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평화를 위해 던지는 낯선 시선

말과 글 그리고 오래된 것들의 힘

박한솔


기술이 발전하고 세월이 빠르게 변해가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 가치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은 말과 글로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아로새겨져 전달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인류애를 잃지 않고 지구 공동체를 유지 발전 할 수 있게 하도록 하는 정신은 앞으로도 말과 글을 통해 전달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와 책까지 읽는 시대지만, 말과 글이 담는 고유한 본질 자체는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고 또 그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혜롭게 맞이한다는 것은 기계에 인간이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기계를 통해 인간 스스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과 글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고 지켜가는 것이기도 하다. 기계의 발전만 숭배하면 정작 그 기계가 인간에게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게 된다. 고민이 부재하면 결국 훌륭한 기계와 시스템도 빈껍데기일 뿐이다.


고민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수십 년 전 수백 년 전 인물들이 남긴 고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내려오는 글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날로 새로운 것을 강요하는 시대일수록 고전의 위대함이라는 그 단단한 알맹이도 날로 여물어가는 것이다.


특히, 우리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고전문학을 읽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새로움, 혁신만을 좇는 세상에서 옛 것을 돌아볼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고전 시 한 작품을 읽어보자.

 

강호 한 꿈을 꾼 지도 오래러니

입과 배가 누가 되어 어즈버 잊었도다

저 물을 바라보니 푸른 대도 하도 할샤

훌륭한 군자들아 낚대 하나 빌려스라

갈대꽃 깊은 곳에 명월청풍 벗이 되어

임자 없는 풍월 강산에 절로절로 늙으리라

무심한 백구(白鷗)야 오라 하며 말라 하랴

다툴 이 없을 건 다만 이건가 여기노라

이제는 소 빌 이 맹세코 다시 말자

무상한 이 몸에 무슨 지취(志趣) 있으련만

두세 이랑 밭 논을 다 묵혀 던져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 말겠노라

내 빈천 싫게 여겨 손을 저어 물러가며

남의 부귀 부럽게 여겨 손을 친다고 나아오랴

인간 어느 일이 명() 밖에 생겼으리

빈이무원(貧而無怨)을 어렵다 하건마는

내 생애 이러하되 설운 뜻은 없노매라

 

- 박인로, <누항사>

 

이 작품에서 박인로는 가난한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비애와 좌절감을 느끼지만, 빈이무원(가난을 원망하지 않음) 하며 유교적 이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자연에 머물면서도 가난한 현실을 외면하고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용하고 있다. 커다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확실하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이 대세인 요즘의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밖으로는 나라를 지키면서 어릴 때부터 시 쓰기를 놓지 않았던 박인로에게도 가난은 고통이었지만,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 됨에 따라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혜라는 것은 사실 없다. 하늘 아래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옛 것을 현실에 맞게 창조하는 것이다. 옛 것의 지혜를 외면하지 않고 능숙하게 기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옛 것을 현재에 맞게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옛 것을 통해 오늘날 필요한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도 있다. 전 지구적 갈등과 환경오염으로 혼란이 끊임없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어떤 정신을 개척해가야 하는가?


예컨대 바로 그럴 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볼 수 있다. 늙은 노모와 자식 걱정에 밤잠 설치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이순신은 평생을 일기로 기록하고 자아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말과 글의 힘을 통해 고민하는 인간으로 성장해갔던 것이다. 그 고통과 성장의 과정이 고스란히 남겨져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 바로, 이순신의 <난중일기>.


인간을,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지도자,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지도자, 바다를 가르는 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고심하는 지도자, 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 이순신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하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말처럼 우리는 대량의 데이터를 계산하는 데에는 취약하지만 추상적 사고와 창조성에서는 뛰어나다.” 기계는 효율에 꼭 필요하지만, 기계를 만드는 것도 인간, 기계를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옳게 쓸 지, 말지에 대한 과정도 우리 사람들이 선택할 영역이다. 같은 달 아래서도 각자의 달이 서로 다른 빛깔로 맘속에 떠오르는 "인간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것을 통해 그리고 인간이 그 다음의 인간에게 남기는 말과 글을 통해, 오늘의 교훈을 이끌어내는 말과 글의 힘, 언어의 힘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정신일 것이다.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10.14 11:14 수정 2020.10.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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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