 커 균형을 유지 하지 못하고 20분 만에 32m 깊이의 바다에 가라앉게 된다. 그 바사호는 300년 이상 바다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1961년 인양된다. 300년의 시간 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바사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스웨덴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게 된다.
스톡홀름 항에서 핀란드 트루크를 향해 크루즈선 실사라인에 몸을 싣는다. 크루즈선이 발트해로 나가는 항로 주위로 파스텔 빛 건물이 솟아 있는 물길에 둘러싸인 섬, 드넓은 수면 옆으로 숲이 우거진 섬, 알록달록한 별장이 있는 섬. 섬, 섬, 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호숫가 푸른 공원은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과 노래 소리로 떠들썩하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행복한 비명을 연신 질러대는 어린아이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것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곳. 사고가 구속되지 않다보니 별의별 발상으로 기발하고 멋진 상품들을 만들어내는 추종 불허의 창의력. 스톡홀름의 햇살을 맞으며 거리를 걷다보면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방인이면서도 나 또한 그들의 그 무한한 자유에 몸이 젖는다.
한없이 즐기고 누리되, 그 어느 것 하나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도시. 굳이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고, 최상의 자연 환경 속에 산다고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 그 어디에도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게까지도 그 행복을 전염시키는 낙원이다.
갑갑한 선실을 벗어나 갑판 위로 올라선다. 발트 해로 나오니 하늘과 바다가 깊고 넓게 열린다. 갑판 위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서있기 조차 힘들다. 그 바람 속에서 수없이 묻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묻고 또 묻는다. 미지(味知). 아직 만나지 못한, 아직 알지 못하는, 어느 곳, 어느 것, 거기에는 분명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그곳이 장대한 풍광이든, 순정한 이국 소녀의 눈망울이든, 광야의 태양이든, 비바람이든, 거기에는 내밀히 솟아나는 비상(飛上)의 힘이 있다.
나는 이 날, 핀란드 트루크 가는 크루즈 갑판 위에서 펜스를 부여잡고 한참을 서있었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