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운동법칙 중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작용에 대하여 항상 방향이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지요. 모든 물체가 잡아당기는 작용을 가하면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생겨난다는 이론입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자연의 운동법칙일 뿐 아니라 정치나 일반사회에서도 적용이 되는 법칙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나도 그에게 차라도 대접 하고 싶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상대방을 똑같이 칭찬하게 되며 욕을 먹으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하게 됩니다. 결국 모순이 쌓이고 쌓이면 터지는 법입니다. 지금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일도 막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터지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국면을 맞을 뿐이지요.
성경 마태복음에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대접, 즉 작용이 있으면 그만한 대접, 그 반작용이 되돌아온다는 것이고 내가 남을 대우하는 만큼 남들도 나를 대우 한다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같은 논리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에게 해를 끼치려면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또 다시 입게 되고, 그럼으로 작용 .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여 원수는 원수로 갚게 되는 악순환을 일컫습니다.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수 때문에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합(合), 즉 사랑으로 갚으면 상대방도 감사함과 사랑으로 보답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악순환의 고리가 선순환으로 바뀌게 되며, 그래서 이를 정반합(正反合) 즉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상호간의 믿음조차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상대방도 믿고 내가 믿지 않으면 상대방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내가 의심하면 상대방도 의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의심 때문에 계약서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계약할 때는 유리한 계약을 맺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되고, 계약은 가진 자, 즉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갑과 을의 계약관계는 이래서 생겨난 것이지요. 이렇듯 세상의 복잡한 인간관계는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렇듯 자연의 운동은 똑 같은 질량의 운동량이 되돌아오지만 사회관계에선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의 갚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든 주어진 현안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가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사고가 필요한데.... 나날이 짜증이 더하는 우리 사회,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나라가 정반합의 방향으로 제대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교황 성하(聖下)께서 미국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성직자)는 씨앗을 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 노력의 결실은 하느님이 판단하시는 겁니다. 노력과 활동이 실패했거나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도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적으로만 보면 예수님의 삶도 실패로 끝난 겁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 때 뉴욕타임스(NYT)는 교황의 방미를 기념한 9월 23일자 기사에서 ‘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갈망이 교황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그의 강론은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물질적 안락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세상 사람들에게 겸허하게 살아갈 것(live humbly)을 주문한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예수님이 못 박혀 숨진) 십자가를 보면서 세속적 성공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기 성찰의 경고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교황께서는 성 패트릭 성당을 찾아가 400여 명의 노숙인들과 악수하며, 성당 관계자들에게 “지붕 없는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올 때 집 없는 노숙인 이었다.”며 이들 대한 각별한 배려를 당부했다고 합니다. 한 미국인 여성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이러한 교황의 태도는 바로 신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한 해가 벌써 반이 지나고 이제 곧 미국적 ‘쌩쓰기빙 데이’가 다가옵니다. 어느 명절인가를 막론하고, 또 인종과 종교를 떠나 모든 우리 국내외 모든 동포들은 꼭 이웃들을 향해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을 베풀기를 희망합니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교황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상대에 대한 베풀음과 격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부릅니다. 이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글=손석진]
전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