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양평 물소리길에 “봄 내려온다”

여계봉 선임기자

 

햇살 가득한 야외를 걷는 것만으로 코로나 면역력이 쑥쑥 솟을 것 같은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봄 내음 가득 실린 강바람을 친구삼아 발로 혹은 눈으로 쉬엄쉬엄 따라가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될 것 같아 수도권 언택트 여행지인 양평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양평역에 도착해서 강가로 나오니 양평 물소리길에는 범이 아닌 봄이 내려오고 있다. 때는 꽃봄이라 양평은 꽃물에 배어있다. 양평 물소리길은 수도권 전철인 경의중앙선의 양평 구간에 있는 역과 역을 이어 걷는 길이다. 6개 코스 모두 전철역에서 시작해 전철역에서 끝난다. 양평의 남한강과 북한강을 모티브로 2013년에 처음 개장해 현재는 57km, 양수리역을 기점으로 6개 코스로 운영 중인데 수도권 주민이라면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전철을 이용해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남한강 물소리길에 주렁주렁 매달린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간지럼을 태운다.


오늘은 6개 코스 중 봄이 한창인 4월에 걷기 좋은 4, 5코스를 걷는다. 4코스 버드나무나루께길은 푸릇푸릇한 버드나무길과 아름다운 벚꽃길을 즐길 수 있고, 5코스 흑천길은 남한강 지류인 흑천의 물소리를 내내 들으면서 벚꽃길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양평 물소리길 4코스(버드나무나루께길, 10.4km 3시간 30분 소요), 양평군청 제공


양평 물소리길 4코스는 양평역에서 출발해 원덕역까지는 이어지는 길이다. 주요지점으로는 양평역~갈산공원~양평해장국거리~원덕역으로 이어지며, 4월이면 끝도 없이 만개한 벚꽃과 남한강, 흑천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양평역에서 출발하여 강변의 자전거길을 따라 갈산체육공원에 들어선다. 갈산(葛山)은 양평의 옛 지명으로, 칡이 많아 칡미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갈산공원에서 강가로 내려서니 남한강 옆으로 버드나무나루께길의 강변길이 기다린다. 버드나무나루께길은 이름부터 무척이나 정겹다.


나루께는 나루터라는 의미, 즉 버드나무 나루터가 있는 길을 따라 버드나무들이 드리워진 그늘 아래 바람을 즐기며 흙길을 걷는다. 4코스의 반은 남한강을, 반은 남한강 지류인 흑천의 물길을 따라 걷는다. 강가의 버드나무는 흐드러지게 춤을 추고 길은 흙길이라 푹신해서 자박자박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남한강을 품고 있는 양평은 칡이 많아 갈산(葛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춤추는 버드나무를 벗 삼아 길을 걷다 보니 배다리가 나온다. 근처에는 나룻배도 있고 그네도 있다. 초록의 장막을 친 강변 숲 사이로 보이는 당실당실 몇 점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봄날의 설렘은 남한강의 도도한 물길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드나무를 동무 삼아 걷다 보면 영혼까지 자유로워진다.

버드나무나루께길이 끝나는 길에서 자전거도로로 올라선다. 갈산공원을 지나며 줄 서 있는 벚나무 행렬은 현덕교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벚꽃이 만개한 시골길을 동무들과 함께 걸으니 발걸음이 더욱 신이 난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익어가는 잎사귀들, 산과 들에 뿌리박은 초목들은 저마다 초록을 가득 머금은 채 득의양양하다. 초록의 대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자연의 소리는 마음마저 깨끗하게 한다.


현덕교에 올라서면 흑천을 따라 같이 흘러가는 벚나무길이 보인다.


남한강과 작별하고 현덕교에 올라서면 흑천을 만난다. 현덕교를 지나면 흑천 따라 벚나무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길에 하얀 꽃잎이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니 흑천의 강바람이 오히려 고맙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흑천의 물소리로 귀까지 즐거우니 물소리길은 낭만이 가득하다. 꽃들의 보시, 향기의 보시...이 길을 걷는 이들은 과분한 호사를 누린다.


흑천 강바람에 꽃비 맞으며 걷는 이 길은 피안으로 가는 길이다.


벚나무길이 끝나면 그 유명한 신내 해장국거리가 나온다. 흑천교 옆으로 난 거무내길을 따라 가면 대형 리조트가 나오고 잘 다듬어진 길을 걷다가 강으로 난 쉼터 의자에 앉아 쉬어가기로 한다. 흑천을 바라보니 마침 가마우지 여러 마리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이 보인다. 몇 년 전 중국 계림의 이강에서 가마우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는 관광객을 위해 연출하는 장면이었고 오늘 흑천에서 본 모습은 야생이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이다. 리조트로 난 거무내길이 끝나면 시골 마을 길이 나온다. 소박한 시골집에서는 가족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낮은 담 너머로 새어 나온다. 구수한 삶이 있는 길을 나서 원덕역으로 향한다.


양평 물소리길 5코스(흑천길, 7km 2시간 소요), 양평군청 제공


양평 물소리길 5코스는 물소리길 중 제일 짧고 물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으며 가장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주요지점으로는 원덕역~딸기농장~삼성리~수진원농장~용문역으로 이어지는데 흑천과 추읍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길이다. 흑천은 바닥의 돌멩이 색깔이 검은색이어서 물 색깔이 검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덕역을 출발해서 딸기 비닐하우스가 많은 농장을 지나면 다시 흑천이 나오고 흑천 너머로 양평의 진산 추읍산이 고개를 내밀고 반겨준다. 길가 가로수인 벚나무 아래로 야생화가 지천이다. 꽃을 보니 닫혔던 마음이 꽃잎처럼 절로 열린다. 작고 여린 꽃들은 눈물 젖은 속눈썹처럼 애잔하다.


양평의 진산 추읍산. 5코스는 이 산자락의 흑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물소리길 오른쪽의 흑천에는 하늘이 담겨 있다. 물 위로 바람이 지나가니 흰 구름이 떠간다. 크거나 작은 돌들이 포개지고 뒤엉킨 하천에는 물살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잠시 물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헹군다. 머리를 들어 허공을 보니 추읍산 수목 사이로 햇살이 들이쳐 물 위에 떨어진다. 물소리는 완벽한 화음이다. 물소리는 저절로 내는 소리가 아니다. 큰 바위나 작은 돌부리의 몸을 비벼 내는 소리이니, 어쩌면 물이 바위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 세상에 저 홀로 빼어나고 잘난 것이 어디 있으랴. 노자가 말하길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거늘 다툼없이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이 어찌 도()가 아니며 법()이 아닐 수 있을까.


흑천을 건너 추읍산으로 가는 다리. 이맘때 건너편 내리 마을은 산수유가 한창이다.


삼성교에 도착하니 다리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솟대들이 반긴다. 강바람이 따사로운 손길로 이들을 어루만져 외로움을 달래 주겠지. 삼성리 마을을 지나 흑천 따라 발걸음을 계속하면 수진원농장이 나온다. 물소리길은 농장 옆의 샛길로 이어지고 농장이 끝나는 곳에 백산교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흑천 옆의 강변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강 위로 내려앉은 하오의 햇살에 흑천은 생기를 얻어 검은 물빛이 더욱 반짝이며 흘러간다.

 

김동리가 역마에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길 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꽃피는 봄날 걷는 양평 물소리길도 그윽하고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5코스가 끝나는 용문의 흑천에 이르면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제 5코스 종착지 용문역이 저만치 보인다. 물소리길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단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길이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양평군에서는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수도권 주민들을 위해 410일부터 424일까지 15일 동안 몸은 따로, 마음은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2021년 언택트 물소리길 걷기 여행을 개최한다고 한다.


4월은 그냥 집에 버티고 있기에는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단 하루라도 자유로운 자신을 느끼고 싶으면 훌쩍 경의중앙선을 타고 ~ 내려오는양평 물소리길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이해산 기자
작성 2021.04.09 12:14 수정 2021.04.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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