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순간을 담는 스트릿 포토그래퍼, 손종우

행복을 찾아서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행복한 순간만을 좇아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게. 더불어 왜 행복한 순간이어야 하며 왜 그 순간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다. 술 냄새 가득한 고통의 밤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던 어린 날의 불행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이 행복에 대한 무조건적인 갈망으로 이어진 게 그 시작점이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비교적 부유한 집의 친구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었지만, 그 즈음 집은 기울어져 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티가 나기 시작했는지 친구들의 놀림이 잦아졌으며,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다툼 또한 잦아졌다.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경상남도 창원에서 서울로 전학 왔던 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청바지를 사 입고 캡모자를 쓰고 다니며, 주말이면 꼬마 둘이서 노래연습장에 가곤 했는데, 그때 즐겨 부르던 노래로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까지 오르니, 어느 순간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친구들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내가 되어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소통의 힘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내가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또 그 순간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작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연예인을 비롯해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소위 말하는 유명인들을 동경해왔고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10대 때는 그들처럼 되겠다는 추상적인 조차도 없이 그들이 느끼고 있을 순간에 대한 동경만 존재했다. 그 동경의 대상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하자면, 정확히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때의 행복한 순간이라 말할 수 있겠다.

 

보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순간이라거나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환호를 받는 순간을 들 수 있는데, 결국 그들의 그 순간을 동경했던 그날이 이 글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시작점이 된 셈이다. 결국 내 기준에서 행복한 순간소통은 공존의 관계다. 따라서 동경만 해오던 그 삶을 내가 살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있어서는 안 되기에, 스무 살이 될 무렵 자연스럽게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내가 행복한 순간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했을 때 나 스스로가 재밌어야 했다. ,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해야만 했다. 두 번째로는, 소통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매개체가 필요했고, 좋은 매개체를 얻기 위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최대한 많은 시간을 행복하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야 했다. ,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며,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겠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때부터는 이 결론에 맞는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 내가 좋아만 했던 일은 잘 하는 일이 되도록 배우고, 반대로 잘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던 일들은 흥미를 붙일 수 있을만한 관련 직업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입대를 하게 됐는데, 군생활의 절반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던 시기를 거쳐, 어느덧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 즈음, 우연히 틀은 tv방송을 통해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이자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스트릿패션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을 접하게 된다. 스트릿패션 포토그래퍼street-fashion photographer, 말 그대로 거리 위의 패션을 카메라로 찍는 사람을 일컫는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서울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매 시즌마다 패션위크가 진행되며, 대표적으로 뉴욕이나 파리 컬렉션 같은 경우에는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더불어 스트릿패션 포토그래퍼도 모두 모여 거리 위에서 자신만의 순간을 담는다.

 

당시의 나는 외국인이 사용 가능한 2년의 휴학기간을 군대에 사용한 유학생 신분이었고, 전역과 동시에 북경으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복학과 동시에 자퇴를 결심하고 내 길을 가겠노라 호기를 부리기도 했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집안의 심한 반대와 혹시 모르는 최악의 경우에 대한 두려움을 단호히 무시할 배짱이 없었다. 결국 우선은 학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학업 외 시간에는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서 구입한 작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거리 위의 멋있는 사람들과, 북경 패션위크의 순간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2015년의 7,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고, 나름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으로 무사히 4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졸업과 함께 나의 20대는 이미 절반이 지나가 있었고 내가 동경하고 그려왔던 모습에는 여전히, 아니 조금도 닿아있지 않았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타이틀로 인해 얻게 된 가치들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에 그날의 결정과 지나간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학생이었던 내 신분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더 많이 노력하고 도전하지 않은 채 졸업 후의 모습만을 기대하며 현실에 너무 안주해있었던 그 모습은 막연한 동경만이 존재했던 10대의 그날과 겹쳐지며 모든 순간이 후회가 되어 돌아왔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다행히도 다가올 시간에 대한 결심으로 바뀌었다. 길었던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그동안 가장 동경해왔던 순간을 찍어오겠노라 결심하고는 한 달 만에 모든 비용을 마련하여 모든 것을 뒤로하고 패션위크의 시작이자 가장 가고 싶었던 뉴욕으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정말 운이 좋았던 건, 아무런 연고도, 정보도 없이 무작정 날아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진행되는 쇼장을 찾아다니며 원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거의 15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의 도움으로 숙식 또한 해결할 수 있었다.

 

고마운 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끝낸 나의 본격적인 첫 패션위크 시즌은 내게 너무도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고, 또 바뀌게 해주었다. 패션위크는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멋진 사람들이 자신을 뽐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가끔씩 생겨나는 분노와 슬픔의 순간을 포함하여 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뜻밖의 순간을 끊임없이 공유할 수 있었고, 그 현장 속을 뛰어다니며 제약 없이 셔터를 누르는 매 순간은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 내가 어떤 사진을 찍고 앞으로는 어떤 사진을 찍을지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으며, 확고해져가는 생각만큼 시야는 넓어졌고, 나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결과물에서 얻는 만족과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첫 패션위크를 무사히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한 일 은, 뉴욕에서 찍은 사진들로 <The moment> 라는 타이틀의 첫 전시를 여는 일이었다. 비록 전시 공간을 비롯하여, 인화, 설치까지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진행해야 했고, 상업성을 배제하고 찍은 사진들이었기 때문에 제한되는 부분과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건, 돈을 위한 움직임보다 중요한 게 창작자의 고집이고, 창작자의 고집만큼이나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한 고민이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그 고집의 답이 패션과 상업성보다는 오롯이 내가 느낀 그 순간에만 집중한 사진이었고, 그 고민의 답은 전시를 열어 내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기에, 전시는 곧 행복한 순간소통이라는 둘 사이의 매개체였다. 첫 전시는 다행히 내 기준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내 사진을 궁금해 하고 재밌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하며 사진을 찍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비록 처음이었지만 앞으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방식이 되었다.

 

이제는 총 세 번의 시즌을 거쳤고, 뉴욕뿐만 아니라 세계 4대 패션위크로 불리는 런던, 밀라노, 파리를 오가며 사진작업과 전시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지금은 책이 나올 시점에 있을 네 번째 여정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해외 여기저기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남는 시간을 전부 사진 찍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쓰며, 또 그 경비를 다 투자하면서까지 이 일을 고집하는 건,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행복이라는 순간의 가치가 무엇보다 크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만큼 움직여야 한다. 만약에 막연한 동경만을 하며 사진을 찍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또는 어떤 이유로든 그날의 선택들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막연히 다른 이의 삶만을 동경하며, 작은 행복조차 느끼지 못하고 가치라고는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꿈만 같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건 물론 힘들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고집만큼 사진의 깊이는 깊어지고, 고민하는 만큼 소통하는 삶이 일상이 되어가며, 그만큼 행복한 순간은 길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일을 통해서 행복한 순간을 하나하나 모아 완전한 행복을 만들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비춰질지 모르는 이 모습 역시도 작지만 무엇보다 뚜렷했던 행복의 순간이 만들어 준 힘이다. 그렇기에,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아직 모르겠다면, 혹은 행복할 자신이 없다면,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9.21 14:27 수정 2018.10.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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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