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휘발유세 등 간접세와 조세정의

국민의 경제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세금이다. 1215년  영국이 대헌장에서 '대표 없는 과세 없다.'라는 선언을 한 이래 민주국가에서는 법치주의와  조세법률주의가 확립되었다. 왕이나 국가권력이 마음대로 세금을 거둘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에 휘발유값이 치솟고 있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을 앞두고 서민들의 걱정이 크다. 그런데 휘발유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알면 은근히 화가 난다. 휘발유 가격의 약 60%는 세금으로 정부가  걷어 간다. 대략적인 계산으로 만원을 지불하고 휘발유를 주유하면 그 중 6천 원이 세금이라는 뜻이다.

술값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나 맥주는 술값의 절반 이상이 세금이다. 예를 들면 공장 출고가가 1,000원인 소주 한병에는 주세 72%와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가 부과된다. 이어서  출고가와 주세, 교육세를 합산한 금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부과한다. 그러면 원가 1,000원의 소주에 세금만 1129.6원이 붙는다. 애주가들이 술집에서 소주 한 병에 3-4천 원을 주고 마시는 것은 세금 외에 유통 마진까지 붙기 때문이다.    

담배는 이보다 더욱 심하다. 담배가격에는 세금뿐만 아니라 온갖 부담금이 부과된다.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외에 폐기물부담금, 엽연생산농가지원기금, 건강증진부담금 등의 부담금이 담배값에 슬쩍 따라붙는다. 4,500원 짜리 담배 한 갑을 사면 담배 가격의 73.7%인 3,318원을 세금과 부담금으로 내는 꼴이다. 국민연금이 조기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자, 최근에 정부는 많이 내고 늦게 받는 대안을 만들려고 하다가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한발 물러섰다. 대신 건강증진부담금을 담배가 아닌 술값에 부과하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과세편의주의의 전형적인 형태다.

휘발유나 술, 담배는 서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품목들이다. 여기에 부과되는 세금과 부담금은 소위 말하는 간접세다. 술 한병을 사면 재벌 2세이든 노숙자이든 똑같은 금액의 세금을 부담한다. 휘발유나 담배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재산이나 소득에 관계 없이 무차별적으로 부과하며 물품을 사는 즉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간접세다. 그래서 세수가 부족하면 정부는 손쉽고 조세저항이 적은 휘발유세나 주세, 담배소비세를 올리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사업을 독점하여 이득을 챙겼던 품목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거나 중독성이 있는 기호품이었다. 소금, 철, 술, 담배 등을 전매한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시대가 변하여 지금은 전매 대신 세금으로 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동차 보급의 보편화에 따라 휘발유도 이런 품목에 들어갔다. 

전체 세수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2015년 기준 4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48.4%에 비해 5.7%포인트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단순비교는 별로 의미가 없다.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간접세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일본은 오히려 간접세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낮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랭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서 세금은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엄격하게 부과하고 징수해야 한다. 우리나라 세법은 세계적으로 복잡하고 어렵기로 유명하다. 세무 공무원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것이 세법이다. 그런데 해마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예산심의를 하면서 예산부수법안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세법개정안을 예산안에 붙여서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관행이 있다. 복잡한 것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어떻게 알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서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휘발유세, 주세, 담배소비세와 부담금 등을 인상할 때는 개별법안을 엄격하게 심의하고 정확한 입법절차에 의하여 관련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손쉽게 세금을 거둘 수 있다고 이런 간접세를 은근슬쩍 올리다가는 가까운 장래에  행정부나 입법부 모두가 소비자들의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이봉수 논설주간


 



이봉수 기자
작성 2018.09.09 21:45 수정 2018.09.0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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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