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2월
21일(임자) 맑았다. 업무를 본 뒤에 주인인 [흥양현감 배흥립]이 자리를 베풀고 활을 쏘았다. 정1) 조방장2)도 와서 만나고 [능성현령] 황숙도3)도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배수립4)이 나와서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신홍헌으로 하여금 빚은 술을 전날 심부름하던 삼반하인5)들에게 나누어 마시도록 하였다.
[주]
1) 정걸(丁傑)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영중(英仲), 본관은 영광(靈光), 생몰년은 1516년~1597년이며, 을묘왜변 때 전공을 세웠고, 부산포해전, 행주대첩 등에 참전하였다. 후손을 통하여 그와 아들 및 손자의 고신교지 등이 현전하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 고흥정걸가교지류고문서(高興丁傑家敎旨類古文書)로 지정되어 있다.
2) 조방장(助防將)은 제승방략에 의거하여 중앙에서 지역방어를 위해 파견된 무장으로서 전시를 위한 관직이다. 『선조실록』의 1588 기사에 의하면 조선조정은 하삼도에 왜변이 발생할 우려 때문에 미리 조방장을 배치하도록 조처하였다. 『전라우수영지』의 「선생안」에 의하면 정걸은 1587년 3월부터 1589년 2월까지 전라우수사를 지냈는데, 그 이후 고향인 흥양에 물러나 있는 동안 다시 조방장으로 제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3) 당시의 능성현령은 황승헌(黃承憲)으로서, 숙도(叔度)는 그의 자이며, 본관은 장수(長水), 생몰년은 1540년~미상이다.
4) 배수립(裵秀立)은 배흥립의 무과급제 방목과 『성산배씨족보』에 의하면 배흥립의 동생이다.
5) 삼반관속(三班官屬)이라고도 하며 지방 관아에 속한 관노(官奴), 사령(使令), 아전(衙前) 등을 가리킨다. 원문 ‘使喚’을 ‘심부름꾼’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반하인이 관아의 하인들을 총칭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使喚’을 별개의 명사로 해석하지 않고 ‘심부름하던’으로 해석하였다.
[원문] 二十一日壬子 晴 公事後 主人設席射帿 丁助防將亦來見 黃叔度亦來同醉 裵秀立出同盃酌甚歡 夜深而罷 使申弘憲釀酒 分飮前日使喚三班下人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