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두물머리 물안개

정진우

사진=코스미안뉴스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종소리가 들려온다. 하절기 7, 동절기 6. 저녁나절 특유의 쓸쓸 함을 담은 타종 소리는 산을 에둘러 멀리 강까지 닿는다. 소리라기보다는 울림에 가깝지 않 을까. 먼 곳을 달려 소리는 청아함을 잃고 둔중한 울림으로 와닿는다. ()자 음의 길고 깊은 소리가 산을 넘어 달려든다. 소리의 끝은 울렁울렁, 아주 옅게 여울이 진다. 소리가 지친 기색을 내보인다.

 

나는 그 타종 소리를 운길산의 아래, 한강 변 딸기밭과 우리 집에서 종종 듣곤 한다. 이곳에 살면서 내가 얻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운길산 수종사에서 시작되는 타종 소리였다. 간혹 타종 소리가 시작될 즈음에 하늘 복판에서 비어져 나오는 별빛을 보기도 한다. 아직 하늘이 밝은데 말이다. 하늘의 복판은 아직 밝은데 멀리 누운 산을 따라 하늘의 가장자리가 조금은 노랗거나 붉고, 조금은 어두운 듯 해가 물러가는 시간. 저녁이 조금씩 침입해 오는 시간. 해 저무는 시간대에 나는 이곳에서 타종 소리를 들으면서 종종 이른 별을 본다.

 

새벽의 별은 팽팽하다.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듯 끊어질 듯한 별빛이 새벽녘에는 아주 팽팽하게 당기어 있다. 그렇다면 초저녁의 별은? 초저녁의 별은 눈에 띄게 느슨하다. 그 별빛은 느슨하여 흔들린다. 그 흔들리는 모습이 꼭 눈물 맺힌 눈시울 같아서 일렁일렁 흔들린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이른 별빛이다. 끊어질 듯 팽팽하게 시간이 당기어져 있는 도심에서는 별도 하늘에서 메말라 얼마 없다. 별 들은 헐거운 시간으로 몰려들어 헐겁게 놀고 있었다. 별들은 도심 속 정교하고 완연한 시간을 벗어나 시골로 몰려들었다. 이곳 봄의 시작은 산수유가 알린다. 마당 있는 집들을 보면 으레 한 그루씩은 산수유나무가 있다.

 

산수유는 겨우내 가지 끝에 볕을 모아 놓고 초봄에 순을 터뜨린다. 봄볕이 가지 끝에 맺힌다. 그것이 산수유의 꽃이다. 산수유 꽃은 햇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을 하고 피어난다. 날이 조금 풀리기 시작하고 온도 차가 심해지는 날에, 두물머리는 물안개를 한가득 피워낸다. 이 또한 봄에 피는 꽃처럼 절정을 이루어 피어난다. 여름에서 가을, 이 땅의 밤은 소쩍새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그들은 귀뚜라미, 풀벌레와 더 불어 일정한 간격의 리듬으로 밤새 울음을 뱉는다. ‘라고 울어서 소쩍새라고 한다는데 막상 들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고, 그런 것도 같다. 그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밤 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받아 적으면 시가 된다. 밤은 말이 많다. 이곳을 수식하고 표현할 말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듯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아름답기만 했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겠지. 물안개. 그렇다. 물안개가 너무 많다. 봄꽃처럼 절정을 이루어 피어나는 물안개가. 재작년, 이곳에선 여러 사람이 죽었다. 그중에는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 집의 젊은 청년 사장도 있었고, 나와는 특별한 사연이 얽힌 교회 집사도 있었다. 공통점은 내가 그들이 해준 밥을 몇 번 얻어먹었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나와 가깝던 이들이 이곳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곳에서 연이어 죽음을 택했다. 모두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

 

아직도 입에 도는 듯 그들이 해준 밥맛이 느껴질 것만 같다. 실한 보리밥에 참기름, 고추장을 섞은 간단하고 투박한 시골 맛. 깊은 향이 진하게 도는 메밀국수 맛. 터질 듯 속이 꽉 차 내용물이 비어져 나오려 는 만두, 김밥까지. 그 풍미가 아직도 입가에 감도는 듯하다. 가끔 고소한 참기름 향을 맡으면 불현듯 그들이 생각나 가슴께가 저릿하다.

 

작년까지, 붉은 글씨로 쓰인 많은 현수막들이 양수대교로 진입하는 진중삼거리에 길게 걸려있었다. 수십 개가 넘는 현수막들은 탄식, 혹은 탄원, 혹은 단말마 비명이 되어 이곳을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호소했다.

 

나는 아직도 그 현수막 문구 중 하나를 기억한다. ‘교도소 가는 아버지 피눈물로 배웅한다.’ 그린벨트라는 이름의 괴물은 땅과 물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이곳 84개의 가게를 철거시켰다. 그들의 장사는 엄연히 말하면 불법이었으나 실상은 불법과 합법 사이의 줄타기였다. 그들의 장사는 공무원들이 쉬쉬하면서 이루어진 20여 년의 긴 장사였다.

 

어떤 가게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었다. 손님 중에는 면사무소 직원도 더러 있었고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 20년 세월 장사를 하던 많은 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범죄자가 되었다. 대통령까지 단골로 유치했던 가게가 한순간에 내쫓겼다.

 

신앙처럼 받들던 전 대통령들의 낡은 사진은 그들이 쫓겨날 때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사진 속의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자신들이 사랑한 맛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골교회에서는 수십 명의 이름을 빌린 탄원서를 넣어 교도소에 끌려간 교인을 꺼내어 오기도 했다. 나도 거기에 이름을 적었다. 장례 행렬 소리가 온 동네를 요란하게 울린 날도 있었다.

 

교회에선 교도소에 끌려간 많은 이들을 위해 합동 기도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직도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들은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받은 것이다. 라고 감히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가해자가 누구였는가. 그곳에는 아직도 가해자가 없다. 아니 어쩌면 피해자 스스로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지나친 처사라고 하며 정부를 탓하자니 그들 자신이 저지른 불법이 생각났다.

 

많은 이들은 그린벨트라는 이름 뒤에 숨었다. 탓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명만을 현수막에 써내어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할 뿐이었다. 그들의 비명은 그렇게 2년 동안이나 길게, 길게 이어졌다.

 

주말마다 수천 명의 인파가 두물머리로 쏟아지듯 밀려들었다. 지난 2,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 동안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 많은 비명은 그냥 땅에 떨어져 없어지지나 않았을까. 그때 나는 관광지라는 수식어로 많은 관광객들을 빨아들이듯 흡수해 오는 두물머리와 운길산이 싫었다.

 

두물머리로 향하는 차들이 몰려드는 양수대교 초입의 진중삼거리는 그때 비명으로 빼곡했다. 그들의 호소는 두물머리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만큼의 무게는 되었을까. 혹은 수종사의 타종 소리 만큼의 무게는 되었을까. 위선은 그만 떨고 싶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능내역. 이곳 조안면에는 폐역이 하나 있다. 능내역이 그것이다. 한때 열차가 지나던 길. 그 한때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곳이다. 다만 사람 넘치고 호화롭던 한때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넘나들던 작은 인정과 감성을 기억하는 곳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곳에 놓인 줄 끊긴 기타, 흑백사진 몇, 끊어진 철길, 낡은 우체통이 전부다.

 

지나던 사람과 손길이 어디 그것뿐이었겠느냐 마는 과한 감성으로 칠하려 하지 않고, 버린 만큼만 보여주겠다는 것이 오히려 담담하고 담백해 좋다. 폐역에 비추어보니 내가 써낸 글이 모두 욕심이었던 것 같다. 과한 목소리, 과한 색깔, 과한 감정. 어쩌면 모두 욕심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글이 침묵보다 가치 있는 것일까, 한다면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나는 척했던 것이 아닐까. 호소하는 척, 탄원하는 척, 슬퍼하는 척. 혹은 누구를 탓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모두 위선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곳 두물머리와,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진중삼거리의 온도 차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한쪽의 웃는 소리와, 한쪽의 우는 소리를. 온도차이가 두물머리의 물안개를 피워낸다고 했다. 이곳엔 물안개가 너무 많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 너무 많다. 철길이 끊어져 있다. 이만 생각도 끊는다. [글=정진우]

이해산 기자
작성 2021.01.27 11:25 수정 2021.01.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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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