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몸과 머리

영원한 인간 수수께끼

토마스 만

제2장

 


, 그런데 때는 이제 한창 봄이라 새벽부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잠을 깨워주니 난다와 슈리다만도 늦잠을 못자고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길을 떠났다. 제 각기 볼 일이 있어 이들은 하루 하고 반나절을 걸었다. 마을과 산골 숲과 황무지 벌판을 거쳐 둘 다 무거운 짐 보따리 하나씩 메고 걸었다. 난다의 짐 속에는 빈랑나무의 열매, 자패紫貝 조가비, 그리고 발뒤꿈치를 붉게 물들이는 데 쓰는 참피나무의 인피섬유 등이 있었다. 이런 물품을 주고 그가 필요로 하는 철광석을 구해오기 위해서다.

 

슈리다만의 짐은 암사슴가죽에 바느질한 각양각색의 옷감이었다. 제 짐만도 무거운데 난다는 틈틈이 몸이 약한 슈리다만의 짐까지 져주었다. 이제 막 이들이 다다른 곳은 여신 칼리에게 참배키 위해 멱감 는 장소였다. 힌두교 3대신의 하나인 비쉬누가 꿈에 취해 현신불現身 佛로 나타나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여신에게 말이다. 깊은 산속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한갓진 곳에 있는 이 개울물은 갠지스 강으로 이어지고 여러 개의 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든다.

 

이러한 물줄기 강어귀 곳곳에 예부터 멱감는 데가 있어 사람들이 몸을 씻고 정화하는 재계齋戒의식을 갖는다. 그런데 이 두 친구가 접근하게 된 곳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많이 찾아오는 그런 널리 알려진 장소가 아니고 아주 조용하고 외딴 구석이었다. 냇가 언덕위에는 목조로 된 아주 작은 사원이 있었다. 다름 아닌 모든 인간의 욕망과 희열의 여왕을 기리는 집으로 지하의 광인 움 위로 구근球根 구경球莖 형상의 탑이 우뚝 솟아있고 샘터로 내려가는 나무층계까지 있었다.

 

뜻밖에 이런 곳을 발견하게 된 두 젊은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벌써 한낮이어서 몹시 더웠다. 철 이르게 갑자기 여름이 성큼 다가서기라도 하듯이 집 옆으로는 망고과수, 티크나무, 카담바나무, 목련, 위성류渭城柳와 종료나무가 있어 쉬어가기에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휴식처였다.

 

이들은 제일 먼저 종교적인 의례를 치르기 위해 물가에 놓여있는 그릇으로 물을 떠서 주문을 외고는 냇물로 들어가 물도 마시고 몸을 씻었다. 그런 다음 물 밖으로 나와 나무그늘에 앉아 먹을 것을 나누었다. 난다는 그의 보리떡을 슈리다만은 그의 과일을 내놓았다. 이렇게 떡과 과일로 요기를 하고 나서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처럼 좋은 곳에서 쉬어갈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러워하며……. 과 대나무의 쭉쭉 뻗은 가지에 달린 잎들과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그 사이로 물가로 내려가는 층계가 보였다.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로는 여러 가지 수초가 매달려 그 꽃들이 일종의 화환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나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수풀 속의 벌레소리와 어울려 훌륭한 화음이 되고 이 모든 초목의 싱그러운 향훈이 공중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재스민의 향기며 백단향에 난다가 목욕하고 나서 몸에 바른 겨자기름냄새까지 가미되었다. 이와 같이 감미로운 분위기에서 둘은 얘기를 나눈다. 슈리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이곳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마치 목마르고 굶주리며 늙고 죽는 삶의 순환 고리 밖으로 벗어나 있기라도 하듯 한없이 평화스럽게 태평하지 않은가. 잠시도 쉬지 않고 회전하는 삶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아무 움직임 없는 그 한가운데서 크게 숨을 쉬고 마음을 놓은 상태 아닌가. 이 얼마나 기분 좋게 조용한가. 조용하다는 말은 우리가 뭣을 듣고자 할 때 쓰고, 듣는다는 것은 침묵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며, 침묵은 따라서 모든 것을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해주지 않던가. 그래서 모든 것이 정지되어 고요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이 말을 받아 난다가 대답한다.

 

형 말이 맞아. 시장터의 시끄러운 가운데서는 들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열반의 경지란 것 아닐까?”

 

아니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슈리다만이 말했다.

 

지금껏 아무도 생각조차 해본 사람이 없었을 거야. 너는 말 안 되는 것 같으면서 말이 되는 소리를 잘 해. 내 횡격막을 수축시켜 웃다 못해 울도록 만들어. 그러고 보면 웃는다는 것과 운다는 것이 같다는 것. 그래서 쾌락과 고통을 구별하고 어떤 것을 좋다 마다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게 해준단 말이야. 그러니 난 너를 보노라면 이것저것 둘이면 둘 다 좋다고 할 수 있고 둘 다 나쁘다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들이 많지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는 일이지. 너의 엉뚱한 소리가 날 가슴 아프게 한다니까.”

 

아니 내가 네 가슴 아프게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난다가 반문한다. 이 말에 슈리다만이 대답한다.

 

너는 말하자면 물위로 솟아올라 하늘 보며 비로소 꽃잎을 여는 연꽃처럼 웃고 우는 인생고해를 초탈하고 달관할 필요를 느끼는 부류에 속하지 않고 삶 그 자체에 행복하게 열중하여 너 있는 그대로 더할 수 없이 유복하고 잘 사는 사람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런 네가 갑자기 생뚱맞게도 열반이 어떻다고 말을 하니 날 웃기는 동시에 울리니까 하는 말이야.”

 

이봐, 슈리다만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난 형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형은 내가 삶에 열중한다고 연꽃 같지 못하다고, 또 내가 열반에 대해 관심을 좀 가져보려 한다고 안쓰러워하면서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형이 내게는 좀 안 돼 보여. 내가 보기엔 형이 쓸데없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뭐라고 너 보기에 내가 안 됐다고?”

 

좀 놀란 듯이 슈리다만이 되묻는다.

 

슈리다만, 형이 베다성전을 읽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형은 더 모를 수가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에선 세상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바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우리가 인생 고해밖에 있다느니 고요한 정적이니 라고 형이 생각하지만 이 침묵 속에서도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야. 사랑하느라고 새들은 꾸르륵하는 것일 테고, 벌과 벌레들이 날고뛰고 기어 다니는 것은 제각기 저마다 먹이를 찾아다니느라고, 그리고 비록 우리 귀에는 안 들리지만 풀숲은 그 속에서 죽기냐 살기냐의 생존경쟁 소리로 가득 차 있겠지. 나무를 끌어안는 덩굴 풀은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이런 것이 삶의 참된 모습 아닐까?”

 

난다의 이 말에 슈리다만이 대꾸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삶이란 현실에 나도 눈을 감진 않아. 현실에 나타나는 진실을 찾아보라고 언어에 시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라.”

 

그러자 난다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는다.

 

, 그렇구나. 그렇다면 똑똑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이 시라는 얘기 같은데 형처럼 똑똑한 사람들은 나 같은 바보를 골탕 먹인단 말이야. 바보는 똑똑해지고 싶은데 똑똑해지기 전에 먼저 바보스러워지라니 무슨 소리인지 난 못 알아듣겠어.”

 

난다, 내 말은 사람이 똑똑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야. , 우리 여기 풀밭에 누워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보자고. 누워있는 자세로 우리 눈이 이미 하늘을 향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하늘을 쳐다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 지구 땅덩어리가 하늘을 바라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면 돼.”

 

시야, 그렇군!

고대, 중세 인도 북중부의 방언 프라크리트어로 난다가 서툴게 문자를 쓰자

 

시야트!”

라고 슈리다만이 난다의 틀린 발음을 고쳐준다. 이에 난다가 투덜댄다.

 

시야트, 시야트, 그래 시야트야, 까다롭기는. 그냥 좀 놔두지 않고서. 모처럼 유식하게 말 한 마디 해보려다가 무안만 당했지 않아. 마치 콧구멍에 밧줄 낀 송아지 콧소리 같다니, 나 원 참!”

 

이 말에 슈리다만도 따라 웃는다. 둘은 풀밭에 나란히 누운 채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꺾은 나뭇가지로 몸에 달라붙는 붉고 흰 빛을 한 파리들을 쫓으면서. 슈리다만의 말대로 대지가 창공을 바라보듯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단순히 그가 타고난 좋은 성품에서 난다는 친구가 하자는 방식으로 따라해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누워있던 난다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말한다.

 

인타라因陀羅 새끼는 정말 몹시 성가신 존재야.”

 

인도 신화에서 천둥과 비를 관장하는 베다교의 으뜸 신인타라의 새끼라고 불리는 파리를 가리켜 난다가 하는 말이다.

 

아마 내 몸에 바른 겨자기름 냄새 맡고 덤벼드나봐. 아니면 그들을 보호해주는 천둥번개의 신으로부터 우릴 괴롭히라는 지시라도 받아서인지.”

 

또 터무니없는 소리 좀 그만해.”

 

슈리단이 말하자

 

그럼 그러지 뭐.”

 

난다가 답한다.

 

 


서문강 기자
작성 2018.10.11 11:01 수정 2018.10.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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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