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칼럼] 도시의 역습

도시와 인간은 상호작용에 의해 생물처럼 진화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 잘 날 없다. 하도 사건사고가 많아 엽기적인 사고가 나도 이제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고 무감각으로 일관한다. 605.41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천만이 넘는 인구가 바글바글 대며 살아가는 서울의 이야기다. 이쯤 되면 서울은 귀양살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해는 간다. 일자리가 있으니 몰려들고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살고 싶고 문화를 누릴 수 있으니 아득바득 서울을 고집한다.

 

소설가 이호철은 1966년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를 연재했다. 서울시 통계자료를 살펴보니 1966년 서울 인구가 3,793,28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백만 명이 채 안 되는 인구를 보고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를 썼는데 52년이 지난 지금 인구 천만이 넘은 서울을 상전벽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시와 인간은 상호작용에 의해 생물처럼 진화한다. 출근길에 신도림역에서 서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출근길을 수놓는다. 그들이 서울을 먹여 살리고 서울이 그들을 먹여 살린다. 역동적인 도시의 에너지다. 그 에너지가 사람들의 호르몬을 자극한다. 사회적 호르몬의 작용은 본성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집단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피땀 흘려 노력하고 있는가.

 

땅이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이제 임계점에 다다랐다. 특히 서울은 임계점을 넘어 도시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에너지가 다른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역습이라고 해서 쓰나미나 지진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괜히 신경질이 나는 것도 역습이다. 불특정 다수가 미운 것도 역습이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도 역습이다. 누군가 아프고 누군가 죽어 가는데 관심조차 없는 것도 역습이다. 인간의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것들이 모두 역습이다.

 

도시라는 생물체에게 일만하라고 부려먹다 보니 주인을 향해 반기를 든 것이다. 쉼을 주고 편안함을 줘야한다. 그래야 사람을 보호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최악의 범죄들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사람과 도시가 서로 상생하는 원리다. 이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도시는 빠른 속도로 인간에게 달려와 인간을 역습할 것이다.

 

물레방아가 혼자 돌아가는 법은 없다. 물레방아가 있으면 물이 있어야 한다. 도시는 인간이 있어야 돌아가는 생명체다.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도시에게 선택권이 없다. 인간에게 선택권이 있다. 도시의 고독사보다 도시 밖의 고독생이 얼마나 좋은가.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삶보다 천편다률적인 도시 밖의 삶을 선택하는 건 인간밖에 할 수 없다. 선택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고 고뇌가 따르는 법이다.

 

도시가 인간을 평준화 시키지 못한다. 인간만이 도시를 평준화 시킬 수 있다. 가난을 소비하면서도 도시가 좋은 사람들에게 도시는 고독사를 권할지 모른다. 선택의 문제 앞에서 인간은 소심해진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심이 없어서다. 도시의 역습이 시작되었으니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 그대를 속이듯이 도시도 그대를 속인다. 도시의 품에서 살고 싶은 그대를 유혹하는 건 그대 자신이다. 도시 속의 귀양살이보다 도시 밖의 휴양살이를 택했던 사람들의 진심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전승선 기자
작성 2018.10.23 17:58 수정 2020.07.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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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