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배려의 기술

김경미

사진=코스미안뉴스


얼마 전 나는 지인으로부터 유튜브 채널 하나를 추천받았다. 콘텐츠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한국에 사는 영국 남자가 가장 한국적인 곳, 예를 들면 한국의 전통시장이나 60년 된 골목식당 같은 곳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콘텐츠를 다룬 채널은 흔하디흔하지만 나는 한 동영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웃에 사는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내용이었다. 이 영국 남자의 따뜻한 마음, 선행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이 남자의 배려 기술!


할머니를 온전히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마음이 솔직히 정말 부러웠다. 나라면 어땠을까? 휘어진 허리를 한 번 펼 새도 없이 온종일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동등한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의 서투름으로 할머니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뭇머뭇하다가 말 한 번 걸어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의 이 머뭇거림은 참 고질적이다. 도와드릴까? 자리를 양보할까? 현금이 많지 않은데 이거라도 괜찮을까? 선의를 베풀 기회가 와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찬스(?)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세간의 의견대로 이기적인 마음에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머뭇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쳤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몸이 불편한 분이 적선을 구하고 있었다. 돈을 좀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현금이 동전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동전을 드리면 혹여 더 기분 나빠 하시지 않을까?’ 그분은 나의 머뭇거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지갑에 손도 대어보지 못하고 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한 외국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분에게 돈을 드렸다. 주머니에서 돈 한 뭉치를 꺼내고는 돈을 이리저리 세어보더니 적당한 지폐 한 장을 찾아 자연스럽게 건넸다. 가볍게 건네는 모습이라니! 동정도 연민도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담백하고 좋았다.


유튜브 속 영국 남자의 모습도 그랬다. 할머니를 특별하게 대하지도 조심스럽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 마주치는 이웃과 밥 한 끼하고 싶다는 순수한 호의 정도가 느껴질 뿐이었다. 동정하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그 배려의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할머니에게 자식에 대해 질문할 때,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자식 이야기는 상처일지도 모른다. 과연 이 질문을 어떻게 풀어갈까? 나라면 분명 머뭇거리다가 패스했을 질문이다.

이 영국 남자는 나도 아들을 키우는데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며 할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혼자 핸드폰을 내려놓고 박수를 세 번 쳤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이내 자연스럽게 자식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약 이 영국 남자가 할머니께 자식들은 뭐하고, 홀로 폐지를 주우면서 생활하세요?’라고 질문했다면 어땠을까? 이것이야말로 범죄 스릴러 영화보다 더 잔혹하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면 나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 배려의 기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르쳐 주는 데가 있다면 가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물론 학교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우라고 배웠다. 하지만 무턱대고 돕는 것이 상대에게는 실례나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배려가 없는 도움이란 결국 동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을 배려라고 한다. 결국, 배려가 없는 도움은 마음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껍데기만을 배워온 것이다. 그 결과, 머뭇거리다가 마음에 짐이 생기고 의욕만 앞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배려가 깊어지면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마음을 헤아리면 공감할 수 있고 그제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


베풂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그 베풂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등한 위치를 잡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더 가볍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편견의 때가 덜 묻은 어린 시절에 알게 된다면 배려의 기술을 마음속에 아로새길 수 있을 것이다. [글=김경미]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3.22 10:40 수정 2021.03.22 10:5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정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