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상식을 넘어서

고석근

점차 그 얼굴이 베아트리체나 데미안이 아니라 나라고 느껴졌다. 나와 닮아서가 아니라(닮을 필요도 없었다) 내 삶을 결정짓는 것, 내면의 나, 나의 운명, 나의 신(선이든 악이든)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친구를 만난다면 그 친구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이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의 삶과 나의 죽음도 이러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 될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정주리 감독의 영화 ‘도희야’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우리의 ‘상식’은 얼마나 무서운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자신의 상식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은 자신의 이웃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딴 바닷가 마을, 14살 소녀 도희가 의붓아버지 용하와 할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친엄마가 도망간 집, 도희는 거미줄에 걸린 어린 나비다. ‘동성애’의 상처를 안고 좌천된 파출소장 영남이 온다.

 

영남은 도희를 보며 깊은 연민을 느낀다. 도희를 집(단칸방)으로 데려와 보호하게 된다. 한방에서 살아가는 두 여성을 이 세상은 어떻게 볼까? 영남은 도희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상식이 이웃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의 상식, 사실 상식이 아니라 지독한 편견이다. ‘동성애자는 동성을 성적 대상으로 본다!’ 이 상식이 이웃을 사랑하게 하지 않고, 외려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14살 소녀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다들 안다. 그 소녀의 아픔을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들 도희가 안쓰러울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상식’이 그 연민을 압도해 버린다.

 

인간의 사랑은 이렇게 위태롭다. 인간은 너무나 강력한 ‘상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상식을 넘어서야 한다. 강철 같은 상식, 얼마나 무서운가! 모든 폭력은 자신이 옳다는 강한 신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남자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이 생각이 이 세상의 상식이 되었다. 이 상식을 동성애자에게 대입한다. 동성애자는 동성을 성적 대상을 본다! 이 상식이 거미줄이 되어 영남과 도희를 칭칭 휘감게 된다.

 

도희는 자신과 영남을 구하기 위해 너무나 위험한 음모를 꾸미고 자행하게 된다. 의붓아버지 용하를 성폭행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용하 곁에 발가벗고 다가가 눕는다. 핸드폰으로 경찰에게 전화해 놓았다.  

 

도희는 용하를 애무한다. 용하가 신음소리를 내고, 도희는 바닥을 탕탕 치며 “아버지 잘못했어요....” 애원한다. 경찰이 달려오고, 용하는 꼼짝없이 성폭행 현행범이 되어 체포된다. 영남은 풀려나고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다.

 

도희를 마지막으로 보러 온 영남, 하지만 영남은 혼자 떠날 수가 없다. 함께 간 의경이 도희를 ‘작은 괴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도희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작은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만이 괴물을 구원한다. 그런데 누가? 상처가 상처에게 다가간다. 영남은 도희를 데리고 함께 떠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니까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상식이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가로막는다. 다들 자신이 옳다는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생지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랑의 얼굴은 무한하다. 

 

‘점차 그 얼굴이 베아트리체나 데미안이 아니라 나라고 느껴졌다. (...) 언젠가 내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이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의 삶과 나의 죽음도 이러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 될 것이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부분 

 

 

상처가 상처에게 다가간다.

 

우리의 상식이 그 손길을 가로막지만 않으면, 이 세상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울까? 우리의 상식이 먹구름이 되어 하늘에 드리워져 있다. 태양과 별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4.25 10:54 수정 2024.04.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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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