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순수의 시절

문경구

 

13, 중학교 일학년 때 만난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은 같은 반 친구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늘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며 살아가게 된다. 저마다의 삶은 분명 다르게 펼쳐져 가지만 13살에 멈춘 그 시절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실이 깨져 나갈 듯 떠들던 친구들이 지금은 각자 자신의 길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수십 년 동안 무슨 일이 없었겠느냐 마는 그립고 그리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자꾸 들춰보게 된다.

 

같은 반 친구들이 고학년에 함께 오르면서 마냥 좋아 종달새처럼 노래할 수 있어 재미있었고 차츰차츰 서로 친하게 되어 사춘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다. 그때 떠들어대던 순수함이 가득했던 교실을 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에 오르면서 다른 반으로 흩어져도 눈 뜨면 만나고 싶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라도 만나고 싶던 친구들이다. 학교 앞 빵집 주인이 솥뚜껑을 열어 재낄 때마다 피어오르는 찐빵 수증기를 따라 아련하게 묻어 오르던 그 순수함은 어디를 가도 따라다녔다.

 

턱밑에 솜털 수염이 거칠어 지면서 나누는 이야기들도 따라 거칠어 갔다. 꿀맛 같은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나누던 이야기들은 그 어떤 세월 앞에서도 잊을 수가 없다. 한 친구의 형이 일찍 결혼하여 맞은 형수 이야기를 처음 나누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무슨 대단한 음식상 준비도 아닌 라면 하나 끓이는데 앞치마를 두르는 치장이 더 요란했다고 했다. 그리고 혼수로 가져왔다는 꽃그림이 들어간 비싼 범랑냄비에 끓여 준 라면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 본 라면 중에 제일 맛이 없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쪼름하고 초라한 학교 앞 라면집의 라면이 최고라고 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의 형수는 라면 하나 끓이는데 물을 한강수로 잡았다고 했다. 그 후로 우리는 친구 형수를 늘 한강수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한강수도 흐르는 강을 따라 떠나고 이제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형수라는 사람이 공손하게 끓여 준 라면 맛이 얼마나 맛이 없었냐는 물음에는 먹고 있는 학교 앞 라면집 맛이 답이었다.

 

얻어맞느라 찌그러진 양은냄비 뚜껑으로 먹던 라면 맛을 잊지 못하는 친구들이었기에 모두가 라면 절대론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흐르는 세월은 그 라면 맛을 그대로 묶어 둔 체 친구들만을 모두 흘러가게 하였다. 진학이다, 군대다, 결혼이다 하며 앞에 놓인 길을 향해 서로 뿔뿔이 떠나가게 했다.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어지는 모두 똑같은 세월 속을 살았다. 어느덧 자식들의 성장과 늙으신 부모 형제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짜여진 운명의 강둑을 따라 똑같이 걸어가야만 했다. 저마다의 모진 세월 속 몇 년 만에라도 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죽었니 살았니 개구리 반찬이라고 토씨에 음정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르던 어릴 적 노래를 불러보다가 이제는 건강줄 단단하게 묶어 메야 한다라는 마지막 당부의 농담에 쓸데없이 눈물이 많아졌다며 대화를 마친다.

 

친구가 살아있으니 그 감사가 온 세상에 넘친다. 나는 언제 생각해도 섬뜩 놀랄 감사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태평양 너머의 그들도 나도 거친 파도에 지쳐 얼마나 서로를 잊고 살수밖에 없었던가. 그런 친구들마저도 내게 안부 전해주기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면 우리 모두가 지금 어느 주소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 라면집의 추억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라면 맛을 모르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철학의 전설 같은 친구들이 있기에 온 세상이 눈부시다.

 

이것이 순수의 시절에 만난 참된 우정의 빛이다. 그 친구들을 떠나 사는 동안 타국에서 만났던 친구들과는 우정이라고 말하는 의미부터가 다르다. 엿장수 가위질만큼 변할 수 있는 그들 나름대로 독특함의 우정이다.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친구들은 살아온 우정의 견적을 아무리 내어봐도 똑같은 액수이지만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와는 그 무게부터가 독특하다.

 

제일 먼저 상대가 나보다 나은 학벌을 지녔는가에서 견적을 다르게 내고, 나보다 가진 재산이

많은가에서 견적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 두 가지 조건만이 가능하다. 벨 빠진 사람처럼 어릴 적 친구들로 그들을 대했던 나는 결국 겪지 말아야 했던 또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저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조건의 자로 나를 재려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기대가 나의 삶과 비교가 된다면 분명 우정은 고사하고 납득 될 수 없는 인간관계가 된다. 나도 분명 나만의 가치관을 갖고 산다. 내가 입은 값싼 옷이 그들이 걸친 배우 같은 옷치장에 가려져 그들이 나에게서 찾아내지 못한 나의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소유가 목적뿐인 세상의 파렴치한이 되고 순수함과는 너무도 관계가 먼 잡배들이다. 그런 친구들은 라면맛 뚝 떨어지게 하는 범랑냄비 맛과 똑같다. 푹 익기를 거부하고 겉돌기만 하니 그 속에서는 좋은 우정의 맛이 우려질 수가 없다.

 

가난의 불편함이 전혀 없는, 그래서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가치들을 알 리가 없다. 나는 어떤 부자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다. 부자라는 그런 거추장스러운 소리 들어 무엇을 하겠는가. 언제 누구에게든 가슴을 열고 문학과 예술을 나누기를 기다리는 마음 하나면 부자다.

 

이것이 어릴 적 친구와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만난 인생들의 실상이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 담긴 찌그러진 냄비 속 세상은 버릴 수 없는 옛 친구들의 소중한 인연이며 나만의 재산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아침마다 나를 기억하며 찾아오는 새들과 어릴 적 까까머리 친구들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눈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3.23 11:45 수정 2021.03.2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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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