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그림책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20살 때부터 꼬박꼬박 말버릇처럼 ‘글을 쓰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닌 걸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 아니지만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고, 서른을 코앞에 두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압박을 이겨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용기를 지금까지 이어와7월 현재까지 그 용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꽃길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인 만큼 욕심만큼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곤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끝없이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속이 편하겠단 마음도 있습니다. 최소한 수학에는 답이 있으니까요.
좌절스럽기도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 길을 계속 걸으면 내 길이 되는지 확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이나 결혼이 제 인생을 행복으로 채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거나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남들이 모두 하는 일이라고 해서, 제게 똑같이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직 불확실한 제 바램이 제게 꽃길을 보여주지 않아도, 저는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을 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저 개인의 고민은 아닐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한 번씩은 했었고 누군가는 하고 있을 고민일겁니다. 이 고민에 대하여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고민을 하는 대신 ‘용기’를 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을 그만하고 용기를 내라니, 흔하디흔한 자기개발서에 나오는 조언처럼 느껴지겠죠. 하지만 흔히 들었던 그 이야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패조차도요.
원하는 삶을 살면, 그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그런 삶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바뀔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6개월간 그토록 원했던 그림책 수업을 시작했다고 저 한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림을 못 그립니다. 하나가 늘면 다른 하나를 공부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노력 끝에는 연봉협상도, 승진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이전처럼 이유모를 불안으로 울며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제가 그림을 계속 배운다면 제게 원하는 행복이 언젠간 찾아올까요? 그 대답을 누군가 해 줄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모를 겁니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운명을 준 신은 아마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제게 운명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하고 싶은 걸 하며 제 인생을 헤쳐나갈 운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불안하고 슬퍼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저처럼 자신의 운명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선택에 결과를 당장 보여드릴 수 없지만 여러분의 결과는 여러분의 선택이길 바랍니다.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