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해후

김회권



얼마 전의 일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느 꽃가게 앞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한 노인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기에 왠지 낯설지 않았다. ‘저분을 어디서 봤을까?’ 그 생각을 하기까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반가움에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그분도 한눈에 나를 알아본다. 반가움과 함께 덥석 맞잡은 두 손에 지난 세월들이 전기처럼 흐른다. 따뜻하면서 아픈 기억들이다. 시간이란 예기치 못한 어느 한순간과 맞닥뜨리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히 다가오는가 보다. 이렇게 이분을 만나니 모든 게 바로 엊그제 같고, 참 뜻밖이다.  


그분은 내 고향 의령 용덕면 사람이다. 비록 많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의 모습은 변함없다. 성장기 때 멈춘 듯한 작달막한 키와 숯검정을 발라놓은 듯 까무잡잡한 얼굴에 코는 어찌나 큰지 얼굴 전체에 코 하나만 달랑 붙은 그런 인상이다.


이런 얼굴 때문에 예전 고향 사람들은 그에게 <먹코>라 별명 지어 불렀다. 철부지였던 어린 나도 그리 따라 부르며 놀리었다. 더욱이 그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삼룡이라 기억된다. 동네 어른들은 그의 이름 앞에 꼭 <벙어리>라는 명칭을 붙였다.


나는 처음 <삼룡>이라는 이름에 대해 별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언젠가 <벙어리 삼룡>이라는 흑백영화가 마을회관에서 상영되고, 나도향의 단편소설 <벙어리 삼룡>이가 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서야 내용을 짐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 하나 풀리지 않은 게 있다. 그가 어찌해서 우리 마을까지 찾아들게 되었는지 모른다. 소문엔 윗마을 교암리 장씨 아들이라는 말이 있고, 애초에 이 마을 저 마을 동네를 떠도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으나, 여하튼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는 또 어딘가 좀 부족한 구석이 있었다. 누가 흉 되게 놀려도 얼굴 찌푸리거나 화낼 줄을 몰랐다. 계산속으로 속여도 그런 줄 모른다. 그저 우직스럽게 똥장군만 짊어지고 이 동네 이 동네를 나다닐 뿐이었다. 간혹 그가 모정 앞을 어슬렁거릴 때면 마을 어른들은 어이, 먹코야? 오늘 심심하면 토시마을에 가서 색시나 하나 업고오지 그래하고 놀렸다. 그럴 적이면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한량없게 웃기만 했다.


그는 서낭당 가는 산날멩이 아래 조그마한 움막집에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서낭당 앞을 지나칠 때면 언제고 돌멩이 하나씩를 집어 돌탑에 얹히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뭔가를 간절히 빌었다. 이를 본 먹코 아저씨도 그 앞을 오갈 적이면 돌멩이를 집어 들고서 돌탑에 얹히었다. 그리고 무어라 염원하듯 흉내 냈다. 덕분에 돌탑은 나날이 높아졌고 튼튼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의 움막집 앞엔 커다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정승처럼 서 있었다. 오색 천을 두른 그 나무는 어린 나에겐 몹시 두려운 존재였다. 그 미루나무가 언제고 먹코야?” 하고 부르면, 먹코 아저씨가 움막집에서 금방이라도 귀신 되어 나올 것 같아서다. 나는 한낮에도 그 앞을 지나지 못했다. 그 옆 과수원 길을 한참 휘감고 돌아서야 집에 갔다.


먹코 아저씨는 나이 삼십이 훌쩍 넘었는데도 장가를 들지 못했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에 농사지을 밭뙈기 땅뙈기 하나 없었다. 더욱이 정신까지 흐린데다 풀풀 냄새까지 풍기는 똥장군에게 시집올 처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낮이면 논밭에 코를 박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밤이면 까맣게 탄 가슴에 말술을 들이붓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종종 보았다.


어느 해 따뜻한 봄날이었을까. 무들과 야트막한 언덕배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데, 먹코 아저씨가 똥장군을 짊어지고 가는 게 보였다. 우리의 심술은 다시 돋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의 뒤를 쫒으며 삼룡이 코는 먹코! 먹코는 왕굴뚝! 왕굴뚝은 똥개!” 하고 놀렸다. 어떤 아이는 그가 짊어진 지게 끈을 뒤로 잡아당기는 몹쓸 짓도 서슴없이 했다. 그때마다 먹코 아저씨는 하지 마, 힘들어어눌하게 말을 뱉어내고는 홀연히 과수원으로 들었다.


우리의 심술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니 더욱 억세졌으며 치밀했다. 어느 땐 그의 집까지 찾아들어 놀리며 도망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먹코 아저씨는 화를 내거나 호통 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사에 엷은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런 어느 여름이었다. 먹코 아저씨가 건너 마을 과수원지기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절로 굴러온 기회였다. 우린 먹물 같은 어둠이 깔린 으슥한 밤에 삼삼오오 정자로 모였다. 그리고 아저씨가 지키는 복숭아밭으로 납작 배를 깔고 들어갔다. 우리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몸 무겁게 서리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먹코 아저씨가 과수원지기를 그만두셨다. 우리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어른들께 야단맞고야 알았다. 한 번은 도랑에서 가재를 잡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먹코 아저씨는 똥장군을 짊어지고 도랑을 건너고 있었다. 한 아이가 아저씨의 바짓가랑이 근처에 돌멩이를 던지며 물창을 일으키자 너나없이 따라했다. 바로 그때, 내 신고 있던 검정고무신 한 짝이 그만 벗겨져 도랑 아래로 떠내려가는 거였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발만 동동거리며 소리쳤다. 그때 도랑을 다 건너던 먹코 아저씨가 이를 보고는 황급히 물 밖으로 지게를 벗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리곤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드는 거였다. 온몸이 흥건히 젖히고야 가까스로 내 신발을 건진 먹코 아저씨는 내 신발을 머리 위로 팔랑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런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다. 무서워 뒤도 안 돌아보고 달음박질을 쳤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먹코 아저씨가 내 신발을 풀밭에 살포시 내려놓고 뒤돌아선다. 바로 그때였을까. 난데없는 쌍무지개가 아저씨의 머리 위로 지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삼십 여년이란 세월이 홀라당 흘렀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먹코 아저씨.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로 아무 일도 못하실 것만 같던 아저씨가 어엿한 꽃집의 주인이며, 단란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초로한 할아버지가 되신 그분을 이렇게 만나자 나는 숙였던 고개가 더욱 꺾이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나는 마디 굵은 그분의 손에서 꽃다발 한 아름을 사들었다. 무슨 돈이냐는 말씀에 용서해 달라는 사죄의 마음까지 담아드렸다.


꽃집을 나서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먹코 아저씨가 환한 얼굴로 웃고 계신다. 이제 그 분은 예전 그 우스꽝스러운 <먹코>가 아니다. 내 어릴 적 그토록 놀려댔던 <벙어리 삼룡>이도 아니다. 좁다란 내 가슴에 환한 불빛으로 찾아드신 참으로 멋진 할아버지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9.10 09:36 수정 2020.09.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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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