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커피공화국

정윤하

사진=코스미안뉴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주일 평균 커피 소비가 9.31잔이다. 수치를 어림잡아 계산해도 한 사람당 커피를 일 년에 500잔은 마신다는 이야기다. 거짓말 같지만은 않은 것이 주변만 해도 물은 잘 안 마셔도 커피는 하루에 한잔 이상 마셔야 하는 카페인 중독자가 지천이다. 그래서 한집 걸러 치킨집 못지않게 한집 걸러 커피집이 우후죽순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그 속도가 제법 빨라서 놀라울 지경이다. 가끔은 저 많은 커피숍이 안 망하고 다 장사가 되는 것인가?’ 싶다가도 점심 저녁 사람들로 그득한 커피숍을 보면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겸연쩍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것인가? 하루에 한잔이상 커피를 마실 정도로 한국인들은 커피에 푹 빠진 사람들인가?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커피에 푹 빠져서 커피숍이 골목마다 가득가득 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의 대부분은 야근으로 인해 피로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이다. 아침에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면서 테이크아웃용 종이컵 하나, 혹은 텀블러에 커피한잔 들고 다니는 모습은 너무 흔하다. 취업준비생이던 시절, 친구는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실제 취업하고 나서는 그게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지 알았다는 소감을 전해줬다.

52시간의 정부 계획보다 빠른 것이 매일의 업무이고, 매주의 끝내야 할 업무이며, 한 달의 마감인 직장인들이다. 정부계획을 무용으로 만드는 무급 야근이 알게 모르게 아직도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니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실제로 통계로 봐도 직장인들이 커피소비량이 가장 많고, 직장생활 중에는 하루에도 2~3잔의 커피는 너끈하게 마셔야 하는 일과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표면적인 통계를 사용할 수 있는 쉬운 계산이다. 정말 그렇게 피로해서 커피를 마실 것이라 멋들어진 커피숍보다는 테이크아웃만 할 수 있는 테이블 없는 커피숍이 훨씬 더 많이 장사가 잘되어야 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또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가?

먼저, 1인 가족의 증가로 집의 규모 자체가 줄어서, 커피숍을 통해 공간공유가 늘어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싶을 것이다. 하지만 1인 가족의 증가는 예전처럼 큰 집을 향유하며 여러 세대원을 한 집에 담았던 삶의 양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집이 커지면 유휴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가족 구성원이 없는 사이 친구를 불러도 유휴공간을 활용하기 용이하다. 예전만해도 내 친구랑 친구 부모님이 안계시면 친구 집에 가서 놀거나, 엄마의 친구들은 집에 모여서 같이 차를 마시고 놀다가 가시곤 했다.

하지만, 1인 가족의 증가는 집에 누군가를 불러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장 사회 초년생인 나의 주변만 봐도 다들 원룸, 좀 여유가 있으면 투 룸에 산다. 식탁이 있는 1인 가족의 집은 정말 집이다. 그렇게 되면 침대 하나 놓고, 짐 좀 챙겨 놓으면 친구는커녕 내 한 몸조차 제대로 둘 곳이 없다. 그러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수 없다. 그래서 커피숍에서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서 마시는 가정 경영의 일부분이 커피숍이란 제 3자에게 위탁 처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숍의 자리를 공유한다. 좀 더 큰 집이 생겨서 커피머신을 집에 둘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로, 자유롭지만 방만하지 않은 분위기이다. 내 친구들은 커피숍을 제일 많이 이용했을 때가 바로 자기소개서를 쓰던 취업 전 시기이다. 주변에 취업준비생이 있었던 사람, 혹은 취업준비생의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은 안다. 타자 쳐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도서관의 노트북 전용 좌석에서도 타자치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몇몇 예민한 분들은 잠시 화장실 간다고 좌석을 비우면 수줍게 쪽지를 노트북에 붙여주신다. 절대 누가 나에게 이런 마음을...이놈의 인기란...’ 이런 헛된 기대를 갖지 말고 쪽지를 보셔야 한다. “타자 좀 살살 쳐주세요.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상당히 시무룩하며 조심조심 타자를 다시치기 시작하지만, 원래 자소서란 결국 자소설로 끝이 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신들린 타자치기 기법이 나온다.

그 날 하루가 가기 전에 그 도서관 대신 알려준다는 익명 게시판 가보면 나의 만행이 MSG 좀 더 쳐져서 올라와 있으니, 어느 누구라도 쉽게 다시 도서관에 갈 수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 커피숍에 가는 것이다. 백색 소음 속에서 나의 타자 소리는 그 옆 테이블까지 잘 안 들린다. 그러면서 기대한다. 나중에는 업무를 이렇게 커피숍에서 하는 직장인이 되기를 말이다. 실제로 직장인이 되어서도 회사로 방문해서 딱딱하게 누군가를 만나는 대신에 커피숍을 이용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업무를 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세 번째 이유는 커피 그 자체 있다. 바로 커피 메뉴의 다양화이다. 스타벅스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뻗쳐 있는 다국적기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커피메뉴를 다양하게 도전하고 매 시즌마다 메뉴를 바꾸며 사람들이 커피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스타벅스 코리아뿐이다. 실제로 미국에 가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신 많은 친구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음료가 다양하지도 않지만, 맛도 한국만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각 나라마다 선호하는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보편화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인들이 참 열심히 다양한 커피음료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동네 커피숍만 가더라도 아메리카노만 팔지 않고 다양한 시그니처 커피를 개발하고 홍보한다. 한국인의 커피 메뉴 다양화는 커피 음료만 수십 개인 프렌차이즈의 메뉴판뿐만 아니라, 동네 커피숍까지 뿌리 깊게 뻗쳐있는 것이다. 또한 그 시그니처 음료를 돋보일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준비하는 유리잔도 사람들이 커피숍에 방문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스타그램 덕이다. SNS 인증 때문이다. 워낙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사는 한국인에게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엄청난 중요한 일이다. 뭘 먹었는지, 어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누구랑 했는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담아서 SNS에 올리는 문화는 나는 이런 멋진 것을 했다,” “나는 이런 것도 먹어봤다.” 등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권하는 느낌까지 준다.

이 과정에서 커피는 매우 좋은 SNS의 피사체가 되었다. 단순하게 맛이 좋은 커피숍, 시그니처 커피가 예쁜 커피숍, 커피숍이 예쁜 커피숍, 주변 경관이 예쁜 커피숍 등 다양한 커피숍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등장하였다.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번 쯤 가보게 되고, 원래는 갈 일 없던 사람들도 괜히 SNS를 통해 접한 카페에 방문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맛있지도 않고, 사진 속처럼 근사하지도 않은 커피숍에서 웬만한 밥값만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입맛은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원샷한 것보다 훨씬 씁쓸하게 돌아오는 경험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커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커피를 많이 마시기도 하고 쉽게 커피를 접할 수 있어서이다. 하지만 커피 안에 있는 뒷맛은 아직은 우리 사회의 피로, 사회적 구조의 한계 및 어려움,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시선 등 부정적인 부분을 그 검은 액체 안에 비밀스럽게 담고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쓰기만 하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 쓴맛조차 익숙해져서 모르게 된다. 커피 안의 맛이 많은 카페들의 시그니처 커피처럼 달큰하고, 화려하고, 예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로는 보이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정말 커피가 좋아서 직접 원두를 볶는 것부터 배우고, 그 향에 취해서 커피를 내리고, 바리스타 공부를 하는 분들도 엄청 많다. 커피는 비록 외국 문물이지만, 결국 이것은 우리의 전통인 다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단순히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평상심을 찾고, 그 안에서 다시 나를 가다듬고 해야 할 일에 나서는 모습이 결국은 커피마시기도 다도인 것이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면서 좀 더 자신을 들여다보고,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위로 하며 좀 더 보듬어 준다면, 시럽 한 방울 안 넣은 커피도 그 안의 단 맛이 입 안 가득 퍼지지 않을까? [글=정윤하]


이해산 기자
작성 2021.01.25 11:47 수정 2021.01.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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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