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이해와 공생의 길

김선애

사진=코스미안뉴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한 사람이 나는 ○○(특정 사회적 집단)이 싫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싫음은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을 깊이 알지 못해서 드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대하자, 내 마음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대화는 나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였다. 나는 아직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상대방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듣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와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우리는 변해간다. 서로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님은 생물학자 최재천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담은 책 대담에서,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작품 속 인물에게 공감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만일 내가 어떤 사회적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배척당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 사람을 보는 나도 괴롭고, 그 사람도 괴롭다.

도정일 선생님은 타인을,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서로에 대해, 서로의 고통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생님의 이야기 중,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타자에 대해 책임지는 자다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서로의 행복과 고통을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최재천 선생님은 혼자 살아남으려 하면 멸망하고, 다른 생물들과 동맹을 맺은 생물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공생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공생이 아니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자신만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그리하여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고, 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노숙하는 분을 본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어쩌면 아주 작더라도 눈비를 피할 수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더라도 정기적 소득이 보장되니 자신을 좀 더 잘 돌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민이 예를 들어 한 달에 50만 원씩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거의 50%에 달한다. 이 노인들이 젊었을 때 일하지 않고 놀아서 가난한가? 물론 아니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노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지금의 사회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연합(UN) 세계인권선언 1조는 선언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251항은 선언한다.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으로 인해 충분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사회복지제도에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기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복지 혜택을 못 받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모든 시민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소득인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자산 조사나 노동 요구 없이, 조건 없이 모두에게 개인별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에서 저자 하승수는 사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국가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땅과 같은 천연자원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들은 본래부터 있었던 이런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익을 함께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은 본래 모두가 함께 사용했지만, 나중에 일부 개인과 기업이 사유화했다. 이들만이 땅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 갖는 것이 정당한가?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재원이 부족해서 문제인가? 지금 세계 전체의 부는 모든 사람이 먹고살기에 충분하고, 전 세계적으로 음식 쓰레기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쪽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상위 0.9%의 부유층이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은 집이 한 채도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다. 문제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가진 이들이, 지금 가진 재산 중 일부를 이웃들과 나눌 마음이 있느냐다. 이들이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지 않는가.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 없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 BIEN의 공동 창립자인 영국의 가이 스탠딩 교수는 모두의 부와 소득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특히 우리 조상들의 노력과 성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 구성원은 공공지식, 사회복지, 천연자원 등에 기인한 부의 일부를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비 오는 아침, 우리 동네에서 버려진 종이를 모아 생계를 꾸리시는 어르신을 보며, 나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사회를 상상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체계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란 얼마인가,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의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민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때도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리라. 우리의 갖가지 차이보다 더 큰 공통점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이러한 공통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생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가면 어떨까? [글=김선애]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3.31 11:16 수정 2021.03.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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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