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눈빛

박찬미



한번이라도 그녀와 눈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다림을 가슴에 품게 된다. 그녀의 눈은 투명한 물속 같기도 하고 가을 하늘같기도 한데, 지순하면서도 애절한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어 금시 무어라 말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뒤이어 눈물방울이라도 뚝 떨어뜨릴 것만 같은 눈망울은 또 어떤가.


이른 봄쯤이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공중을 가벼이 날아다니고, 땅은 촉촉해져서 우리는 씨앗을 뿌릴 준비 중이었다. 잔뜩 엎드린 자세로 그는 한손에 호미를 들고 한손에는 씨앗을 들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잔소리 겸 구경을 하려던 참이었다.


자두나무가 늘어선 뒤뜰 그늘 쪽에서 그녀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기절할 만큼 놀란 우리에 비하면 그녀는 얼마나 여유로웠던가. 첫 대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이라도 된다는 듯 우리 곁으로 유유히 다가와서는 그 순한 눈으로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다래순과 취나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앞산을 올라간 적이 있었다. 우리말고도 다른 가족과 함께였다. 우연히 길모퉁이에서 만난 그녀는 오래된 이웃인양 우리한테로 섞여들었다. 앞서서 올라가다가 기다려주기도 하고 맨 뒤에서 호위하듯이 따라오기도 했고, 그날 함께였던 아이들이 뛰어 놀 때마다 덩달아 춤을 추듯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무 그늘에 자리를 마련하고 도시락을 먹을 때에는 요조숙녀처럼 옆에 앉아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았는데 그 양순한 눈빛에 반한 우리는 그녀에게 맛난 것들을 자꾸만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우리가 산책이라도 나설라치면 그녀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앞장을 서 주었다. 대여섯 발 앞서서 걷다가는 뒤돌아보아주고, 우리가 늦는다 싶으면 기다려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할 말을 산처럼 쌓아놓고 사는 벙어리 소녀를 연상하게 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제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았는데, 그 눈빛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연인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엉덩이 살집이 두둑하여 우리가 뚱순이라 이름 붙인 저 계곡 위쪽에 위치한 도자기집 개다. 맹인견이라서 사람과 눈을 맞출 줄 알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명령에 복종할 줄도 아는데 우리 컨테이너 박스집에 수시로 들른다. 탄력 있는 엉덩이로 열려진 문을 쿵쿵 두드려 본 뒤에 얼굴을 쑥 들이 밀어 방안을 훑어보는데 영판 없는 마실 객이다.

우리와 눈이 딱 마주치기라도 하면 두 발을 방안으로 냅다 들여놓고 엉덩이를 흔들며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와 안기거나 비빌 기세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잠시 단잠에 빠져 들었다가도, 그녀의 기척이 느껴지면 벌떡 일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순하디 순한 눈으로 우리를 빤히 올려다본다. 우리도 선하디 선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이만한 눈 맞춤이 또 있을까. 욕심, 욕망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가식을 벗겨낸 맨살 그대로의 닿음이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 것 같은 따스함과 애잔함이 섞여있어 기쁜 듯 슬픔이 묻어나는 저 눈빛. 뺑덕어멈만큼이나 변덕스럽고 타산적인 마음을 가진 우리네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녀와 눈맞춤 하는 시간만큼은 혹 모를까.


저 눈빛을 가진 사람을 기억한다.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허리에 질끈 묶고 다니던 시절, 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넘어질 듯 달려와 반가워하시던 내 할머니다. 가마솥에 찐 개떡이나 감자 또는 옥수수를 채반에 담아 내가 마루에 가방을 던져놓기 무섭게 대령해 놓던 분이시다. ‘어서 먹어라 어서 우리 강아지할머니의 눈빛이 바로 저러하셨다.


그 눈빛이 잠시 사라진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큰오빠에게 서울에 집을 사주고 싶어 하셨고, 동네 앞자락을 떡하니 차지했던 논을 팔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때였다. “나 죽거든 팔거라 절대로 안 돼할머니는 머리를 마루에 쿵쿵 찧으면서 통곡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십 후반에 돌아가셨고, 홀로 되신 할머니가 아홉 남매를 거두어 먹일 수 있었던 땅이었다. 목숨 줄이었다. 대문간을 나서서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렀을 땅이었다. 영영 할머니의 부드러운 눈빛을 잃는 것 같아 얼마나 나는 두려워했던가. 다행히 할머니의 슬픈 모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해낸다. ‘인정 많고 따스한 분이셨지지나가는 걸인이나 방물장수들도 아예 우리 집 대문간을 먼저 기웃거렸다.


뚱순이를 기다리는 날이 많아져간다. 산으로 들로 종횡무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그녀를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풀을 뽑다가도 점심을 먹다가도 우리는 이 말을 반복한다. “왜 오늘은 안 오는 거지?” 먹을 거라도 챙겨놓은 날에는 더 그랬다.


도시에 있는 날에도 그녀를 기다리는가. 나는 종종 뒤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한다. 가방을 맨 아이가 넘어질 듯 달려가고 노인이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지나가고, 두부 장수 아저씨 종소리에 맞추어 아랫집 아주머니가 신발을 끌며 달려 나가는데, 이런 날은 그리워져서일 것이다. 만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순하디 순한 눈으로, 선하디 선한 눈으로 마주칠 뚱순이 같은 눈빛을. [글=박찬미]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0.06 10:57 수정 2020.10.0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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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