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어머니와 외갓집 나들이

조광호

사진=코스미안뉴스


어머니는 겨울바람이 부는 늦가을 어느 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예쁜 한복도 차려입고, 머리도 단정히 하고, 버선과 깨끗한 신발도 준비하여 신었다. 함께 외갓집 가자고 한다. 내 옷차림도 잘 만져 주면서 얼굴이며 바지며, 지난 오일장에서 사 온 고무신과 예쁜 혁대로 마무리를 해준다. 새로운 혁대에서 나오는 상큼한 고무 냄새는 어린 시절에 신비롭기까지 했었다. 고무 혁대는 미끈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좋았다.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 드러나 보이도록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외갓집까지는 오십 리 이상 되었다. 형과 누나와 갈 때는 지름길처럼 산과 들로 걸어가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 타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버스 타면 멀미가 심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비닐봉투와 손수건을 미리 쥐여주었다. 여차하면 토하기 위해 비닐 주둥이를 펴서 입 가까운 가슴에 대고 있었다. 체력이 약해서 멀미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비포장도로에서 차가 덜컹 덜커덩거리고, 배가 울렁거려 멀미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괜찮을까 하여 창문 쪽 공기를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온갖 방법을 생각하였다. 요동치는 버스가 더욱 멀미를 심하게 하는 거 같았다. 발뒤꿈치를 들고 발 앞 뿌리 발가락으로 서 본다. 그러면 조금 편안해지는 듯하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다시 속이 불편하였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토하는 불편함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여 좌불안석이었다.

 

나만 멀미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 있었다.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만원이다. 멀미 방지하는 약이라든가,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 약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고통스런 외갓집 나들이다. 차라리 걸어서 가면 좋을 텐데 하였다. 버스가 얼마나 갔는지, 어렵게 외갓집 동네 어귀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머리와 가슴 속이 시원하였다. “아들아 참 고생했다. 여기가 어머니가 자란 곳이란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쉬이 오니 편한 세상이라며 좋아하셨다. 어머니 동네다. 어머니 동네도 시골이었다. 큰 대문이 있는 우리 집과 달리, 개방된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루가 있었고, 안방 한식 격자문과 그 옆 작은 망보는 문이 보였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찌들어 있는 담배 냄새가 쾨쾨하였다. 그런 방이지만 방이 편안함을 준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놀았을 집, 어머니 냄새가 어딘가에서 나는 듯 두리번거리며 코를 씰룩거려 본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모른다.

 

다른 할머니가 엄마 이름을 부른다. “아이고~. 일금이 왔구나. 얼마 만이냐. 쪼그만 아들도 델고 오고, 아들이 참 잘 생겼다. 고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일금이가 어렸을 때 또래들 누구누구와 동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지. 그 아이들도 모두 시집갔는데, 어디 사는지 모르겠다. 일금이는 인물이 이쁘고 미인이라서 낚아채듯 부잣집으로 시집가 잘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대견스러워하며, 시골 웃음처럼 감추는 듯한 미소로 얼굴이 환하다. “옛날에 니 엄니가 먹을 복은 갖고 태어났다고 했었지. 멀리서 왔으니 출출하니 뭐 먹어야지하며 홍시감이랑 수정과를 상으로 갖고 온다. 시장기가 있었는지 냄새부터가 향기롭고 입에서 침이 돌았다.

 

외갓집 둘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뛰어다녔다. 내 또래 누군가 있어 함께 놀았던 거 같은데 기억에 없다. 뒤뜰과 텃밭, 대나무밭이며, 처마 밑에 꽃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는 곶감이며, 우리 집 분위기와는 달랐다. 초가집을 비~ 빙글 돌면서 어머니의 발자취가 있었던 것을 보물 찾듯이 눈여겨 관찰하였다. 그래 저런 귀퉁이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했을 거야, 마당 저쪽에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이 평상에서는 수박도 먹고 참외도 먹었겠지. 소 있는 외양간에서는 송아지를 키웠을까. 어머니 어린 시절을 나름 만들어보았다.

 

어머니는 저녁밥 먹으라고 부른다. 얼굴 안색이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6·25 때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 직계들, 외갓집이 경찰 집안이어서 모두 몰살당했다 한다. 피붙이라고는 어린 조카 하나 남기고 없다고 한다. 이래저래 어머니는 기구한 운명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였는지, 외갓집을 별로 많이 가지 않았었다. 막내아들과 함께한 어머니 추억의 고향 외갓집. 어머니가 그리워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어디 계실까.[글=조광호] 

이해산 기자
작성 2021.02.04 10:59 수정 2021.02.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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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