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올린 글 하나가 문제가 되어 가깝게 지내던 사람과 멀어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것이 내 문제가 될 줄 몰랐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서로 ‘형님동생’ 하며 지내던 사이였는데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쓴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그로 인해 그 좋던 사이가 깨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에게서,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고, 뜻하지 않은 일을 겪으며 마치 불에 덴 듯 생각이 확 달라져 버렸다. 그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가두고 있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했다. 내가 또 다른 세상을 설계하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했다. 지금 가는 길이 평범한 길이 아니라 진창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가다가 낭떠러지를 만나거나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막다른 길은 없을 거라는 믿음은 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글 쓰고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내 말을 하려고 한다. 지금 하는 공부도 결국 내 말 하려는 것 아닌가.
내게서 글 쓰는 일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어떤 것보다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머릿속에 우주를 넣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은 우주보다 더 크다.”라는 파스칼의 말처럼 내가 어떤 삶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크기가 달라진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가야 할 길이 있다. 주어진 그 길을 걸으며 끊임없는 가치판단의 축적이 우리 인생을 만들어간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그림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문학 공부를 하며 글 쓰는 일이다. 그렇게 가는 길에는 다른 사람의 어떤 자유나 행복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만나는 일도 그중 하나다. 괜찮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 감동으로 읽힐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뭐랄까, 그럴 때는 내가 살아있어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은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는 일이 잦아지고 신문에 칼럼도 쓴다. 글을 써서 올리고부터는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많아졌는데 그들의 격려와 충고가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좋은 글을 쓰면 여러 가지 일들이 가능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별 볼 일 없으면 이 같은 일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내가 쓴 것 중에 어떤 글은 누군가의 일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쓴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를 빗대어 한 말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봐도 쓴 글마다 보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두고 하는 말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글이란 읽는 사람 생각에 따라 저마다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오해 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나는 여러 번 날았고 날 때마다 배가 떨어졌다.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우연이라 말하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짐을 나는 안다. 어느 쪽 생각이 옳고 그르냐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느 쪽 입장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몇 편의 글은 누군가의(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 모습 가운데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은 대부분 원초적인 인간의 속성을 두고 내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한 것뿐이다.
세상일에는 아무리 해명하려 해도 그럴수록 오해만 더 깊어질 뿐 설명이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나는 그런 턱도 없는 일로 상대와 논쟁에 휘말리는 것이 싫다. 이런저런 말 하고 싶지도 않고 그 순간에는 그냥 없는 듯 무시해버리는 게 언제나 현명할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자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남이 가진 것을 비웃을 수도 없다. 내가 쓴 몇 편의 글이 누구를 향해 날아갔는지 아니면 그 누군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는지 그것은 서로가 모를 일이지만 따지고 싶지 않다. 그로 인해 누군가와 나 사이가 도저히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철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가 그렇다 해도 떨어지지 않고, 엇갈려 달리지도 않는다. 서로 마주 보며 끝까지 가는 것이니 어쩌면 자신만의 길을 가며 수행하는 수행승의 모습과도 같다.
수레의 양쪽 바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지만, 왼쪽 바퀴가 오른쪽 바퀴를 의식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경쟁할 것도 없고 제 갈 길을 가기에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오히려 합쳐지려 할 때 제 모습을 잃을 수도 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것이 제 길을 가게 그냥 내 버려두는 것도 사랑의 방법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 세상을 향한 나 자신과 싸움은 끝나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글=이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