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32화 백정

[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32화 백정

 

닭의 목을 비틀어 보셨습니까? 돼지나 소를 잡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심약한 사람들은 무섭고 떨리는 일이지요. 예부터 이러한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백정(白丁)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에는 맨 꼭대기에 임금이 있고 그다음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차례로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천민 직업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백정이었습니다. 이들이 천시받았던 것은 끔찍하게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일과 함께 다른 나라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구한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눈동자가 까맣고 머리털이 까만 다수의 사람 속에 머리털이 붉거나 눈동자가 회색, 파란색까지 있는 특이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보고 기록에 남깁니다. 선교사들이 기록한 이상한 사람들은 백정이거나 사냥꾼이었습니다. 토종이 아닌 이들이 우리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려 때부터라고 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짐승을 잡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통일 신라 시대 이후 고려 때까지 불교가 국교였기에 도살이 매우 서툴렀습니다. 그래서 원이 고려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원나라로 사람을 보내 도살하는 방법을 배워 왔다고 합니다.

백정들은 포로로 잡히거나 귀화한 유목민의 후손이었기에 정착하는 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고리를 만드는 버드나무나 갈대가 자라는 곳으로 계속 이동했고 도살업과 사냥을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태종 때부터 백정을 기존 공동체에 편입시키기 위해 정해진 장소 이외의 이동을 금지해 정착시키고 했고 백정끼리의 혼인을 금하고 평민과의 혼인을 장려했습니다. 하지만 농업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조정의 정책과 달리 계속 떠돌아다니며 소, 돼지를 잡고 사냥을 하고 소가죽으로 신발을 만들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려갔습니다.

백정은 고려 때에는 일반 백성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쪽에서 온 이방인들을 조선에서 받아들여 세종 때에는 신 백정이라고 부르자 일반 백성은 백정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도살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백정이라 부르며 자신들과 차별했습니다. 백정은 노를 젓는 조군, 봉홧불 올리는 봉군 등 조선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천한 직업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편견과 차별을 받으며 평민조차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기와집에서 살 수 없었고 명주옷을 입거나 망건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갓 대신 패랭이를 쓰게 하고 말할 때는 뜰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평민의 어린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게 할 정도로 박해가 심했습니다. 강포한 양반들이 제사나 생일에 쓸 고기를 강탈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이런 울분을 참고 살아야 했습니다. 도살이 아니면 사냥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궁지에 몰리면 도둑이 되었으니 조선 중기에 임꺽정의 난이 대표적입니다. 사회적 차별에 저항해서 바닷가를 침범한 왜구의 길 안내를 하거나 왜구로 가장해서 도둑질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항적인 행태를 보인 백정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점차 정착해서 생업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혼인 잔치 같은 경사가 있어 소를 잡으려면 반드시 백정에게 의뢰해야 했습니다. 소를 잡으면 사례비와 별도로 내장과 가죽을 가졌는데 내장은 팔고 가죽은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양반이 하인을 시켜 몰래 소를 잡은 것이 백정에게 알려지면 떼로 몰려와서 양반에게 ‘형님! 언제부터 양반이 백정이 되었소?’하며 삿대질을 하고 심할 경우 주인을 번쩍 들어 동네를 맴돈 다음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팽개치기도 했습니다.

단결력이 강한 이들은 경제력으로 백정촌에 서당을 열어 훈장을 초빙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을묘왜변 때 임꺽정이 징발되어 왜구들과 싸웠듯이 외적의 침공이 있으면 소 잡던 백정은 칼 대신 활을 잡고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럼에도 차별은 계속되어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은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형평사를 조직해 백정도 같은 조선의 백성임을 알리는 평등선언을 했습니다.


이시우 기자
작성 2018.10.10 16:00 수정 2019.12.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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