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과 수량화를 시적 정서로
오늘날 사람들은 측정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측정하여 수량화하고 시각화하며 살아간다. 시간,길이, 무게, 온도 등은 물론 행복, 건강 등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측정하려는 버릇이 있다.
시간에 따라 소멸하는 음악까지도 악보를 통해 시각화하고, 회화까지도 실제의 크기로 수량화하거나 원근법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등 모든 자연은 물론 인간의 관념까지도 수량화하고 시각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숫자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의 생활이 모두 숫자로 수량화되고 시각화되어 있다. 아파트 번호 키의 숫자를 기억해야하고, 컴퓨터 비밀번호를 기억하거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 숫자를 기억해내야 한다. 버스도 번호를 붙여 기억하고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고 나서 숫자로 계산한다. 모든 경제활동이 숫자로 수량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사랑까지도 숫자로 환산하려든다. 상대가 베풀어준 호의까지도 숫자로 환산하여 되돌리려고 한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려고 하니까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도 모두 수량화하는 어리석음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인간관계는 물론 사회의 결속력까지도 모두 이해관계로 숫자로 따지고 계산하려드는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은 숫자에 의해 지배당하여 숫자의 노예로 전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서로 소원해지고 따뜻한 인간미가 사라진 사무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 일예를 든다면, 각종 보험을 들 수 있다.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과 생명을 잃은 사람까지도 화폐로 환산하여 보험금을 지급한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숫자로 환산되는 비인간적인 사회규범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숫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인간다운 주체적인 자유를 찾아가는 길만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풍조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시로 형상화해보았다. 만국 공통어인 아라비아 숫자로 모든 가치가 수량화로 측정되는 시대에 숫자에 대한 의미를 모두 제거하고, 역발상으로 숫자의 기호가 주는 이미지를 연상하여 인간 세상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발상으로『생각하는 숫자』시집을 시도해보았다.
세계인들의 공통어로 세계 사람들이 숫자에서 해방되어 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인간다운 주체적인 자아를 찾고, 인간성을 되찾아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길 바랄뿐이다.
이번의 시 작업은 지구촌 가족들이 문화적 습성이 다름으로 해서 소통이 불가한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여 모처럼 숫자 놀음에서 해방되어 인간다운 인간미로 서로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시도한 엉뚱한 발상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아무쪼록 잠시나마 측정의 관습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숫자로 쓴 시적 정서에 정신적인 충분한 휴식을 가져보길 바랄뿐이다.
저자 김관식 씀
명성출판사 刊 /김관식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