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KBS전국가요대전 출신, 밤무대 출신

김광수

사진=코스미안뉴스


한 시대를 풍미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KBS전국가요대전 연말 결선이 있었다. 가수 지망생뿐 아냐 전국의 시청자와 호사가들까지 울리고 웃긴 그 프로는 노래도 노래려니와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가 압권이었다. 덧붙여 화려한 무대와 예비가수들의 입으나 마나 의상, 객석을 채운 다기다양 청중, 방년의 남녀가 뿜어내는 젊음의 열기는 시청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신인가수의 등용문이었던 그것은 가수 지망생에게는 천국의 계단이자 꿈의 궁전이었다. 그랑프리란 이름의 으뜸상을 받는 순간 무명이던 가수 지망생은 단순한 신인이 아닌 전국구 유명가수로 각광을 받게 되었으니 신데렐라가 따로 없었고, 바보 온달이 남이 아니었다.

 

지역 예선에서 출발하여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계단과 숨은 과정은 청중과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오불관언, 알 바가 아니었다. 보이고 들리는 것, 보고 듣는 것은 모름지기 예선 통과 예비가수의 선정적 미모와 의상과 노래와 노래하는 모습뿐이었다. 살 만큼 산 어른 남녀 사이에 자조적인 우스개가 있다. 순식간에 죽거나 망하고 싶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알면서도 죽고 싶으면 주색잡기에 침몰하고, 모르는 사이 패가망신하고 싶으면 자식 예체능 시키라는 말이 그것이다.

 

교통사고 중 오토바이의 치사율은 압도적 일위다. 사망 아니면 중상이다. , 절제의 달인이라 해도 자주 마시다 보면 과음하게 된다. , 바람피우기다. 당사자와 양가 집안이 파괴된다.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를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잡기는 주색에 비해 광범위하지만 결국은 노름이고 도박이다. 돈과 재물과 목숨까지 걸고 벌이는 따먹기다. 상대적으로 점잖다는 장기도, 신선놀음이라는 바둑도 돈을 거는 순간 노름으로 표변한다. 점잖은 자도 신선도 없다. 요행수와 속임수로 남의 것을 제 것으로 만들려는 노름꾼만 있다. 저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특정인의 숨겨진 본성과 탐욕을 알고 싶으면 돈 따먹기를 해보라는 속담이 실증되는 순간이다. 당사자, 가족, 빌려준 자, 도적맞은 자, 빼앗긴 자에 이르기까지 피해자가 광범위하므로 주색잡기 중 최악으로 치부한다. 조상의 형안이다.

 

예체능도 점입가경이다. 대한나라 초중등학교에는 보건도 생활체육도 없다. 오로지 일인자가 되어 프로선수가 되거나, 올림픽과 돈 되는 세계대회서 금메달을 따기 위한 체육, 소왈 엘리트 체육뿐인 나라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동메달을 따고 우는 선수는 사스코리아 선수뿐이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리라. 부모에게 본전 찾아드릴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리라. 부모입장에서는 자식에게 들인 목돈을 회복할 길이 막연해진다. 궁극적으로는 자식 장래가 심히 걱정스러워진다.

 

아차, 잊은 것이 있다. 금메달과 은, 동메달의 체육연금액 차이는 천양지차다. 그러기에 이런 작태는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현장에서 은밀히 회자되는 말이다. 체육특기자의 몸은 걸어 다니는 돈뭉치에 금덩어리다. 시쳇말인 황금수저 물고 나온 집안 자제분이거나, 부모의 전적인 희생 없으면 특기자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거나 불가능하다. 돈뭉치와 금덩어리로 특기자가 되어도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면, 대표라도 올림픽 대표가 되지 못하면,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만사휴의다. 일거에 진흙수저로 전락한다.

 

예술 갈래를 망라한 예능은 백배 더하다. 실용예술로 통하는 대중예술은 천 배 더하다. 대중가요 가수로 성공하기는 만 배 어렵다. 온 가족이 후견인이 되어 돈을 끌어들여도 일 년에 단 한 번 딱 한 명이다. 그랑프리 하나, 수상자 한 명뿐이다. 최우수상 우수상 기타 등등 들러리다.

 

주택복권 당첨보다 금메달 따기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본인 포함 부모형제들은 시나브로 죽어간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중을 위하여, 대중을 상대로 노래 불러야 하는 대중가요 가수 지망생이면서 청중과 관객을 대상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심사위원 몇 사람을 향하여 노래한다. 그들에게 청중과 시청자의 반응 따위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권위주의의 극치다. 삼황오제 시절도 황제의 나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고, 아니다.

 

밤무대 가수가 있다. 무대가 설치된 대형주점에서 술손님을 위하여 노래 부르는 가수다. 삼삼오오 몰려와서 마시고 먹고 제각기 잡담과 방담 밀담까지 나누고 그들끼리 노래도 부르는 이가 술손님이다. 정직하게 말해 취객이다. 취한 손님이 경청하고 따라 부를 때까지, 그 경지에 이를 수 있게끔 노래 불러야 하는 가수가 밤무대 가수다. 진정한 대중가요 가수다. 밤무대 가수는 민요도 가곡도 곡과 가사를 대중가요풍으로 바꾸어 노래 부른다. 그래야만 한다. 오페라 출연자도 아니고 성악가도 아니고 밤무대 가수이기 때문이다.

 

밤무대 가수에게는 심사위원보다 명성은 아예 없고, 학벌도 전문성도 떨어지는 취객이 왕이다. 대중가요가 무엇인가? 대중을 상대로 부르기에 이름조차 대중가요다. 불특정다수 청중을 위하여 노래 불러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올바른 노래고 대중가요다. 그뿐인가 어디. 요즘 음악애호가의 수준은 민요 가곡뿐 아냐 오페라 아리아도 판소리도 소화시키고, 감상할 줄도 비평할 줄도 안다. 이런 시대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만민이 평등한 민주주의가 대세다.

 

모든 예술과 문학, 심지어 학문에서도 본격 학문과 대중 학문의 간극이 거의 없는 시대다. 차이가 있다면 상식적 감상과 전문적 비평 차이다. 그마저도 머리와 가슴과 온몸의 힘을 빼고,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학자를 최고로 치는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문인과 그들의 문학만은 여전여상 권위주의에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 격인 자칭 세칭 원로나 전문평론가 몇 사람을 위한 말글과 작품을 쓰고, 그들에게 목을 맨다.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문인이라면 기성작가로 인정받은 분 아닌가? 올려다보는 말글보다는 대등하게 불 수 있거나 소통 가능한 작품을 쓸 수 있고, 써야만 하는 분 아닌가?

 

필자는 밤무대 출신 작가이고 싶다. 고대소설 현대소설, 고전시가 현대시를 가르쳐 주신 굉장한 선생님 있다. 그러나 그분을 위한 작품 쓰고 싶지 않았고, 써본 적이 없고, 없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술손님처럼 저마다의 인생을 살면서 전제도 선입감도 없이 들리고 보이는 대로 읽어주는 이를 위하여 써왔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이름하여 민중의 놀이터 초당에서 연유한 초당문학(草堂文學)이라면 시건방진가.

 

세계최악의 권위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좋은 나라에서 필자의 선택은 어려운 일이었고, 괴로운 일이었고, 자존심 왕창 손상된 날이면 후회도 크고 많은 일이었다. 여전히 힘겹고 서럽기까지 하고 자주자주 도망치고 싶지만 임전무퇴, 물러서지는 않을 작정이다. 반세기를 버텼는데 새삼 겁낼 필요가 있겠는가?

 

무진장 속상하는 날이면 밤무대의 취객이 되어 왕유(王維)의 탄금복장소(彈琴復長嘯) 대신 통음장탄식(痛飮長歎息)하면서 견뎌왔는데 늦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김광수]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3.04 11:54 수정 2021.03.04 12:0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정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2일
2025년 4월 12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