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저녁] 12월의 시

이해인

사진=코스미안뉴스




12월의 시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것을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이해인]

수도자의 길과 시인의 길을 같이 걸은 한국의 대표적인 수녀다. 많은 시와 수필을 비롯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했고 종파를 넘어 불교 스님들과도 교류를 하며 대한민국 종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2.31 09:59 수정 2018.12.31 10:0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