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터리는 대관절 알 수가 없어서 철저한 분석이 필히 요구되는 녀석이기에 하루 날을 잡고 곰곰이 뜯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에너지 소비와 방전에 대한 특성을 따져보면 어떤 날은 핸드폰 배터리보다 더 빨리 방전되고는 한다. 하루가 막바지를 향해 갈 때 핸드폰 충전을 해놓아야 다음날 아침 방전이 되지 않을 텐데 핸드폰 충전 연결을 해놓을 겨를도 없이 내 스스로가 방전되어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핸드폰과 나는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완충과 방전의 그래프가 반대의 방향을 향하여 가는 기이한 상황이 종종 반복된다. 게다가, 나의 배터리는 방전이 되는 속도도 예측할 수가 없어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을 야기한다.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야속한 에너지는 속도를 늦추기는 고사하고 더 빠른 속도로 내게 안녕을 고하는 것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나는 방전이 되기 직전인데 여전히 주위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쳐나 보일 때 나의 배터리는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탓하다가 쑥 줄어든 퍼센트 숫자를 보며 깜짝 놀라 제발 조금만 더 버티자고 빌게 된 적이 셀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어떤 이들의 배터리는 즐거운 활동조차 에너지원이 되어 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충전이 가능해 방전이 쉬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이야기라 듣자마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의 배터리는 어딘가 미세한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 있는 게 분명하다. 내게 있어 눈을 뜨고 하는 모든 행동은 에너지 소비를 요하는 것이라 아무리 즐겁고 재미를 느낀다 해도 에너지가 흘러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누가 시간을 빨리 감기 한 줄 알았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 있었는데, 완충 이 된 지 두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방전될 위기에 처했던 적이었다. 그 후로는 완충이 된 상태이더라도 언제 방전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다. 어떤 날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정확한 인지가 되지 않아 실제 남은 에너지양과 퍼센트 숫자가 크게 달랐던 적도 가끔 있었다. 물론 오차야 항상 있을 테지만, 반 이상은 충분히 남았다고 여겼는데 실제로 반 이하, 혹은 4분의 1정도만 남아 있었던 것이었을 때는 문제가 생기고야 만다. 이를테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을 반 이하로밖에 못 느낀다든지 계획했던 것을 반 이상 못 해낸다든지 말이다.
완충의 상태도 방전처럼 알 수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도대체 언제쯤 완충이 되려는지, 충전의 속도를 예측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생을 살고 있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완충에 대해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완충에 대한 인지를 담당하는 부분이 고장 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충분한 잠을 자고 나면 완충이 되었을 확률이 높을 텐데 여전히 퍼센트 숫자는 100이 아닐 때가 많았다. 휴식이 될 만한 기타 다른 행동을 취하더라도 숫자는 느리게 올라갈 뿐이다. 숫자가 내려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충전 중의 상태를 더 오래 보내고 싶은 배터리 녀석의 계략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완충이 될 때까지는 거의 항상 나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만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는 것만이 충전의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는데, 다른 이들이 즐거움을 또 다른 에너지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충전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보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음악듣기, 영화보기, 책 읽기, 명상 등 나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활동이라면 나의 배터리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활동 전후로 배터리를 살펴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내 배터리의 퍼센트 숫자는 내려가는 속도가 느려질 뿐 올라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언젠가 마음가짐이 충전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궁금하여 몇 번 실험을 해보았는데 눈에 띌 만한 상관관계는 없었다. 결과가 그때그때 다 달랐기 때문이다. 충전이 빨리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이 먹힐 때도 있었고 아무 도움 안 될 때도 있었다. 그저 매번 평이한 결과가 도출되었던 마음가짐은 ‘무’의 상태였다.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으로 가득한 내 배터리에 관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완충 상태로 계속 있을 수도, 방전 상태로 계속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완충과 방전이라는 극과 극의 상태를 오가지 않고 완충 아래의 언저리와 방전 위의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더라도 나의 삶은 지속될 수 있다. 방전될 때까지 나를 몰아붙여서 에너지를 쓸 필요도, 완충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유연하게 에너지 충전과 소비를 하다 보면 나의 배터리, 평생 지닐 운명의 나의 배터리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방전이 되기 전에 충전을 하고 완충이 되기 전에 소비를 하는 순환고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나의 인생도 보다 유연한 생산성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이것이 배터리 분석의 하루를 보낸 날, 23시 59분에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