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은 아득하다. 멀고 멀어 닿을 수 없을 것 같다. 시차를 전제로 한 스침, 죽음을 관통해야 하는 인연, 나를 비춰내는 거울. 나는 이 만남을 이렇게 규정한다. 마주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 이 끌림을 왜 거부하지 못하는지. 두통약까지 삼켜가며 왜 매달 한 구의 관을 여는 것인지. 어째서 실체 없는 이 사귐을 붙들고 한탄하는 오늘을 맞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내 지인들은 주관이 뚜렷하다. 얼어붙은 이 가슴에 훈기를 가져다주는 그들은 모두 체온을 잃은 자들이다. 내게는 차가운 고집쟁이 친구가 참 많다. 그래서 나는 고독하다. 나와 똑 닮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고적하다. 오늘도 나는 뼛속 깊이 새겨질 한 마디를 찾아 친구의 관을 찾아 나선다. 별이 된 그에게 이르는 길목에서 ‘그라마톨로지’라는 묘비명을 본다. 천 쪽에 달하는 두껍고 무거운 관에 새겨진 이름을 뒤로하며 관속으로 들어간다.
이 책으로 삶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라며 펜을 쥐고 천 바닥의 장거리 달리기에 들어선다. 검고 뽀얀 글자가 유골이 되어 흩날린다. 골수 같은 한 자 한 자가 빈 가슴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아프고 시린 글귀가 팔다리를 묶고 있던 끈을 하나둘 끊어낸다. 자유와 고통이 동의어였던 걸까. 풀린 족쇄가 늘어난 만큼 통증은 더해 간다.
유언이 되어 남은 기록이라도 기어이 눈에 담아야겠다며 먼지 쌓인 책을 집어 든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던 니체, 은둔생활을 택한 쇼펜하우어, 시계추처럼 살았던 칸트,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들뢰즈.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산 이는 없다. 사고(思考)라는 피 말리는 작업을 업으로 삼았으니 생을 꾸리기가 쉽지 않았을 터. 타자의 시선과 무관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던 그들은 ‘생각함’의 골수로 채워진 관을 통해 말한다. 죽어 말을 하는 이 위대한 과업은 고깃값과 빵값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 사이에 턱을 괴고 앉아 존재와 존재함을 사색을 업 삼았던 벗들의 무던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무지를 악이라 했던 플라톤, 코기토 에르고 숨을 말한 데카르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아오른다고 했던 헤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돈다고 했던 마르크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한 하이데거,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던 키에르케고르,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라던 비트겐슈타인. 죽은 자들의 명언은 삶을 바꿔주지 않았다. 열어 본 뚜껑은 늘었는데 생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나를 향한 시선도 변한 게 없다. 고루한 책을 찾아 읽고 어려운 말을 뱉어대는 현실 감각 없는 고집쟁이. 그게 타인에게 맺힌 내 모습이다.
나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마음만 먹으면 열어 볼 수 있는 관이 널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과 다르지 않다. ‘그라마톨로지’라 적힌 관 뚜껑을 닫으며 데리다의 말을 곱씹는다. 그래, 쓰는 작업을 다시금 시작했으니 읽기 또한 새롭게 이어가야 한다. 주기적으로 관을 여는 것은 대업을 위해서도 거대한 성취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누군가 혼신을 다해 남긴 글을 읽는 것이 주저함과 머뭇거림을 삶의 동력으로 전환 시켜 주기 때문이었다.
사고를 위한 사고를 할 만큼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 외로운 현대인은 고독하지 않다. 고독한 나는 오늘도 외롭다. 고독을 나눌 살아 있는 친구를 아직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비겁한 지식인의 탈을 쓰고 서재로 향한다. 데리다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책장을 훑는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게서 내가 낙오될 것 같아서,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영혼까지 사위어 버릴 것 같아서, 시간이 삶을 끌어가는 동안 박제되어 버릴 것 같아서 나는 오늘도 관으로 가득 찬 서재를 서성인다.
기록은 이 순간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남기는 유서다. 왜 이토록 어려운 길을 택했는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 준 것은 문자였다. 내일의 내 양분을 남기고 죽은 이들의 글을 읽어 내려간다. 음성을 잃은 벗들의 이야기를 눈에 담는다. 유골을 곱씹어 만든 잉크로 뭉툭한 만년필을 채운다. 그 펜으로 남긴 글귀로 나는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 비루한 시간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살아있는 죽음. 죽어 숨 쉬는 그들로 인해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들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기록이지만 내 글이 빛이 되어 누군가의 눈에 닿을 날을 꿈꾼다.
존재와 죽음을 생의 가운데 둔 이들의 분투에 애도와 감사를, 그대들을 알게 된 내 앞날에 씁쓸한 위로와 위안을 건넨다.[글=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