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전라도 정읍 땅의 황토재.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들이 부패했던 관군들을 쳐부쉈던 격전지다. 사기충천한 동학민들은 죽창을 들고 공주성을 치올라 가다가 한 많은 우금티에서 다시 일전을 벌인다. 학이 날개를 편 듯한 산줄기. 그 줄기를 타고 올라가던 농민들은 일본군과 관군들의 무자비한 총포 앞에 전멸하고 만다. 전봉준의 넋은 파랑새 되어 아직도 녹두밭 위를 맴돌고....
티베트 고원.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설산에서 고행 속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난 수도승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시신을 설산 정상에 놓아두면 독수리들이 고승들의 넋과 몸을 함께 물어간다. 예부터 ‘풍장(風葬)’은 티베트의 가장 신성한 장례 풍습이었다. 같은 몽고족으로 얼굴이나 말의 억양이 우리와 너무나 닮은 이들은 하늘 가까이 살면서, 새가 하늘의 전령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새가 자꾸 죽어간다. 근세 들어와 약 80여 종의 조류가 사라졌다. 게다가 600여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살다가 멸종된 도도(Dodo)는 유럽 선원들이 몰고 온 개와 쥐에게 다 물려 죽고 말았다. 가장 멀리 나는 새 알바트로스도 지난 30년간 40%나 감소됐다고 한다. 사람이 버린 플라스틱과 주낙줄에 희생되고 있다. 지구 둘레와 맞먹는 2만 5천 마일을 단 80일 만에 도는 새. 날개 죽지를 고정한 채 글라이더처럼 활공으로 바다를 손쉽게 건너는 전설의 ‘신천옹’새이다.
독수리도 줄어든다. 힘과 자유의 상징인 황금 독수리. 자기 몸무게만 한 10파운드 새끼 양도 사뿐히 꿰차고 날며, 사방 20리를 다스리는 새들의 군주. 알에서 부화할 때 눈뜨고 나오는 새는 독수리밖에 없다고 한다. 그 독수리들도 거의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주 서식지, 캘리포니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총으로, 독약을 뿌려 죽였다. 납 탄환에 맞은 오리를 먹고 납중독으로, 고압선에 감전이 돼 죽어갔다.
1940년대부터 DDT에 오염된 물고기를 먹고 독수리들이 병들기 시작했다. DDT의 독성으로 알껍데기가 얇아져 부화 도중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2개 이상 알을 낳지 않는 독수리의 수는 점점 줄어갔다. 70년대엔 캘리포니아 전역에 20-30여 쌍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 간, 보호운동으로 좀 늘긴 했지만 서식지가 자꾸 소멸돼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1995년 4월 30일, 일본열도는 한 마리 새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졌다. 일본산 따오기의 마지막 수컷 미도리가 죽은 것이다. 그는 일본 자연 보호 운동의 상징이었다. 따오기 암컷들도 산란 중 난관협착등으로 차례로 죽어갔다. 미도리가 죽은 뒤, 그의 생 세포를 추출, 냉동 보존하고 있다. 유전자 기술이 발전할 미래에 복원하기 위함이다.
헤르만 헤세 의 소설, 데미안에는 하늘로 간 새 이야기가 나온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神)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새나 사람이나 뼈아픈 변신의 아픔을 이겨내야 비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날아가야 할 곳이 아프락사스 신이란 점이다. 희랍 신화의 신인 그는 이 세상의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의 균형을 조정하는 신이다. 그래서 아프락시스는 선과 악이 반반 공존하는 인간의 한계를 상징한다. 각고의 고통으로 다시 태어나도, 선(善)의 편에 설 확률은 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훨훨 날고 싶어 하면서도, 새의 나는 자유는 박탈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우리는 살고 싶어 하면서도, 새의 생존권은 쉽게 빼앗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파랑새가 한 많은 녹두장군의 넋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거듭나야 선한 아프락시스에게로 날아갈 수 있을까?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제1회 ‘시와 정신 해외산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