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재동 35번지, 헌법재판소 뒷뜰에는 나이가 약 600년 정도 된 백송이 한 그루 있다. 천연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재동 백송’으로 불린다. 이 소나무는 높이 17m, 밑동 둘레 4.25m로 다른 백송보다 큰 편이다. 밑부분 약 75㎝ 지점부터 나무줄기가 2개로 갈라져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중국의 북경 부근이 원산지로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묘목을 갖다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눈에 봐도 나무 줄기의 흰색이 뚜렷하다. 백송나무는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오래 되었으나 번식력이 매우 약해서 그 수가 적다. 원산지인 북경에서는 아름드리 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백송나무는 늘푸른 큰키나무로 잎이 세개씩 뭉쳐서 나는 삼엽송이다. 나무의 색깔은 어릴 때에는 회청색이다. 자라면서 나무껍질이 벗겨져 점점 회백색으로 변해 백송,백골송 또는 백피송이라 불린다.
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5그루가 있다. 재동 백송을 포함해 조계사 백송, 고양 송포 백송, 예산 용궁리 백송, 이천 신대리 백송 등이다. 이 중에서 재동 백송이 가장 오래되었다. 백송은 사철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순수성을 더해 선비의 높은 절개에 비유되는데 헌법재판소 뒤뜰에 자라고 있는 것이 그냥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1989년 이곳 종로구 재동에 세워진 헌법재판소는 이전에는 창덕여고와 경기여고 터였다. 그보다 앞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재동백송은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나무의 나이테 속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경술국치, 민족해방, 한국전쟁 등 영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이 나무보다 오래 산 사람은 유사이래 단 한 명도 없다.
이해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