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꿈 이야기

호접춘몽



장주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른한 봄날 꽃밭을 훨훨 나는 나비 말이다. 그 나비는 자기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꿈을 깨고 일어나 보니 그는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인간인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 장주로 변한 것일까.

장자는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만물이 하나인 절대의 경지에 서면, 인간 장주가 곧 나비일 수 있고 나비가 곧 장주일 수도 있다. 이런 경지에서는 꿈과 현실의 구분도 없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호접춘몽이다.

불교의 금강경에서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라만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꿈과 같이 보라고 했다. 꿈은 허상이고 거기서 깨어나면 실체가 드러난다. 꿈속에서 바라보는 일체의 현상은 신기루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침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아서 꿈만 깨면 허망하게 사라진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일체의 현상이 쓸모없는 허깨비라고 단정해버리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이 꿈같은 현실도 궁극은 실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질과 현상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으로 설명했다.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는 그림자 같은 현실은 질료라는 본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허상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체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나비가 꿈에서 깨어 인간 장주로 돌아오면 꿈속의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생로병사나 희로애락도 그런 것이다. 삶과 죽음 마저도 본래 없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삶이 비록 물거품 같은 것이라 해도 그 자체는 얼마나 아름다운 여정인가.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귀천하면서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노래했다.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절대의 경지에 서면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진다. 아트만과 브라만은 본래 하나라는 것만 깨달으면 삼라만상은 나 아닌 것이 없다. 모두가 나인데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웃집이 행복해야 우리집이 행복하다는 진리를 알려면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봉수 논설주간


 

 



이봉수 기자
작성 2018.09.18 15:09 수정 2018.09.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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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