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버스를 통해 바라본 것

김태진



버스를 통해 바라본 것

요행을 바라지 말고 때를 기다리자

 

 

나의 집은 군산 시내에서도 꽤 궁벽한 곳에 위치해 있다. 낭만적이거나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궁벽한 곳이기에 집값이 싸서 그곳에 기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번화가가 아니기에, 버스 노선이 적은 편이다. 평일에는 사무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때마다 한 번씩 환승을 해야 한다. 사무실에서 군산시외버스터미널로. 그것은 문제가 없다.


사무실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는데, 10분마다, 운이 좋으면 5분에 한 번도 터미널에 가는 버스가 있다. , 시외버스터미널이니 대부분 시내버스가 그곳을 지나가도록 노선이 설계되었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인데. 그곳에서 버스를 하차하고, 다시금 기다린다. 우리 집 근처 정류장은 60번대 버스가 담당하는데, 30분에 한 대씩 온다. 매시간 20, 50분 정도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그런 환경에서 일어난 헤프닝.

어차피 환승해야 할 60번대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오기에, 나는 사무실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나온다. 10분에 오는 아무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한다. 사무실에서 터미널까지는 약 다섯 정거장,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니까 10분에 나왔으면 약 17~18분에 내리게 되고, 내려서 3~4분 정도 되면 절묘하게 60번대 버스가 와서 나는 그것으로 환승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환승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다는 것. 말이 좋아 절묘하다는 것이지, 실은 아슬아슬한 것이다. 늘 그렇듯 버스라는 것은 임의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기차처럼 정시성을 확실하게 요구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다. 도로 상황이나 신호 상황에 따라 1~5분 정도는 얼마든지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몇 분의 간극이 나비효과처럼 벌어지게 된다.


평소에는 버스를 잘 타고 다녔는데, 그날따라 10분에 와야 할 버스가 11, 12분 정도에 왔다. , 그럴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나는 바로 환승할 버스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뿔사, 그 버스는 6분 뒤에 도착한다고 쓰여 있다. 지금 이 버스는 아무리 빨리 가도 7분 이상 걸린다. 아니다, 괜찮을 것이다. 내 버스가 늦은 것처럼 60번대 버스도 늦을 것이다. 느긋한 척 여유를 즐기는 척하지만 긴장감에 다리가 떨려온다. 하필 그날따라 또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리고, 할머니도 느리게 내리고 느리게 타고, 다른 자동차들도 버스를 끼워주지 않는 등 늦을만한 요소는 다 걸렸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20분에 도착하게 됐다. 부저를 누를까 말까 하는데, 이럴 수가. 우리 버스가 서야 하는 정류장에 60번대 버스가 바로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버스가 지나고 우리 버스가 서는 것이다. 신호 하나만 안 받고 갔더라면. 정류장 하나만 안 멈추고 갔더라면 바로 환승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는 일단, 부저를 누르지 않고 버스에 앉아있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노선을 가지만, 몇 정거장 지나 갈림길에서 갈라지게 된다. 그 전에 어떻게든 환승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버스도 어떻게든 집 근처로 가면 간다고 하지만, 이 버스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거장이 걸어서 25분 거리. 나는 25분이나 걷고 싶지 않기에, 저 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 환승해야 하는 버스가 우리 버스 바로 앞에 있는 기묘한 대치상황. 생각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조금 지나면 ○○학교 앞 정류장이다. 학생들이 많이 있을 테지. 학생 말고도 할머니들도 있을 거고. 앞의 60번 버스가 먼저 멈춰 학생들을 태울 때, 나는 얼른 내려서 후다닥 달려가면 어떻게 환승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 계산으로, 부저를 눌렀다. 버스는 멈췄다. 나는 후다닥 내렸다.

어어어!”

하지만 매정하게도, 버스는 바로 떠나갔다. 생각보다 타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60번대 버스가 애초에 번화가로 가는 버스가 아니어서 그랬으리라. 나는 손을 흔들며 그 버스를 잡아보려 했지만 버스는 결코 서지 않았다. 읍면리 단위 시골 출신인 나는 급격한 허탈감과 아쉬움을 느꼈다. 동네 버스는 할머니들이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손 흔들면 멈춰 섰었는데. 도시는 정말 야속하구나. 결국, 어쨌든 버스를 놓쳤다.


버스를 놓친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 정류장에서 그대로 30분을 기다려서 다른 60번대 버스를 타던가. 아니면 어떻게든 앱을 검색해서 다른 버스를 찾던가.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두 번째 길을 택했다. 좀 더 버스가 많이 오는 사거리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갔다. 그리고 약 10분 정도 기다려서 오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아까 처음에 환승하기 전 버스와 비슷한 노선으로 가는 버스. 즉 내려서 25분을 걸어야 하는 버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환승을 하지 말고 쭉 타고 갈 걸.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이다. 내려서, 25분을 걸어 집에 도착하니 630. 본래 510분 버스를 타고 60번대 버스를 제대로 환승했다면 550분경에 집에 도착한다. 그냥 30분을 기다려 다시 오는 60번대 버스를 탔어도 620분경에는 도착하게 된다. 결국 나는 아등바등 노력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더 늦고 30분 이상을 더 걷는 최악의 수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다 보면 놓칠 수도 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버스를 탈 수도 있고, 안타깝게 바로 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나고 시간 낭비이고, 자동차가 있었다면, 여기가 도시여서 지하철이 있었다면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놓친 걸 후회한다고 버스가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낭비되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목적지를 가야 하니.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일면이 있을 듯싶다.

누군가는 지금의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어서 시간을 낭비한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어쨌든 나는 집에 도착했다. 내 인생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기왕 가는 거, 기왕 기다리는 거. 느긋하고 즐겁게 목표까지 도착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김태진]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02 02:20 수정 2021.05.02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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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