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본 근현대사] 난중일기

떨어지는 눈물 모아 피로 적은 난중일기

이인선·배상태·배호

 

2021년 새 아침은 밝아왔지만 삶의 환경은 어두침침하다. 인류를 기습 공격한 역병의 회오리에 지구촌이 간들거린다. 중세 유럽을 휩쓸고 간 흑사병이 그러했고, 우리나라(조선)의 명운을 걸어야 했던 임진왜란(1592~1598) 중의 전염병이 그러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참혹한 상황들을 난중일기에 사필서술(史筆敍述)하여 430여년 후세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 2021년 대한민국의 학자·장수·관료들 중에 국가나 공공기관의 직무 외에 개인적인 일기로 코로나-19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이가 있을까. 하여, 이런 생각 끝에 매달린 이순신 장군의 삶을 얽은 임진왜란 전쟁 대중가요 <난중일기>를 필설 한다. 1968년 가요황제 배호가 부른 노래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기러기 울고 울 때/ 떨어지는 눈물모아 피로 적은 난중일기/ 이 나라 이 겨레를 잠시라도 잊은 적이 있었던가/ 한 맺힌 글자마다 삼천리를 울렸노라.(가사 1)

 

중간대사,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시가를 읊조리는 화자의 비장함에 몰입해보자. 그 순간 장군의 영령이 환영으로 보일테다. 이때 가수 배호는 신장병이 깊은 환자였다. 하지만 그의 대사 목소리와 노래 곡성에는 결연함이 넘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통제사장 군 섬 끼고 철갑선 몰고 갈 때/ 찢어지는 가슴 치며 피로 적은 난중일기/ 내 조국 한 발자국 누구에게 빼앗길 수 있을 소냐/ 가시며 남긴 말씀 나는 죽지 않았노라.(가사 2)

 

난중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전염병은 1592~1594년을 관통한 듯하다. 장군의 난중일기 몇 날의 기록을 보자. ‘몸이 몹시 괴로워서 않고 눕기조차 불편했다’(159436). ‘병세는 별로 차도가 없다. 기운이 더욱 축이 나서 종일 앓았다’(38). ‘기운이 좀 나는 듯 해 따뜻한 방으로 옮겨 누웠다. 열기는 차올라 그저 찬 것만 마시고 싶은 생각뿐이다’(310). ‘소비포권관 이영남에게서 영남의 여러 배의 사부(배에서 화살을 쏘는 병사) 및 격군(노 젖는 병사)이 거의 다 굶어 죽겠다는 말을 들으니 참혹해 차마 들을 수가 없다’(1594119). ‘녹도만호(송여종)가 와서 보고하는데, 병들어 죽은 시체 이백열네 명을 거두어서 묻었다’(121).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어찌 말하랴’(15944월 초9). 159449, ‘어영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프고 탄식이 나오는 마음을 어찌 다 말하랴.’전쟁사령관의 이 비감을 어찌 다 살피랴.

 

<난중일기> 노래는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전쟁 중 삼도수군통제사와 백의종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써 왜적과의 해상전투를 23전승으로 지휘한 이순신 장군을 기린 대중가요다. 노래 발표년도를 기준으로 380여 년 전의 전투사령관 장군을 반추하는 유행가. 그는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써의 고뇌와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걱정하는 자연인으로써의 서사를 일기로 남겼다. 일기 7(임진·계사·갑오·병신·정유·속정유·무술)과 서간첩, 임진장초가 그 원본이다. 이 전장일기를 함의한 노래가 바로 <난중일기>.

 

장군은 왜구의 침략을 예견했으리라. 그래서 전라좌수사로 재직 중이던 159211일부터의 초서일기를 적는다. 그해 413일 왜구는 조선을 침략해온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1593418일부터 명나라와 왜가 4년여 간 강화협상을 한다. 이 기간에도 남해안의 해상근접전투는 국지적으로 지속된다. 이때 싸운 해상전투 23전승, 장군이 조선을 지켜낸 피눈물 나는 전공(戰功)의 빛이다. 이순신의 정신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력(전투력건설 및 전투장비 제작·보급조달), 정성(솔선수범과 솔선동행의 전장리더십), 정의(조국국토 수호를 위한 목숨을 건 장수의 결연한 철학), 사랑(부하와 백성들에 대한 애정)이다.

 

1597년 이른 봄(1~3), 왜구는 명나라와의 강화협상 결렬을 빌미로 조선 하4(경기·충청·경상·전라) 할양을 요구하며 다시 침략해 온다. 정유재란이다. 이순신은 그해 225일 이중간첩계(요시라 간계)에 의해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약포 정탁의 모가지를 내 건 신구차상소로 41일 자로 목숨을 부지하고 백의종군한다. 신구차(伸救箚)1298글자의 상소문. 정탁(1526~1605)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정, 호는 약포·백곡, 이조판서·예조판서·병조판서·우의정·좌의정·중추부판사·호종공신을 지냈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곽재우·김덕령 등 명장을 발탁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압송된 후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1540~1597), 그는 715~17일 칠천량에서 왜군을 맞아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주하다가 칠천도 기슭 소나무 아래서 왜구의 칼날에 사살된다. 이에 선조 임금은 이순신 장군에 사과의 교서(상하언재, 尙何言哉. 무슨 말을 하리오)를 내려, 다시 8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진주 수곡면 손경례 집에서 교지수령)을 한다. 이후 40여일 만에 조선 수군을 재건하여 916, 13133의 대승리 명량대첩을 이룬다. 이런 전쟁 중에 이듬해 1598818일 왜구의 괴수 풍신수길(1537~1598)이 사망한다. 이에 왜구는 패망 도주를 꽤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한 놈도 일본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결기로 바닷길을 막지만, 1119일 노량해전 적진포에서 54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이 전쟁 중에 남긴 72책을 장군께서 순국한 지 197년이 지난 뒤 조선 22대 정조 임금이 난중일기로 엮었다. 충무공전서 저술 책임을 부여 받은 유득공(1748~1807)이 붙인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이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일기를 1968년 이인선이 노랫말로 엮고, 배호의 9촌 아저씨뻘인 배상태가 멜로디를 얽어서 한도가 부른 곡이 유행가 <난중일기>.

 

노랫말 속의 한산섬은 통영과 거제를 사이로 한 견내랑 밖 통영 앞바다 섬이다. 통영은 1593년 삼도수군통제영(1593~1895)이 설치된 이래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 때 충무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1419년 세종대왕이 이종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대마도 정벌에 나설 당시, 병선 227척과 군사 17천으로 발진한 출항지가 바로 한산도 주원방포(추진포). 또한 통영 원문고개는 6.26전쟁 당시 해병대 1개 중대(중대장, 김성은. 대한민국 제4대 국방부장관역임)로 북한군 2개 대대를 섬멸시킨 귀신 잡는 해병대신화를 창조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한산도대첩 본거지다. 이때 이순신 장군의 해상전투 연전연승에 분개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용인지역 전투에서 조선군 의병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육군 장군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견내랑으로 전환 배치했다. 이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의 제물이 되었던 전투가 한산도대첩이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왜적들은 조선침략에 대한 수륙병진전략을 육군중심으로 수정하게 된다. 일본 수군이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당할 수 없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새벽닭이 울 때까지 고뇌하면서 적은 난중일기의 기록장소가 바로 한산섬 운주당(運籌堂)이다. 운주당이란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면서 전략을 셈한다는 뜻인데, 후에 제승당(制勝堂)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승당은 승리를 마름질한다는 의미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에 1316일 간(1593.7.15~1597.2.25.) 주둔하면서, 전장 서사를 기록했다. 난중일기는 159211일부터 15981117일 까지, 2539일 중 1596일의 기록이다. 전투함 선상에서 왜적의 흉탄에 좌측가슴을 피격 받아 순국하시기 이틀 전까지의 유필(遺筆)이다.

 

코로나-19라는 역병, 방역·진단·치료·백신 연구개발 및 획득과 접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재앙과의 전쟁이다. 물리적인 군사력과 안보력의 총력전인 전쟁 지휘에도, 보건환경적인 의료 전쟁에도 나라 공복(公僕)들의 희생·헌신·지혜·지략이 총동원 결집된 역량이 절실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카테고리의 총체적인 힘이다. 423년 전에 전설이 된 이순신이 그립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트로트스토리연구원장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1.08 10:54 수정 2021.01.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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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