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생의 찬가 讚歌 Ode to Life

이태상

 

죽음이 찾아오면 그대는 그에게 뭘 대접하겠는가? On the day when death will knock at thy door what wilt thou offer to him?”

 

, 나는 내 손님 앞에 내 삶의 푸짐한 잔칫상을 차리리라. 그가 빈손 빈속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이리. Oh, I will set before my guest the full vessel of my life I will never let him go with empty hands.

 

내 삶이 끝나는 날 죽음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그동안 수고한 모든 나의 가을날들과 여름밤들의 수확을 그 앞에 내놓으리라. All the sweet vintage of all my autumn days and summer nights, all the earnings and gleanings of my busy life will I place before him at the close of my days when death will knock at my door.

-Rabindranath Tagore(1861-1941)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高齡化)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란다. 그래서인지 웰빙(well-being)이니 웰다잉(well-dying)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지만, 잘 죽기 위해선 먼저 잘 살아야 할 일 아닌가.

 

그럼 잘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언제 어디서든 닥칠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서 삶에 집착(執着)하지 않는 것이리라. 잘 알려진 장자(莊子)의 외편(外篇)에 나오는 얘기가 있다. 사람들이 활쏘기를 하는데 질그릇을 걸고 내기를 하니까 다들 잘 맞추더니 다음엔 값이 좀 더 나가는 띠쇠를 걸자 명중률이 떨어지다가 마지막으로 황금을 걸자 화살들이 모두 빗나가더란 일화 말이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THE FOLLOWING DAY, NO ONE DIED.”로 시작되는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 Death with Interruptions’의 첫 장면이다.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트칼 작가 주제 사마라구(Jose’ Saramago1922-2010)가 쓴 소설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노화(老化)는 진행되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갈등을 그리는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된 세상은 천국이 아닌 지옥임을 사실적으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이 그랬듯이 1960~1970년대의 미국을 겁 없이 제멋대로 살았던 저항운동가요 반항아(反抗兒)였던 애버트 호프만(Abbott Hoffman 1936-1989)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지자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은 그가 나이 든 자신이 싫고, 활력을 잃어버린 청년세대가 못마땅했으며, 보수로 회귀한 1980년대를 살아내기 힘들어 세상을 일찍 하직했을 거라고 했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朴泰遠 1910-1986)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상의 이번 죽음은 병사(病死)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고 했다지 않나.

 

모차르트가 178744일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리 한 번 같이 읽어보자. 이 편지글은 1864년 출간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서한집에서 옮긴 것이다.

 

지난번 편지에 안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는 이 순간 몹시 놀라고 걱정됩니다. 내가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는 버릇이 있지만, 이번만은 어서 빨리 아버지께서 쾌차하신다는 보고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렇지만 잘 좀 생각해 볼 때 죽음은 우리 삶의 진짜 행선지임으로 나는 진작부터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있는 이 좋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놀랍거나 무섭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가장 평화롭고 큰 위안이 되며(내 말을 이해하시겠죠) 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지복감(至福感)의 열쇠임을 내가 깨달아 알 기회를 주신 나의 하늘 아버지에게 감사해왔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직 젊지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 안 하는 때가 없습니다. 내일 새벽이 오기 전에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는지 모른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나를 아는 아무도 나를 접촉해 사귀면서 내가 한 번도 침울해한 적이 있더라고 말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요. 이처럼 내가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행복한 성정을 갖게 된 데 대해 나는 날마다 나의 창조신께 감사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다 나처럼 늘 행복하게 삶을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I have this moment heard tidings which distress me exceedingly, and the more so that your last letter led me to suppose you were so well; but I now hear you are really ill. I need not say how anxiously I shall long for a better report of you to comfort me, and I do hope to receive it, though I am always prone to anticipate the worst. As death (when closely considered) is the true goal of our life, I have made myself so thoroughly acquainted with this good and faithful friend of man, that not only has its image no longer anything alarming to me, but rather something most peaceful and consolatory; and I thank my heavenly Father that He has vouchsafed to grant me the happiness, and has given me the opportunity, (you understand me) to learn that it is the key to our true Felicity.

 

I never lie down at night without thinking that (young as I am) I may be no more before the next morning dawns. And yet not one of all those who know me can say that I ever was morose or melancholy in my intercourse with them. I daily thank my Creator for such a happy frame of mind, and wish from my heart that every one of my fellow-creatures may enjoy the same.”

 

예수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했고,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 필사즉생(必死即生) 필생즉사(必生即死)’도 있지 않은가. 우리 상상 좀 해보자.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다고. 그럼 사는 것도 젊은 것도 아니리라.

 

그래서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Walt Whitman 1819-1892) 도 그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이렇게 읊었으리.

 

죽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과도 다르고 더 다행스런 일이리라. To die is different from anyone supposed, and luckier.”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극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Sir James Matthew Barrie 1860-1937)도 그의 작품 피터 팬(Peter Pan)’에서 이렇게 말했으리라.

 

죽는다는 건 엄청 큰 모험이리. To die will be an awfully big adventure.”

 

그러니 모차르트같이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 이제 우리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남긴 말 더 좀 음미해보자.

 

우리가 받아드릴 준비태세(準備態勢)가 되면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이 우리를 찾아온다. Everythingcomes to us that belongs to us if we create the capacity to receive it.”

 

바닷가에 서서 물을 바라보기만 해선 바다를 건널 수 없다. You can'tcross the sea merely by standing and staring at the water.”

 

해가 졌다고 운다면 눈물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If you crybecause the sun has gone out of your life, your tears will prevent youfrom seeing the stars.”

 

죽음이란 불을 끄는 게 아니고 날이 샜으니까 등을 치우는 거다. Death is notextinguishing the light; it is only putting out the lamp because the dawnhas come.”

 

사랑이란 받아줘야 선물이 된다. Love's gift cannot be given, it waits to beaccepted.”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이 고통을 기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The most important lesson that man can learn fromlife, is not that there is pain in this world, but that it is possible forhim to transmute it into joy.”

 

삶은 여름꽃처럼 그리고 죽음은 가을 단풍 낙엽 같이 아름다워지도록 하라. Let life be beautiful like summer flowers and deathlike autumn leaves.”--

 

사랑이란 영혼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그대 삶이 스스로 꽃필 때 생기는 것이다. Love is when the soul starts to sing and the flowersof your life bloom on their own.”

 

저무는 날에 밤이 키스하며 속삭이지: 난 네 어머니 죽음이라고. 내게서 너는 새 삶으로 태어날 거라고 The night kissed the fading day with awhisper: I am death, your mother. From me you will get new birth.”

 

사소한 것들 위로 무한무진한 미스테리가 지나치면 이 일상적인 것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음악이되지. 나무들과 별들과 푸른 언덕들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런 의미를 갖게 되지. The touch of an infinite mystery passes over thetrivial and the familiar, making it break out into ineffable music... Thetrees, the stars, and the blue hills ache with a meaning which can neverbe uttered in words.”

 

나는 자면서 삶이 기쁨이란 꿈을 꾸었지. 잠에서 깨어나선 삶이 봉사란 걸 알았지. 그랬더니 봉사가 기쁨이 되었어. Islept and dreamt that life was joy. I awoke and saw that life was service.I acted and behold, service was joy.”

 

나비의 삶은 길지 않지만 몇 순간으로 충분하지. The butterfly counts not months but moments, and hastime enough.”

 

끝으로 영국의 극작가 탐 스토파드경(Sir Tom Stoppard, 1937 - )이 그의 2002년 작품으로 2007년도 토니 희곡상(Tony Award for Best Play)을 탄 3부작 유토피아 해안-항해, 파선, 그리고 구조 trilogy of plays: The Coast of Utopia Voyage, Shipwreck and Salvage’에서 삶의 정수(精粹/精髓)를 요약해 밝힌 한마디를 우리 모두 명심하기 위해 인용해보리라.

 

아이들은 성장하기 때문에 아이의 목적은 크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의 목적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하루살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하루살이는 자신의 전부를 매 순간에 쏟아 몰입한다. Because children grow up, we think a child’s purpose is to grow up. But a child’s purpose is to be a child. Nature doesn’t disdain what lives only for a day. It pours the whole of itself into each moment.”

 

이 말은 생명의 신비란 다름 아닌 사랑이란 뜻이리라. 우리 모든 코스미안은 이렇게 사랑으로 사는 순간순간에서 영원을 사는 것이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3.15 11:30 수정 2021.03.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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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