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인 김삿갓

영월에 누워 있는 그를 찾아 가다

영원한 자유인 김삿갓


강원도 영월으로 김삿갓을 찾아왔습니다. 쓸쓸히 떠돌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보고 싶었습니다. 김삿갓 무덤으로 가는 길에 삽다리가 놓여있습니다. 그 밑으로 흐르는 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생은 덧없고 시간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듯합니다.

세상은 그를 김삿갓으로 기억합니다. 김병연이라는 본명은 숨겨두고 김삿갓이라는 필명으로 전국을 떠돌았으니 한평생 얼마나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었겠습니까. 김병연은 왜 하필 삿갓을 쓰고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을까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김병연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갑니다. 그런데 하필 과거시험 문제가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시제였습니다. 김병연은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김익순의 잘못을 조목조목 적어 제출했습니다. 역적 김익순의 혼은 죽어서도 저승도 못갈 것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웃음거리다라는 글이었습니다.

김병연은 당당하게 장원급제를 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진실은 김병연을 까무러치게 합니다. 과거시험에 나온 김익순은 바로 김병연의 친할아버지였습니다.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어 반역으로 처형당한 할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했으니 그 충격으로 김병연은 집에서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했지만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방랑을 하게 됩니다.   

인생무상입니다. 삶은 때때로 그렇게 사람의 뒷통수를 칩니다.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다가 이따금씩 집에 들러서 가족들을 보고 다시 집을 나서서 떠돌았습니다. 아버지 없이 큰 아들이 그만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수십 통 써서 아버지가 갈 만한 마을마다 맡겼다고 합니다. 여기 저기 떠돌면서도 아무 탈 없이 그 편지를 받아본 김삿갓은 모르는 척 하며 다시 길을 떠났다지요.

어느 곳에서는 훈장 노릇도 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후학을 기르기도 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시를 팔기도 하며 먹을 것과 잠잘 곳을 해결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학덕 높은 사대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큼 격조가 높았습니다. 품위와 위선으로 똘똘뭉쳐 천박한 욕 따위는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선비들을 조롱하고 비판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을 드러낸 김삿갓의 풍류는 어쩌면 선비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을지 모릅니다. 패러독스와 위트가 넘치는 김삿갓의 시는 언어유희의 천재적이었습니다.

김삿갓은 어느 날 떠돌다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해 어느 절에 갔더니, 절에 있던 선비와 스님이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깔보며 푸대접을 했습니다. 김삿갓은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와 붓을 달라고 하고는 통쾌하고 시원한 시를 써서 선비와 스님에게 던졌습니다. 그 시를 읊어 보겠습니다.

중의 둥근 머리는 땀이 찬 말의 불알이며
뾰족뾰족한 선비 머리통 상투는 앉은 개 자지로다.
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솥에 굴리듯 요란하고,
눈깔은 검은 후추알이 흰죽에 떨어진 듯 흉하구나.

김삿갓은 그렇게 비겁한 세상을 비웃으며 명징한 시인이 되어갔습니다. 처음엔 세상을 원망하며 방랑자가 되었겠지만 일생을 방랑하면서 진짜 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전라도 화순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초연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춥다, 이제 잠을 자야겠으니 불을 꺼주시오‘라며 영원한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육신은 묘지에 잠들어 있지만 그의 영혼은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3.11 08:26 수정 2021.03.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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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