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평화를 위해 던지는 낯선 시선 <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박한솔



동네에 설치된 벤치는 코 간지러운 봄에도, 살이 축축하게 녹아내리는 여름에도, 손마디가 저리는 겨울에도 그리고 그냥저냥 앉아있을 만한 짤막한 가을까지 동네 어르신들 차지다. 오래된 동네의 익숙한 풍경. 그들은 이름이 없고, 어르신이거나, 할배거나 할매다. 시청에서 심어놓은 딱딱한 푸른 나무 옆에서 그들은 점점 희어지고, 옅어지다가 마침내 하나 둘 사라진다. 동네 곳곳의 박스를 모으다 잠시 쉬다가, 손주들의 공부에 방해될까봐, 남겨진 시간의 여유가 유가 되어버리는 지루함 속에서. 그들은 그저 앉아 있다.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회는 한 인간이 살아온 세월까지 보듬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연 그런가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제일 심각하다. 노인 빈곤의 문제는 단지 몇몇 노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짊어지고 가야할 젊은 미래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노인 복지의 문제를 놓고 세대 갈등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모두 늙는다.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할 세대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세대 간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누구나 넉넉한 할머니 품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청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세월이 쌓일수록 지혜와 관용도 함께 쌓여가기 마련이다. 갈등과 혐오가 만연한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거창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관용과 지혜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우주를 관통해 하나의 점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어느 점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구라는 정거장에 태어나,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머물도록 해 준 나의 부모와 또 누군가의 부모인 노인들을 공경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오래된 별도 빛을 낼 줄 아는 것처럼, 노인들의 지혜와 관용으로 공동체는 더 빛날 수 있다.

친부모를 살해하거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끔직한 범죄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니 분노와 소외가 만연해지고 있다. 나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풀이를 해야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하는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정서적 학대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42169건을 시작으로 2330, 2730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2017년에는 3064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학대 중 42%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금까지 사회를 이룩해왔던 노인들에 대한 사회구조적 홀대가 끔직한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나 시간이라는 자연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지 영원히 누리는 젊음이란 없다. 젊을 때 늙음을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내가 나의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모두를 해칠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미래를 암담하게 느끼는 것은 그들의 눈에 비치는 노인들의 삶이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고 살기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온 사람들을 정당하게 예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부질없는 욕심과 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생이라는 짤막한 수행을 하는 것일지 모른다. 때가 되면 태어나고 때가 되면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자연의 순리를 존중할 때, 찰나지만 아름다운 삶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주의 작은 일부인 우리가 커다란 우주적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를, 우리를 존재하게 해주는 뿌리를 존중하고 기억하기.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장치로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위대한 코리아’,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왔던 노인들이 흘려 온 땀의 대가는 더 공정하고 정당하게 지불되어야 한다. 딱딱한 벤치에서 어르신들이 시간을 죽이며 삶을 낭비하게 내버려두기 보다는, 그들의 지혜를 모아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때 우리 모두가 후회 없는 삶의 마지막을 위한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글=박한솔]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0.10 10:49 수정 2020.10.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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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