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임진왜란 전적지 답사

이순신이 지킨 바다를 가다

명량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싸웠던 조선수군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순신 장군이 내게 빙의라도 되었단 말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장군이 싸웠던 해전현장을 이토록 미친듯이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9년 부터 시작한 전적지 답사가 어언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이순신 장군이 다녔던 물길을 따라 안 가본 곳이 없다. 부산에서부터 목포를 거쳐 서해의 선유도까지 구석구석 다 뒤지고 다녔다. 비 오는 날도 있었고 눈 내리는 날도 있었다. 간혹 때풍에 갇혀 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기억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거금도 절이도해전지



여객선을 타고 섬마을 마다 누비다 잠잘 곳이 없으면 밤중에 외딴 암자의 산문을 두들겨 하루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절이도해전지인 거금도 송광암이나 생일도 학서암, 달마산 미황사가 그런 곳이다. 학서암 가는 길에 저무는 산길에서 멧돼지를 만나 혼비백산 하기도 했다. 푹푹 찌는 여름날 지도를 들고 해안포구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다가 마을 주민에게 간첩신고를 당한 적도 있다. 돈도 많이 들었고 육체적으로 피곤한 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오곡도 동백꽃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유채꽃이 바다를 건너 밀려올 때 쯤, 나는 사량도 진촌 마을에서 조선수군의 행적을 더듬었다. 2003년에 거대한 태풍 매미가 왔을 때는 통영 미륵도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해당화가 진홍빛 꽃을 피울 무렵엔 장군이 유랑했던 고군산 선유도에 있었다. 겨울이라고 꽃이 피지 않겠는가. 섬마을 처녀의 상사병처럼 순정한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날 나는 한산도 건너편 오곡도에 있었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그립고 조선수군의 노젓는 모습이 보고 싶으면 나는 자다가도 일어나 남해바다로 가는 남행 열차를 탔다. 지금도 내 머리맡에는 훌쩍 떠날 수 있게 꾸려놓은 걸망이 하나 있다. 역마살이 낀 것일까. 이런 나를 보고 돈 안되는 짓만 골라서 한다고 놀리는 친구도 있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친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으면 그것도 행복 아니겠는가. 

오곡도에서 바라본 비진도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 2000년에 통영 앞바다의 그림같은 섬 오곡도에 둥지를 틀었다.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 하나를 사서 수리를 했더니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원시의 섬 오곡도는 이순신 장군이 내게 준 선물이다. 자연이  숨쉬고 생태가 살아있는 섬에 순한 인심까지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제는 헤아릴 수도 없지만 이순신을 찾아 바다로 나섰던 날이 어림잡아 300번은 되는 것 같다. 처음 5년간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남해바다에 있었다. 그동안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섬에서 태어나 섬으로 시집 와서 늙은 섬이 되어버린 할머니를 만났고 인심 좋은 어촌계장님과는 술친구가 되었다. 


견내량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해주거나 갯마을의 옛 지명을 알려 주는 사람이 많았다.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의 양상조 님은 임진장초에 나오는 고리량이 어딘지 알려주신 어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주도리에서 만난 할아버지 한 분은 시구질포가 어딘지 단서가 될 이야기를 해주셨다.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의 이형규 님은 칠천량해전 당시 원균 장군이 전사한 춘원포 돌감나무골을 알려주셨다. 경남 통영시 용남면 견유리 견내량에서 바지락을 캐던 할머니 한 분은 견내량의 어원이 '갯내'라고 가르쳐 주셨다.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 사는 할머니는 고둔포가 풍화리 산 너머에 있는 '고둔개'라고 알려주셨다. 통영시 사량도 옥련암 주지 월정 스님은 옥녀봉의 전설과 사량진 이야기를 해주셨다.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오곡도의 유복관 님은 한산도 문어포의 전설을 말해 주셨다. 그분은 문어포를 물어포라고 했다.  한산도 문어포는 맑은날 오곡도에서 빤히 보인다. 


돛단여



통영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유이진 님은, 걸망포가 걸망개이며 현재 지명으로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신봉마을임을 알려주었다.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은 한산대첩 당시 지방의 의병장이었던 탁연 장군이 올라가서 큰 돛을 달고 기만전술을 펼치면서 후방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왔던  돛단여 괘범도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히 가리켜주셨다. 경남 사천에 사는 조영규 님은 사천해전 당시 사천선창의 굴강터를 알려주셨다.


백서량


여수에 사는 박종길 님은 이목구미,  백야곶과 백서량이 어딘지 상세히 알려 주셨다. 이순신 장군이 성곽보수와 해저 철쇄 설치를 위하여 돌을 채취한 선생원의 위치도 알려 주었고 광양만에 있는 섬 유도와 묘도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해소시켜 주었다.

어란포해전지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사는 박흥남 님은 어란포해전 당시 조선수군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은 어불도 뒷쪽 누엣머리라며 '어란 여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순신 장군이 이진에서 어란으로 옮길 때 거쳐온 도괘가 어딘지도 정확히 알려 주셨다.


정유재란 순절묘역



고금도 충무사에서 만난 정충갑 님은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 진영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시면서 관왕묘와 옥천사에 얽힌 이야기도 해주셨다. 진도에 사는 허상무 님은 정유재란 순절묘역과 혈도,  감보도를 확인시켜 주셨다. 


이런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동안 일반이 몰랐던 이순신 전적지가 하나 둘 밝혀질 수 있었다. 문헌연구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현장에 가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20년 세월 동안 이순신 전적지를 찾아 다니면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순신전략연구소장
이봉수

이봉수 기자
작성 2020.11.05 18:22 수정 2020.11.0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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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