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蟲)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별로 즐겁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때 기생충검사를 위해 대변채취에 대한 기억이다. 한자(漢字)어 충(蟲)도 징그러운 벌레 모양의 충(䖝)이 세 개나 모여있다. 한의학에서 성경처럼 신봉하는 의서 동의보감에서는 내경 편에 충(蟲)이라는 장을 따로 두었다. 여러가지 충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좀 황당하다. 읽어 보면 의서라기보다는 도덕서 같은 느낌이다. 그중의 노채충(勞瘵蟲)에 대한 설명에서는 도덕서의 느낌이 확연해진다.
노채병의 증세는 조열(潮熱), 도한( 盜汗), 각혈, 설사, 등이고 원인은 “혈기가 안정되지 않아서 주색에 상하여 그 열독이 쌓였기 때문이다”고 한다. 노채병 환자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기를 좋아하고 언제나 불평불만을 품는다’. “치료에서 가장 유의할 점은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채충(勞瘵蟲)이 알게 되면 교묘하게도 도주나 은신”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노채충은 환자의 도덕성의 유무를 나타내 주는 리트머스지인 모양이다. 고미숙 저자 ‘동의보감’에서의 해석에 의하면 노채병의 치료법은 “오직 음덕이 있어야 단절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병에 걸렸을 때는 산에 들어가거나 고요한 방에 거처하면서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정좌하며, 이를 맞 부딪치고 분향을 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끊으며, 의식을 집중하여 보양해야 한다”고 한다. 병의 치료법이라기보다 수도사의 지침에 더 가깝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하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외출을 금지하고, 고요한 방에서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정좌하며” 지내고 있지 않은가?
1610년에 출간된 동의보감에서는 미생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가지 질병의 일체를 충(벌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이로부터 60년 후에나 미생물의 존재가 인류의 의식세계로 들어왔다. 1670년 네덜란드의 안토니 루웬후크(Antoni Leeuwenhoek)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장난을 치다가 물방울 속에서 움직이는 수만 마리의 생명체들을 발견한 이후다.
균이라고 하면 박테리아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생물학적인 구조가 다르다. 박테리아는 번식 기능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이지만 바이러스는 다른 생명체에 의지해서만 번식할 수 있다. 박테리아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그 보다 더 작아서 전자현미경으로 봐야만 볼 수 있다. 박테리아는 식중독, 결핵, 콜레라, 파상풍, 디프테리아 같은 전염병을 일으키고 바이러스는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 수두, 에볼라 등의 전염병을 일으킨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인류사를 바꾼 균들의 막강한 힘을 기술한다. 저자는 책에서 유럽인들이 지배계급으로 떠오르게 된 주원인은 머리가 좋아서도 총의 힘도 아니고 균의 힘이었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유럽의 지리적 환경이 다른 대륙과는 달리 가축화를 할 수 있는 동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찍부터 가축화를 이룰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야생 동물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수공동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가 세대를 거치면서 생리적으로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균들은 유럽인들의 몸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면역체계가 없는 원주민들의 몸으로 옮겨 갔을 때 전염병균으로 변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인류사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유럽인들이 새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균은 기존의 문명 남미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을 멸망시키고 북미대륙의 원주민도 90%나 몰살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주장한다. 유럽인들의 식민지화 시대를 열어 준 공로자는 균이었지 그들이 머리가 좋아서도 총이 있어서도 아니었음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전염성 바이러스는 대량살상무기이다. 이번 코비드19는 공 모양으로 표면에 스파이크가 촘촘히 뻗쳐있는데 그 모습이 왕관 같다고 해서 크라운의 어원인 코로나로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값을 하는지 그 위용이 대단하다. 그 재앙적인 위력에 세계의 경제 엔진이 멈추었다. WHO에 의하면 2021년 4월 14일 현재 세계인구 14억이 감염되고 2백9십만 명이 사망했다. 생태계에서 가장 작은 동물이 가장 똑똑한 인간을 여지없이 꿇어 엎드리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들의 동족은 이미 우리 몸속에 들어와 인체 세포들과 공존하며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 장 속의 미생물들은 생존활동에 가장 중요한 소화작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장에는 척수보다 더 많은 1억 개의 신경 세포가 있고 세라토닌의 95%가 장에서 생산된다. 학자들은 장을 제2의 뇌라고도 부른다. 인체세포보다 1.3배나 더 많고 총무게는 1.3-2.3Kg이나 된다. 미생물연구자들은 “그들이 우리의 주인인지 우리가 그들의 주인인지 모를 정도”이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 속의 타자이고 이민자들이고 또 공존자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균들은 야생의 균들이 그 균에 대한 면역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인체 속으로 들어오게 됨으로 생긴다. 인간의 지속적인 자연자원의 착취는 그 접촉의 기회를 더 자주 그리고 더 다양하게 만들어 왔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서는 우리가 모든 호모속의 다른 인간 종류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종에 대한 착취와 파괴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갈라놓고 뺐으므로 그들과의 접촉의 거리를 더 가깝게 했고 더 빈번하게 했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들을 초대한 것이다.
허준의 노채병의 치료법을 다시 생각해본다. "고요한 방에 거처하면서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정좌하며..... 욕심을 끊으며, 의식을 집중하여 보양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바이러스 백신이 될 수도 있다. "고요한 방에 거처하면서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정좌하며..... 자연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의 무한소비 무한경쟁에 대한 욕심을 끊으며, 의식을 집중하여 생태계의 모든 동식물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 수 있기 위한 생활습관과 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처방은 앞으로 있을 무한한 변종의 바이러스 백신으로도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부수적인 혜택은 백신 자체보다도 엄청 더 크다.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공생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길이고, 지속불가능한 지구 환경을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고, 지구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이고,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