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자동차 타고 떠나는 4색의 완도 섬 여행

여계봉 선임기자

남도에는 배를 타는 대신 걷거나 자동차로 드나드는 섬들이 많다. 차를 이용하면 배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은 줄고, 구석구석 섬을 누비는 재미는 커진다. 시원한 갯바람 맞으며 갯내음 풍기는 섬과 섬을 달려보자.

 

한반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전라남도 완도에는 차로 갈 수 있는 섬 속의 섬 장도,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4개 섬이 있다.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지나 완도로 들어선다. 잠시 후 완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장보고 동상을 지나 장좌리 마을에 도착한다. 장도(長島)는 완도 장좌리 마을과 18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섬이다. 썰물 때는 다리 없이도 건널 수 있는 장도는 이 지역 출신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의 본영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에서 목교를 건너 장도로 들어가면서 장보고가 활약했던 신라의 청해진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청해진 본영 장도는 장좌리와 목교로 이어진다.


바닷물이 빠지면 서쪽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목책은 통나무로 쌓은 해안 방어용 울타리다. 1,200년이 지나 썩거나 잘려나가 밑동만 남았지만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장도가 청해진의 본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의미 있는 유적이다.


목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라호 태풍 때 갯벌이 파이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외성을 통해 청해진으로 들어선다. 탐방로가 잘 개설되어 있고 복원된 토성을 따라 성곽 위를 걷는다. 안내판을 하나씩 훑어보며 호젓하게 걷는 재미가 좋다. 내성문과 외성문, 토성의 치(), 건물 기둥인 굴립주, 아직도 샘물이 나오는 청해정, 언덕 위에는 고대와 장보고 위패를 모신 당집이 남아있다.

 

내성문에서 고대로 올라서니 주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지도와 고금도, 약산도와 생일도 주변의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거점으로 1만 군사와 함께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며 해상권을 장악하는데, 신라와 일본, 당나라의 국제 삼각 무역에서도 주도권을 쥐며 '해상왕'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다.

 

장도의 고대(高臺). 청해진 앞바다를 지나가는 배들을 감시하던 망루다.

 

완도에서 연륙교와 연도교를 지나 강진으로 가는 길에 세 개의 섬이 있다. 신지도와 고금도, 그리고 조약도다. 이들 섬에 놓인 다리 덕분에 한 번의 나들이로 해남과 완도, 강진까지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 섬은 징검다리가 되어 완도에서 강진까지 육로가 이어진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지나 신지도로 들어간다. 신지도는 중죄인들만이 가는 유배의 섬이었다. 조선시대 서예가로 이름 높은 원교 이광사, 천연두 예방접종 백신인 종두법을 들여온 지석영도 이곳에 유배되어 살았고,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도 흑산도로 유배 가는 길에 몇 달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신지도를 대표하는 명소는 명사십리(鳴沙十里). 은빛 모래가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울림소리가 십 리까지 들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사십리는 희고 가는 모래의 백사장이 활처럼 휘어진 운치 있는 해변으로 울창한 송림까지 갖추고 있어 몇 년 전에 국제 친환경 해수욕장으로 인증받았다. 맨발로 느끼는 고운 모래결의 감촉에 온몸의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신지도의 명사십리는 길이가 3.8km나 되는데, 그 끝이 가물가물하다.

 

신지도에서 장보고대교로 가는 오른쪽 바다는 전복, 미역, 다시마, 김 양식장임을 알리는 부표들이 내해를 빈틈없이 모자이크하고 있다. 지석영이 유배 생활을 한 신지도의 송곡마을에서 장보고대교를 건너 고금도로 들어선다. 1305m의 장보고대교는 바다로 끊어진 77번 국도를 이으면서 완도와 강진을, 더 나아가 해남과 장흥까지 하나의 여정으로 만들어준다.


신지도와 고금도를 이어주는 장보고대교. 다리 주위는 전복양식장이다.


고금도의 충무사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의 초록이 어찌나 짙고 깊은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저절로 가다듬게 만든다. 고금도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섬은 아니지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생애를 간직한 의미 있는 곳이다. 장군은 정유재란 때인 1598년 삼도수군통제영을 고금도로 옮기고, 명나라 진린 장군과 연합 전선을 펴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를 충남 아산 선영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 야트막한 언덕에 83일 동안 임시로 안장했던 월송대(月松臺)와 추모 공간인 충무사를 여기서 만나볼 수 있다. 작은 동산인 월송대는 금빛 띠는 해송에 둘러싸여 있고, 호수처럼 잔잔하고 수려한 앞바다에는 고만고만한 섬들이 도열하여 월송대를 호위하고 있다.

 

가묘였던 월송대는 장군의 시퍼런 기개로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단다.


고금도는 남해와 서해를 아우르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고 많은 백성과 군사들이 둔전을 할 수 있는 넓은 섬이자 높은 산들이 있어 해상의 적들을 탐망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여서 명량해전 이듬해 본영이 만들어졌고, 명나라 수군과 함께 연합훈련을 한 곳이다.

 

충무사에는 충무공의 영정과 조선 수군의 해상전투 대형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전진도첩(戰陣圖帖)이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는 명의 진린이 충무공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힌 관왕묘비도 있다.


고금도의 충무사. 이순신 장군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약산대교를 건너 약산도로 들어선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이 섬에는 삼지구엽초 등 많은 생약초가 자생하고 있어 도울 조()’ ‘약 약()’ 자를 써서 조약도로 부르기도 한다. 약산도는 멀고 먼 남도 끝에 있는 외딴 섬이지만, 섬은 대대로 조선 왕실의 소유였다. 물산이 풍족한 것도, 기름진 옥토도 아닌 손바닥만 한 섬에서 왕실에다 수시로 조세를 바쳐야 했으니 섬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약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가사동백숲 해변은 삼문산 아래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로 둘러싸인 부채꼴 모양의 해변이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길이 좁고 급경사의 내리막이다. 짙은 녹색의 숲 그늘이 바다에 잠겨 물색은 더 푸르게 보이고, 해변에는 진귀한 모양을 한 암반들이 넓게 깔려 있어 장관을 이룬다. 해변 정면으로 생일도의 백운산이 보인다.


약산도의 가사동백숲 해변. 울창한 숲과 해변이 함께 있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다.


완도의 섬들이 완도와 강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완도의 4색 섬들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장보고의 기상이 다시 살아난 섬도, 유배자들의 비극적인 삶이 녹아 있는 섬도, 핍박받는 소작인들의 고통이 스며 있는 섬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주검을 오래 품고 있던 섬도 있다.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도해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명소들이 섬마다 널려있고, 매생이와 김, 다시마 양식장의 지주대를 끝 간 데 없이 꽂아 평면의 바다를 살아 넘치는 입체의 바다로 만든 생생한 삶의 현장도 있다. 섬을 잇는 다리 때문에 한 두름으로 꿰어진 섬 모두가 자연과 역사와 삶이 잘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다.

 

아쉽게도 요즘 섬이 사라진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 말은 섬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섬의 매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섬 지역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 본래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는 달리 단순히 육지화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섬만이 지녀온 온존성(溫存性)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섬이 되어야 섬이 사라진다는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 같다.

 

강진 마량항으로 가기 위해 고금대교를 지나는 다리 아래로 눈 시리게 푸른 봄 바다는 까칠한 해풍에 춤추고 있다. 구슬같이 촘촘히 박힌 부표들은 격랑에 몸을 맡긴 채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남도의 양식장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는 감동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게 어민들의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완도 4색의 섬을 벗어나 강진 땅 마량에 닿는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4.27 12:53 수정 2021.04.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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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