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산책길이건 공원길이건 여기저기에 보이는 꽃씨들을 제법 많이 모았다. 꽃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나눠주고도 꽃밭 가득 꽃씨들이 싹을 돋우었다. 접시꽃과 과꽃은 새순일 때 그만 고라니의 밥이 되어 꽃은커녕 죽을둥살둥 겨우 목숨 줄을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팔꽃은 옆에서 자라고 있는 금송화 줄기를 감고 올라갈 만큼 어엿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나팔꽃은 덩굴식물이므로 땅에 그냥 놔두면 안 되는 일. 타고 올라갈 끈을 만들어주던가 긴 막대기라도 꽂아주던가 아니면 나무 옆에 심어 나무를 타고 오르게 해야 제 성품대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 꽃을 마음껏 피우게 되는 것, 그러니 나팔꽃의 의지대로 나아가게 해 주는 게 나팔꽃을 심은 자의 의무일 것이다. 하남시의 그 안주인처럼.
하남시 빌라에 세를 들어 살 때 4층에 사는 주인댁에 볼 일이 있어 올라간 적이 있었다. 거실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파란 하늘이 거실 가득이었는데 둥글고 납작한 화분이 그 왼쪽에 놓여 있었다. 나팔꽃이 서너 포기 심어져 있었고 천장까지 줄을 연결하여 놓았다. 오호! 줄을 타고 오르던 분홍빛 나팔꽃들! 너른 거실이 부러웠던 게 아니라 그 나팔꽃 화분을 그곳에 두어 한 폭의 그림처럼 가꾸며 사는 안주인의 마음씨가 탐이 났었다. 이제 그 마음씨를 나도 실행에 옮겨 볼 때가 온 것이다.
옆쪽 매실나무쪽으로 끈을 연결해줄까 아니면 기둥을 몇 개 세워 사다리처럼 끈을 묶어줄까 궁리 중에 순간적으로 울타리가 떠올랐다. 맞다. 고라니를 막기 위한 울타리를 망으로 쳐 놓았고 그 높이 또한 꽤 높으니 나팔꽃이 타고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이 아닌가. 신이 나서 울타리를 돌아가며 구석구석 열 포기 정도의 나팔꽃을 심었다. 욕심이 과하시구먼. 뭘 그렇게 많이 심어. 아닌 게 아니라 나팔꽃 모종이란 모종은 죄다 심었으니까.
첫 나팔꽃과 대면하던 새벽 여섯시 그 아침을 어찌 잊으랴. 이슬에 젖은 채 나팔꽃 잎사귀 사이에서 조촐하게 없는 듯 피어났으므로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던 얼굴. 여덟시가 조금 넘었는데 그렇게 빨리 그 순한 나팔꽃의 꽃잎들이 접히던 그 순간을 또 어찌 잊으랴.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이별 통보라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전 열한시쯤인데 이미 꽃잎을 빗장처럼 너무도 굳게 닫아버린 나팔꽃의 침묵을 또 어찌 잊을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중략.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가 내 입가에 맴돌았다.
처음에는 나팔꽃 송이를 하나하나 헤아릴 만큼 감질나게 피더니 날이 갈수록 나팔꽃 덩굴은 무성해지고 꽃송이는 늘어갔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꽃송이 수를 세어보니 오십여 송이가 넘었다. 나팔꽃의 생명력이 불타오르는 중이었지만.
감탄도 잠시 문제점이 감지되었다. 바깥쪽 울타리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 덩굴들이 텃밭으로 통하는 서쪽 바람을 막아선 것이었다. 아직도 나팔꽃 덩굴의 기세가 등등하니 지금보다 훨씬 촘촘하게 울타리를 타고 오를 것임은 확실한 일. 이제 가을 김장용으로 무와 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배추는 열에 열은 썩기 마련. “그래도 이번 주까지는 그대로 둡시다. 나팔꽃이 한창인데. 아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여름내 잡풀로 무성한 울타리 안쪽 텃밭을 정리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팔꽃 덩굴이 마치 적군처럼 물샐틈없이 안쪽 울타리에도 진을 치고 있었다. 다알리아며 루드베키아와 금송화가 나팔꽃 덩굴에 목과 팔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다알리아 잎사귀들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병들고 썩어있었고 꽃송이도 피다말고 짓물렀다. 소담스레 자라나고 있는 국화에도 나팔꽃 덩굴들이 얼기설기 엉켜들고 있었다.
다알리아를 감고 있던 나팔꽃 덩굴을 잘라 냈고 금송화를 감고 있던 나팔꽃 덩굴을 잘라 내다보니 일주일 정도 더 나팔꽃을 보자던 마음이 바뀌었다. 여보 나팔꽃덩굴을 잘라내야겠어요. 그냥 놔두면 텃밭을 죄다 망치겠어요. 아군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던 나팔꽃이 덩굴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적군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울타리 안쪽을 맡았고 나는 바깥쪽에서 나팔꽃 덩굴을 잘라냈다. 뿌리를 뽑아놓고 보니 심을 때 가늘었던 뿌리가 새끼손가락만큼 굵어져 있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나팔꽃을 피워 올릴 준비 중인 건강한 뿌리인가. 덩굴을 잘라내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심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마구 잘라 버리는 거야. 나팔꽃들이 나팔을 불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내 표정이 어둑해보였던가. 그가 일침을 놓았다.
“그러니까 꽃나무가 아무리 좋아도 함부로 심는 게 아니지 목숨을 가진 것들은 함부로 들이는 게 아니지”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고 덩굴이 잘린 채 아무렇게나 던져진 나팔꽃 덩굴에서 그 다음날에 나팔꽃이 두어 송이 피어났다. 어찌나 놀랐던지 다시 흙에 심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멈칫거렸다. 이틀 뒤에도 또 피어났다. 놀라웠다. 피어나려는 자연의 이치를 일순간에 잘라낸 나는 가슴이 뜨끔할 수밖에. 꽃송이를 어루만져주면서 미안하다 말할 수밖에. 그의 말을 깊이 되새겨보며 반성하는 수밖에.
“꽃나무도 함부로 심는 게 아니지”
[글=박찬미]
전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