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소서노의 딸들

강은아

사진=코스미안뉴스


세련된 메이크업과 잘 차려입은 원피스 차림의 여성들이 다소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딘가를 찾는 듯 까만 동공은 소득 없이 바쁘고, 애써 초조함을 감추려 하지만 소용없다. 그런 그녀들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가느다란 목까지 카메라는 세밀하게 잡아내고야 말 것이므로.


큐 사인이 떨어지면 준비해온 자기소개에 이어 악몽 같은 과거사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어느새 자신이 붙었는지 생생하게 그 시절의 애환을 가감 없이 쏟아 내기에 이른다. 그러다 틈만 나면 탈북해서 한국에 오길 잘했어요.”라며 자조 섞인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다.

탈북자들을 패널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점차 그 수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언제든 TV를 켜면 그녀들을 보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닌 게 됐다. 물론 브라운관 속 그녀들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여러 감정이 복잡미묘하게 교차한다. 연민과 권태, 더 나아가 이따금 혐오라는 감정까지 고개를 쳐든다. 가족을 두고 떠나온 독기, 쉽게 돈 버는 듯한 행태, 혹시 부풀려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등등. 그러나 어쩌면 그 또한 일방적인 입장에서 편협한 사고로 그녀들을 바라보는 건 아닐는지. 남과 북의 갈등을 화합으로 융화시키려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삐딱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분명 다각도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결혼은 무덤 속 이며, 자식은 그 관에 단단히 박힌 이라고. 물론 무덤 같은 결혼생활에 발목 잡는 자식을 둔 이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집단에는 꼭 탈북 여성들이 어김없이 도린 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마음에 저마다 하나씩을 품고 도망쳐 온 여성들. 애써 감추려, 묻어두려, 속이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그것은 자꾸만 허벅지를 쿡쿡 찌른다. 아파서 신음을 낼 때마다 종국엔 펼쳐지는 아픈 과거들은 달갑지 않은 덤일 것이다.

수 없는 탈북 시도 끝에 중국에 인신매매로 끌려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A, 남들과 같은 평양의 주부로 살아왔지만 단 한 번의 말실수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B, 그리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온 사이 꽃제비로 전전하다 사라진 자식을 찾기 위해 무작정 한국행을 택한 C까지.

저마다 지나온 인생을 책으로 쓰자면 밤새워도 모자랄 그녀들 사이에서도 물론 갈등이야 왜 없겠는가. 우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는 탈북자집단에서도 마치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기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방 사람과 평양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대부분의 전자가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면, 소수의 후자는 도리어 그것을 구경하며 자랐다.

그 외 북한에서의 생활환경, 학벌, 탈북방식과 거기에 소요된 물리적 시간 등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체제를 떠나 사람 사는 데서 볼 수 있는 똑같은 이치일 뿐, 그네들이라고 해서 딱히 유별날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심리와 차이를 활용해 스토리를 꾸며내기를 즐기는 추세다. 험한 가시밭길 끝에 중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데리고 홀로 탈북한 아무개와 평양 상류층으로 살다가 무난하게 탈북한 요조숙녀의 알력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극명한 차별과 참혹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착잡할 뿐이다. 탈북자들의 빈부와 계급을 소재로 한 방송은 전혀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고통과 불안을 더 이상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소모하는 것에 대해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유인즉 그녀들은 서로 반목하고 몇 갈래로 나뉘며 따로 노는집단이 아닌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만난 전우에 더 가까울 테니 말이다. 총과 서슬이 퍼런 감시, 속고 속이는 고발 앞에서 소싯적의 경제력과 배움의 깊이는 탈북 길에서만큼은 무용지물 그 자체다. 오히려 모든 걸 초월한 전우로 맺어줄 뿐.


그 때문에 험난한 생존 터이자 엄격한 타향일 수밖에 없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그녀들은 서로가 뭉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녀들이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인다 해도 말이다. 누구는 자본주의의 참맛을 알고 물 만난 고기처럼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가 하면, 다른 누구는 학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짝을 만나고, 또 열심히 저축하는 재미를 맛보며 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쿡쿡 찌르는 이 있었으니 그것이 서두에도 언급했던 낭중지추다. 그녀들에게 은 다시 말해 자식은 삶의 원동력인 동시에 때로는 일시 정지시키는 장애물이기도 했으며, 그것들 모두 아울러 그리움으로 종결되는 존재였다. 마냥 애틋한 내리사랑을 줄 수 없는 환경에서 마주한 부모자식 관계만큼 애달픈 것도 없으나 미움과 원망을 걷어낸 자리에는 오롯이 그리움만 남을 뿐이다.

길을 잃어 본 자만이 떠도는 자의 한숨을 읽을 수 있는 법. 우리는 자식을 두고 혼자 살겠다고 온 독한 여자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이미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녀들은 서로가 미루어 알고 토닥여가며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줬을 것이다.

그 옛날 북녘땅의 고구려. 왕의 장자가 나타나 다음 왕위를 물려받게 되자,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남녘으로 내려온 여인. 그리하여 그 아들로 하여금 터를 잡고 기틀을 닦아 나라를 세우게 한 여인. 바로 소서노가 아닌가? 자유와 희망을 찾아 맨몸으로 내려와 일군 소서노의 정령이 수많은 탈북 여성들의 기개 속에 깃들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들을 소서노의 딸들이라고 명명(命名)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녀들은 그러니까 소서노의 딸들은 예능 프로그램의 꽃 역할을 하거나 애교를 부리는 북한 여성 역할로 잘못된 이미지의 고착화에 쓰일 소재가 아니다. 도리어 악착같은 투지와 기개로 모험의 강에 몸을 던지고, 잃어버린 못을 찾기 위해 자신들의 몸에 난 생채기를 기꺼이 감수해야 했던 강인한 여성들이기 때문이다.[글=강은아]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3.16 12:36 수정 2021.03.1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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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