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최규성 작가, "일본 큐슈는 신라 땅이었다."

화랑 사다함이 공략한 전단문(栴檀門)은 큐슈의 센단마치((栴檀町)

임나(任那)는 현재 큐슈의 마츠라(松浦)

일본의 큐슈가 신라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결론이 그렇다. 제도권 역사학자들이 주목해야 할 획기적인 사실을 재야의 작가가 밝혀냈다. 고대의 국명과 지명을 연구하다가 예상치 못한 대어를 낚은 것이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것을 '차자표기(借字表記)‘라 한다. 소리를 빌려오는 것은 음차이고 뜻을 빌려오는 것은 훈차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대표적인 것이 신라시대의 이두다. 후대의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에서 이두식 표기를 자주 사용했다. 예를 들면 여수에 있는 '곰내'를 고음천(古音川)이라고 표기한 것은 고음()이라는 소리를 빌린 음차와 내 천자의 뜻을 빌린 훈차의 합성어다. '갯내'는 바다에서 냇물처첨 조류가 흐르는 거제대교 아래의 좁은 해협을 말하는데, 한자로 견내량(見乃梁)이라고 표기했다. 갯내를 견내(見乃)라고 한 것은 한자의 음만 빌려온 음차다.

 

최규성 작가는 임나(任那)의 국명과 지명들을 연구하다가 머리 끝이 쭈뼛 서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화랑 사다함이 공격하여 평정한 곳이 가야의 전단문(栴檀門)이라 기록되어 있다. 전단(栴檀)은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글자다. 지명으로 쓰이는 일은 더욱 희귀하다. 그런데 그 지명이 현재 센단마치(栴檀町)라는 이름으로 일본 큐슈에 그대로 남아 있다.


큐슈에 있는 센단마치 위치도


 

"임나(任那)[맡라, 마트라]라는 우리말을 '맡을 임()'자의 뜻과 나()자의 소리를 빌려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말로국(末盧國)'과 동일한 국명으로 한반도 남부가 아닌 큐슈 지역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마츠라(松浦)'가 바로 그 국명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지명이죠.

 

그리고, 일본서기의 기록에 나오는 임나 관련 지명들이 모두 큐슈지역에 있습니다. 임나4, 임나10, 임나4촌 등이 모두 그러하며 화랑 사다함이 출전하여 돌파한 전단문(栴檀門)이 큐슈지역에 센단마치(栴檀町)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요.

 

저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오로지 차자표기(借字表記)와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국명과 지명을 풀이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유사역사학이라며 외면만 하지 말고, 역사학자들이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에 나서 유물유적의 발견을 통해 검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최규성 작가는 말한다.

 

이런 지명이 한두 개라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큐슈에는 우리나라 기록인 삼국사기와 일본 기록인 일본서기의 내용을 비교해 보아도 정확히 일치하는 지명이 아주 많다. 529년에 신라의 이질부례(이사부)가 공략했다는 4촌과 562년에 신라가 쳐서 멸망시킨 임나관가 10국이 모두 큐슈에 있다. 물론 음차와 훈차에 대한 언어학적 식견이 있어야 그 내막을 풀 수 있는 지명들이다.


임나10국 지도


 

최근에 가야사 연구 붐이 일고 있지만, 풍악만 요란할 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최규성 작가는 혹평한다. 과거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 그 임나일본부설을 논파하겠다는 의욕만 앞세운 채 무작정 연구에 임할 게 아니라 임나가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나의 위치에 대하여 일본서기는 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이라 기록해 놓았는데, 이 문장은 임나는 나라(奈良)에서 축자국을 향해 2천여 리 가면 있으며, 북쪽은 바다로 막혔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라고 해석해야 올바르다고 한다. 그에 해당하는 곳은 바로 큐슈의 북단 마츠라(松浦)”라는 것이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나갈질지의 오호가라(意富加羅)’가 바로 대가야(大加耶)’라 착각해 경북 고령에 비정했지만, 최규성 작가는 잘못된 비정이라고 한다. 큐슈 북부 쿠루메(久留米)의 고명이 오국(吳國)”이며, 오국이 바로 오호가라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임나가 일본열도에 있었을 거라는 주장이 있기는 하였다. 북한의 김석형이 그러했고, 임나신론을 쓴 저자 김문배 형제가 그러했다. 하지만 임나(任那)라는 국명을 이처럼 정확히 분석하거나 그 위치를 명확히 짚어내지는 못했고, 그래서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최규성 작가의 연구는 차자표기 중심으로 한 것인데, 음차와 훈차 외에도 사음훈차(似音訓借)’라는 특이한 용어를 쓰고 있다. 양주동의 향가 연구 이래 차자표기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어 왔지만, ‘고유명사표기에 대해서는 연구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편이다. 최규성 작가는 사음훈차를 바탕으로 하여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있는 그 고유명사표기 연구에 과감하게 도전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 사음훈차 개념을 바탕으로 분석하면 임나(任那)라는 국명은 말로(末盧), 말라(末羅), 매두라(梅豆羅), 응유(鷹遊), 응준(鷹準), 전라(前羅)’ 등으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다. 이들이 모두 동일한 국명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여기가 임나다라는 책을 썼고, 이어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국명과 지명들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로지 국명과 지명 뿐. 그런데 열심히 풀이하다 보니 임나도 큐슈에 있었고, 이사부가 초략한 성들도 큐슈에 있었다. 그리고 화랑 사다함이 돌파한 전단성(栴檀城)도 큐슈에 있었다. 큐슈의 야츠시로시(八代市). 그 자신도 이게 진짜 맞는가 하고 어리둥절했을 정도로.


이사부의 초략4촌 지도


 

그가 파악해 낸 대로라면 신라의 강역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신라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가야와 임나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언어적인 연구를 참고로 하여 본격적이고 종합적인 검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진정한 가야사의 복원은 바로 이러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18.10.05 22:46 수정 2018.10.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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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