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러젝트] 거기에 대체 뭐가 있는데

정윤하

사진=코스미안뉴스 자료사진 / 마라도


거기에 대체 뭐가 있는데

 

 

일본 유명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라오스에 가기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1박을 하려다가 만난 베트남 사람이 왜 하필 라오스 같은 곳에 가시죠?”라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질문했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아직 대답할 내용이 없다면서 그 것이 바로 라오스에 가는 이유라고 멋지게 표현한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갑자기 몇 년 전 나의 여행 때 들었던 말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년 전 열심히 공부를 해도 취업이 도저히 되지 않던 나는 홀연히 제주도를 가겠다고 짐을 쌌다. 혼자 한 열흘 정도 마음을 정리하면 다시 공부를 할 힘도, 무언가 해볼 용기도 생길 것 같아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떠났다. 심지어 공부한다고 매번 운전면허 따기를 미뤄둬서 정말 뚜벅이 여행으로 열흘을 꽉 채워 담아야 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났다.


가기 전까지는 제주도를 가리라!”라는 거창한 목적만 있었지, 매일매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세세한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않은 채였다. 심지어 그 때는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 방문했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흉흉한 뉴스까지 있어서 주변사람들의 만류도 거셌다. 하지만 제주도에 딱! 내려서 혼자 숙소를 가면서 두려움보다는 여행의 설렘이 가득 채웠다. 비록 무서워서 게스트하우스도 못가고 혼자 숙소에서 열흘을 묵언수행 하듯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일상을 벗어난 것 자체로 마음이 놓였다.

어디를 갈까?’라는 생각으로 검색창에 제주도 갈만한 곳, 제주도 여행지 등 다양한 관련검색어를 검색하였다. 당시 숙소가 제주도 시내 쪽이어서 먼저 다음날 갈 곳, 먹을 것만 간단하게 정해서 하루 구경 갔다가 돌아와서 쉬고, 하루 먹고 쉬고를 반복했다.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제주도에 있을 예정이니, 급할 것이 없었다. 하루 종일 바다 앞 커피숍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바다를 바라봐도 뭐라고 말할 여행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여행의 중반쯤 되었을 때였다. 협재 해수욕장, 함덕 해수욕장, 곽지 해수욕장 등 바다를 실컷 보고, 가고 싶었던 관광지도 제법 다 가본 후라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했다. 다시 검색창을 뒤적뒤적 하다가 마라도를 보게 되었다. 마라도. 그래 마라도를 가보자.


갑자기 결정이 된 것치고는 빠르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확인하고, 뭘 먹을지도 찾아봤다. 예전에 예능에서 마라도 자장면 먹던 것이 너무 맛있어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마라도 가서 자장면 먹어야지.’ 라고 다짐하고 다음날을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마라도까지 배를 탈 수 있는 모슬포항까지 갔다. 차가 있었다면 1시간도 안 걸려서 갔을 텐데, 차가 없으니 거의 2시간이나 걸렸다. 하지만 바깥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안했다. 푸르른 제주의 풍경이 차창 밖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모슬포항에 내려서 마라도 가는 배 탑승권을 구매했다.


마라도 가는 배, 성인 1명이요.”

들어가는 것은 10시 넘어 있는데 돌아오시는 것은 언제 오실래요? 보통 두 시간이면 다 보시는데 맞춰서 13시쯤 들어오는 배로 탑승권 해드릴까요?”


순간 멈칫했다. 무려 내가 2시간 걸려서 마라도에 왔는데, 심지어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마라도를 2시간 안에 볼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자장면도 먹어야 하는데?


그 다음 돌아오는 건 언제예요?”

그 다음은 15시 다되어야 되요.”

다음 배를 타면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은 되었지만, 안타깝게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버스 막차 시간이 걱정되어서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13시쯤 돌아오는 탑승권을 구매했다.


여객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니 마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르는 길에 푸름이 가득한 마라도의 풀들이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어서 오라는 듯이 바람의 힘을 빌려 인사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른 고즈넉함이 섬 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마라도에 가서 제일먼저 한 것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생각으로 마라도 자장면을 먹은 것이다. 마라도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풀 다음의 장면은 상상외로 중국집이 주르륵 길을 채우고 있는 전경이다. 그 앞은 바다와 들판이 가득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무척 화려한 간판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다 중국집이다. 그 중 한 곳에 가서 자장면을 맛보았다. 제주도 을 올린 자장면은 뭍사람인 내게 제법 생경한 맛이었다. 제주도에서 자장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마라도였으니, 아직 나는 제주도 사람들이 을 일상적으로 자장면에 올려먹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우 독특한 맛이었다는 인상만은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

짜장면을 혼자 다 먹고 나와서 구경한 마라도는 너무 예뻤다. 화려한 중국집 간판을 넘어서는 작은 섬이다 보니 높은 건물하나 없이, 걸음을 옮기는 길가의 왼쪽에는 그 곳에 사시는 분들의 집과 가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었다. 성당하나, 절하나, 교회하나 사이좋게 자리 잡고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모습도 제법 귀여웠다. 그렇게 30분도 안 걸어가면 대한민국최남단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있었다. 모르는 어른들에게 사진 좀 부탁드린다며 어색하게 웃으며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배를 타는 선착장으로 바지런하게 섬을 돌아갔다.

선착장으로 돌아가서 딱 보니 거의 배를 타고 나가야 할 시간에 겨우 도착한 셈이었다. 제일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한 시간만, 한 삼십분만, 더 있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바다는 오묘해서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는데, 나는 뭍사람이라 바다를 볼일이 많이 없으니 이렇게 바다를 보며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선착장에 도착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바다를 보며 있었다. 멀리서 여객선이 제주도로 가는 모습을, 멀리서 마라도로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있다 보니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다. 모슬포 항도 너무 예쁜 곳이었지만, 마라도는 마라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한창 몽글해져서 다시 돌아갈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그 앞에 있는데 제주도 사시는 어떤 할머님 한분이 내게 말을 걸으셨다.


어디 갔다 오는가?”

기억에는 제주도 사투리가 담겨 있었는데,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 마라도 갔다 왔어요.”

여기서도 바다 다 보이는데 뭐 하러 거기까지 가는가? 볼게 뭐 있다고?”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내가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본 바다와 마라도에서 본 바다는 다른 바다였다. 하지만 평생 제주도에 살면서 마라도로 일하러 왔다 갔다 하셨을 할머님 눈에는 이 바다나 저 바다나 다 똑같은 바다였다. 그저 할머님께는 삶의 터전일 뿐이었다. 만약 할머님이 해녀셨다면 늘 언제나 목숨을 걸고 일을 하셨을 바다를 보러 온 내가 더욱이 이해가 안 되셨을 것이다. “그러게요.” 라고 할머님 말씀에 수줍게 웃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할머님 말대로 내가 살면서 봤던 수많은 바다는 어찌 보면 다 똑같은 바다이지만, 몇 년이 지나도 마라도와 제주도에서 봤던 바다는 아직도 눈에 선하고, 그 색과 바다냄새도 다다르게 기억된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물었던 그 베트남인은 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왜 라오스를 가냐고 물었을까? 아마 그 사람이 봤을 때는 베트남과 라오스는 자연환경, 생활 습관 등 여러 부분에서 매우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별다르게 볼 것이 없고, 특이하지도 않고 구지가서 봐야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특히나 그것이 삶의 터전일 경우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내 회사로 여행 온다고 한다면 너무 당연히 그 사람 이상한 것 아닌가 싶을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 각자 미묘하게 다른 색과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특히나 사람에 따라서 비슷하고 같은 것도 그 순간의 기분과 날씨, 표현 등에 따라서 기억하는 바가 천지 차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여행자의 안목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행자로서 그 안목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삶의 터전에 머물러 있는 입장에서 우리의 것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삶의 터전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희망의 공간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 번은 부산에 혼자 갔을 때였다. 부산가면 꼭 태종대에 가보라던 친구의 조언을 따라 태종대에 갔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누비 열차를 타겠다고 그 앞에서 한참 기다렸다. (나중에 안 사실은 기다리는 시간이면 태종대를 절반 정도는 구경할 수 있다.) 20여분은 넘게 기다려서 탄 태종대 다누비에서 어떤 할아버지는 자기 딸과 손자에게 태종대 앞 바다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예쁘다. 부산의 보석이다.” 물론 나에게 하신 말씀은 아니셨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는 표현이다. 태종대가 부산의 보석이라고. 그래서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부산의 빛나는 태종대 바다가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기억한다.

만약 제주도 할머님께서 제주도 바다가 예쁘지. 그리고 마라도 바다는 좀 더 다르게 예쁘지.”라고 했다면 나는 더 흔쾌히 너무 예쁘더라고요!”라고 대답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그래서 꼭 열심히 경험해서 안목 있는 여행자가 되어서 그 미묘한 아름다움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삶의 터전을 지키는 한명의 일꾼으로서 나중에 안목 있는 여행자를 만나서 꼭 말해주려고 한다. 여행자에게, “그래도 좋지 않았나요? 이곳이 제 마음 속 보석입니다.”라고  [글= 정윤하]

 

 

 

 

 

 

 

 

 


이해산 기자
작성 2021.01.24 09:41 수정 2021.01.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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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