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집콕’, ‘방콕’하면서 ‘랜선투어’로 버텨왔지만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이 환장할 봄날’이 성큼 다가오니 겨우내 참아왔던 인내심에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때는 자신을 지키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비대면으로 여행의 갈증을 푸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좋은 여행 방법은 개인 승용차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을 찾는 것. 바로 집콕에서 벗어나 자동차 차창 밖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드라이브 스루 섬 여행을 추천한다. 수도권에서 당일치기 여행지이자 탁 트인 바다를 두 눈에 담으며 자분자분 걷기 좋은 서해의 작은 섬, 경기도 화성 제부도로 언택트 여행을 떠난다.
제부도는 하루 두 번 섬으로 가는 둑길이 열린다. 다리로 연결된 섬에 가는 것보다 훨씬 이색적인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바닷물 갈라짐 현상은 제부도의 매력이다. 바닷길 생기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아무 때나 갈 수 없다는 점도 흥미로울 뿐 아니라 바닷물이 차올라 길이 잠겨서 섬에 갇히더라도 편안한 외로움과 단절 없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2.3㎞의 열린 바닷길 양 옆으로 펼쳐진 갯벌 위로 하늘이 끝없이 푸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힘차게 넘실대던 파도가 뒷걸음질 치며 자취를 감추더니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야트막한 그 둑길을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새롭다. 잘 닦인 시멘트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오간다. 도로에는 가로등이 점점이 서 있고, 길 양옆으로 바다의 맨살,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닷길을 건너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직진하면 매바위, 오른쪽은 선착장 가는 방향이다. 매바위 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면 섬의 남쪽 끝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된다. 주차장 부근에는 제부도 관광안내소가 있고 바닷가로 내려서면 갯벌 체험장 중간에 있는 20m 높이의 기암괴석들이 시선을 끈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매바위’는 오랜 세월 파도와 바닷바람에 의해 모양이 깎이고 파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뾰족 솟은 4개의 자연 조각상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보인다.
썰물 때는 걸어서 매바위 끝까지 다녀올 수 있다. 바닷물이 발끝을 적실 듯 가까이 와서 출렁이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돈다. 제부도 여행의 백미는 화성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제부낙조'다. 매바위를 중심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일몰 풍경은 가히 낭만적이자 몽환적이다. 제부도에는 이렇듯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떨어지며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 명소들이 많다.
제부도는 느린 걸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보는 섬이다. 섬의 남쪽 끝 매바위에서 섬의 북서쪽 빨간 등대까지는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해안가 산책로가 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제부도 '제비꼬리길'은 섬의 북서쪽에 놓인 해안탐방로와 탑재산의 숲길을 따라 2km 정도를 1시간 정도 걷는 코스인데, 데크로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산도 그리 높지 않아서 제부도의 다양한 경관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해안가 산책로를 걷다가 지루하면 드넓은 제부도 해수욕장으로 내려서면 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보드라운 모래 해변을 걷노라면 코로나 때문에 지친 마음이 저절로 녹는다. 인적 드문 해수욕장에는 부드러운 파도가 눈앞에서 오가고 파도소리는 안온한 자장가처럼 느껴진다. 다시 산책로로 올라서면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사진 스폿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엽서 같은 풍경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산책로 곳곳에 놓인 의자도 주변 경관에 그대로 녹아들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새 둥지처럼 아늑한 ‘둥지 의자’, 유리 난간에 붙어 있는 ‘조개 의자’, 서서 쉴 수 있는 ‘서서 의자’ 등 하나같이 예술적 조형미가 뛰어나다.
해안 산책로에는 2017년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부문 상을 받은 경관벤치와 아트파크가 있다. 경관벤치는 걷다가 힘들 때 잠시 앉아 쉬면서 마음도 함께 쉬어가는 곳이다. 일출과 일몰을 보기 좋은 방향으로 나 있는데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광경을 시시각각 감상할 수 있다. 아트파크는 바닷가의 작은 갤러리로 6개의 컨테이너를 이용해 제부도의 바다 경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지었다. 내외부로 열린 아트파크의 독특한 공간 구성으로 여행객들은 색다른 전시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탑재산을 오르는 산책길과 빨간 등대로 가는 워터워크가 폐쇄되어 바닷길로 내려선다. 바닥까지 드러낸 녹슨 철제 기둥은 물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오늘 오르지 못한 탑재산 전망대에 서면 서해 바다가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고, 날이 좋으면 안산 탄도항과 충남 당진화력발전소까지 훤히 보인다.
제부도 최북단, 선착장에 다다르자 등대가 말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짙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대비를 이루는 빨간색 등대는 제부도 선착장의 상징과도 같다. 이곳은 해돋이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서해안에서 웬 일출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으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느지막이 돌아가는 길이라면 근처 탄도항의 일몰을 경험해 볼 만하다. 하루 두 번 물 빠짐 현상으로 바닷길이 열리면 건너편의 누에섬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탄도항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바다에 하루가 저물고 짙은 해무 속에서 누에섬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실루엣만 간간이 보인다. 둑길 곁에 서서 해무가 걷히고 잔물 빠지기를 기다리는데 바닷바람이 어느새 세상 시름을 날려 보낸다.
바닷바람 사이로 파고드는 옅은 봄 향기와 등 뒤로 쏟아지는 나지막한 햇살이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한다. 섬을 찾은 사람들은 이제 섬의 풍경이 되어 있다. 홀로 방파제 언덕에 앉아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새 갯벌에는 노을빛이 내려앉는다.
자연의 섭리로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는 섬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제 우리에게 작지만 큰 위안이 되어준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