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세계자연유산 한라산국립공원 등산을 위해 해 뜰 무렵인 6시경 숙소를 나와 한라산 동쪽코스인 성판악관리사무실(해발750m)에서 6시 30분에 출발하여 속밭, 사라오름 입구,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 정상인 백록담까지 한라산 탐방로 중에는 가장 긴 성판악코스를 택하여 등산을 했는데 이 코스는 9.6㎞이며, 편도 4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성판악탐방로 코스는 관음사탐방로 코스와 더불어 현재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2가지 코스 중 하나의 탐방로이고 코스가 완만하여 등산 초보자들인 가족끼리 걷기에 좋은 코스인 것 같다. 그러나 코스가 길기 때문에 등산을 하기 전 부상의 위험과 근육통 예방을 위하여 간단하게 스트레칭도 하고 간식과 물도 꼼꼼히 챙겨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성판악 관리사무실을 통과하여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였다. 등산 전문가들은 처음 20분 정도는 평소에 오르는 속도보다 ½정도 천천히 걸으면 등산이 쉬워진다고 한다. 자동차나 기계도 처음부터 워밍업 없이 무리하게 가동하면 수명이 단축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해봐도 처음부터 무리를 하면 나중에 등산 코스 전체를 완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물들어, 우리를 반겨주는 10월의 한라산은 단풍이 특히 아름다웠다. 최저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8도(일 평균 13도) 이하가 되면 단풍 진행이 활발해지며, 6도의 온도에는 단풍들이 최전성기를 맞는다고 한다.
또한 산의 정상에서부터 20% 가량 단풍이 물들면 첫 단풍이라 하고, 80% 가량 물들면 단풍의 절정이라고 하는데 한라산은 10월 말이 단풍의 절정 시기라고 하니 때맞추어 일년 중 최고의 단풍을 눈으로 만끽 할 수 있는 시기에 등산을 하는 행운을 맛보았다.
나무마다 단풍의 색이 다른 이유는 나뭇잎에 포함된 색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엽록소의 생산을 중지하고, 잎 안에 남아있는 색소가 표출되며 색이 변하는데, 이중 안토시아닌 색소가 있는 나무는 붉게 물들며, 이 색소를 만들지 못한 나무들은 노란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산을 올라 8시경 속밭대피소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올라온 다른 등산객들이 간단히 아침을 먹거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어 신발 끈도 다시 묶고 잠시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속밭대피소에서 사라오름과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3.2Km이지만 지금까지 보다는 가파른 경사로 인해 힘이 들고 다리가 아파오는 구간이기도 했다. 빨리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올라가니 표지판에 쓰여 있는 대로 1시간 40분 만에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진달래밭대피소 주변에는 사진으로는 표현이 될 수 없을 만큼 멋진 풍경과 단풍이 수를 놓는데 주변 경관보다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미리 준비해간 컵라면과 김밥 그리고 믹스커피를 마시며 지친 몸을 달래는 곳이기도 하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높은 산을 힘들게 올라와 커피 향기가 나면 간절하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속밭대피소와 진달래밭대피소에서는 아무것도 팔지 않고 자판기도 없어 물과 간식 등은 모두 사전에 준비해서 올라와야 한다.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 해발 1700m부터는 구상나무 구간이며 백록담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매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어 등산객들의 마지막 힘을 요구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도중에 벌써 하산을 하며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있어서 백록담을 보았는지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구름이 끼어서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여 혹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백록담을 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여 무거운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 했다.
드디어 정상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구간인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씩 걸었고,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한라산백록담(정상)' 표지목이 눈앞에 들어오고 나서야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내려다보니 흰 구름이 빠르게 백록담에 다가와서 얼른 사진을 찍었는데 백록담 분화구에는 예상보다 물이 적었고 주변에는 추위로 인하여 분화구 좌측 주변에 키 작은 나무와 풀들에 얼음과 서리가 덮여 있고, 때마침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한겨울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기상청에서는 이날 한라산 백록담에 올해 첫 상고대가 생겼다고 하는데 10월에 백록담 화구벽 암벽에 상고대가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해가 비치면 금방 녹아내리기 때문에 등산객이 직접 암벽 상고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여 정말 운이 좋게 백록담 분화구를 본 것을 알았다.
백록담의 유래는 한라산 정상의 호수에서 목욕하던 선녀를 몰래 지켜보던 산신령이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흰 사슴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흰 사슴의 호수, 백록담이라 부르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조 재위 10년째에 제주도에서 흰 사슴을 바쳤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한다.
백록담 일대는 휴화산 산정으로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특이한 식물분자를 보유했고, 다양한 변이가 일어나면서 특산 및 희귀식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북방계 고산식물의 남방한계선으로서 식물의 지리적 측면에서도 의의가 상당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성판악코스는 등산객에 따라 8시간에서 9시간이 소요되는 긴 구간이지만, 등산을 해보니 길다고 겁을 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코스 자체가 완만해 편히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상나무와 삼나무 등 울창한 숲을 통과하기 때문에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등산로를 따라 앞으로 전진 하는 것 이외의 모든 잡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그리고 넓게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고민들이 별것 아니었던 듯 가벼워진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일상의 어렵고 힘든 생활들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도 가뿐하게 정복했으니까’ 라는 생각을 하면 하산하는 길은,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처럼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과 함께 뿌듯한 자부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된다.
푸른 제주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한라산 등반은 등산객들에게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봄, 여름의 화사하고 눈부신 시간들을 지나 가을맞이에 한창인 한라산은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절정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부모님이나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한라산의 성판악코스를 강력 추천한다. 거리는 길지만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여유있게 시간만 된다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왕복 9시간, 36,000보나 걷게 되지만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와 한라산의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뤄 장관을 연출하므로 천천히 걸으며 한라산의 단풍에 흠뻑 취해보자.
깊어가는 가을, 오색빛깔 가을풍경을 여유롭게 등산하며 만끽하는 데는 한라산 등산코스 중 성판악코스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열대, 온대, 한대 3가지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의 단풍 명소인 한라산 등산은 제주 가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가을을 200%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단풍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가을에는 가족, 연인, 친구 등 소중한 사람과 함께 단풍 스팟 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
기사 기고 : 황희선
인천계산공업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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